아랍 이민자 소년은 어떻게 교도소 대부가 됐을까

김상목 2025. 3. 20.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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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예술영화 개봉신상 리뷰] <예언자>

[김상목 기자]

 <예언자> 스틸
ⓒ 판씨네마㈜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19살 아랍계 이민자 '말리크'는 성년이 되자마자 6년 형을 선고 받아 감옥에 수용된다. 10대가 되자마자 소년원을 들락거리던 그에겐 가족도 친구도 없다. 영치금을 보내거나 면회하러 올 누구도 존재하지 않는 외톨이다. 교도소는 이제 갓 성인이 된 의지할 데 없는 그에겐 야생의 정글과 다를 바 없다. 감옥 안은 교도관과 결탁한 조직폭력배, 인종별로 구분된 갱단이 좌지우지한다. 아무 연줄도 뒷배도 없는 말리크는 손쉬운 먹잇감에 불과하다. 입소 초기부터 구박과 설움은 당연하고, 과연 무사히 살아서 나갈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는 절박한 지경이다.

그가 수용된 교도소에도 '대부'가 있다. 악명 높은 코르시카 범죄조직의 두목 '세자르'다. 자신의 조직원들이 연루된 재판의 유력한 증인인 아랍계 폭력배가 같은 감옥에 이감되자 증거를 없애기 위해 제거해야 할 상황이다. 세자르는 수사에 적발되는 걸 피하고자 아무 연관이 없는 대행자를 찾는다. 아랍계에 조직원 경력이 없는 말리크가 적임자로 선택된다. 일단 그가 선택한 이상 거부는 죽음과 동의어다. 필사적으로 살인 청부를 벗어나려 해보지만, 감옥 안에서 말리크가 피할 방도는 존재할 리 없다.

결국에 어쩔 도리 없이 잡범에 불과하던 말리크는 살인을 저지른다. 코르시카 조직의 후원을 받게 된 그는 감옥 내에서 팔자가 핀다. 더는 신던 운동화를 빼앗기지도, 갑자기 묻지 마 폭행을 염려할 필요도 없어졌다. 아랍인이 코르시카 조직폭력배 수발이나 드는 배신자란 뒷소리를 듣건 말건 기댈 곳 없던 말리크에게는 그가 수고의 대가로 누리는 편의가 더없이 소중하기만 하다. 그렇게 감옥에서 살아남는 법을 익힌 말리크는 점점 교도소 세계에 익숙해진다.

배우는 건 실전 생존법뿐만이 아니다. 제대로 교육을 받아본 적 없던 그는 감옥 내 교육 프로그램을 수강하며 이제야 읽고 쓰는 법을 공부한다. 동료 죄수인 '리야드'는 친형처럼 말리크를 챙기며 갱생을 위해 배워야 한다고 조언한다. 바깥세상에선 얻지 못한 가족을 감옥에서 만난 셈이다. 감옥 생활에 적응도 하고, 제법 지낼 만한 편이 되긴 했지만, 말리크의 시야가 넓어지고 세상 이치를 알게 되자 야심도 커져만 간다.

교도소 안에선 제왕처럼 군림하지만, 바깥으로 나갈 수 없는 세자르는 모범수인 말리크를 이용해 외부 연락 등 임무를 수행하게 만든다. 바깥 외출은 물론, 교도소 내 급사란 지위를 이용해 다양한 역할을 소화하면서 그는 독자적인 '사업'과 '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시작한다. 세자르는 맡은 일을 잘 해내는 말리크를 신임하며 점점 중책을 맡긴다. 그와 동시에 자신의 통제 밖으로 벗어나지 않도록 채찍과 당근을 병행한다. 말리크의 심경은 점점 복잡해진다. 이제 그도 출소 이후의 장래를 구상할 때다.

소년은 어떻게 갱스터로 교육되는가
 <예언자> 스틸
ⓒ 판씨네마㈜
19살, 이제 갓 성인이 된 주인공에게 교도소란 어떤 곳일까? 그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소년원을 전전했고, 정식 교육을 받은 적이 없었다. 간신히 이름 세 글자 쓰고 읽는 법도 소년원에서 익혔다니 그가 살아온 세월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 부모·형제도 없고, 출신에 대해서도 딱히 아는 바가 없다. 프랑스 사회 하층민을 구성하는 아랍계 이민자의 방치된 2세란 정체성은 항상 그에게 부정적인 딱지로 따라붙는다. 세상을 살면서 단 한 번이라도 따스한 대접, 우호적 관계를 맺어본 적이 과연 있기나 할까?

그러나 길거리에서 시비가 붙으면 패싸움이나 하고 경찰과 시비가 붙긴 해도, 주인공은 흔해 빠진 거리의 비행 청소년에 불과한 존재였다. 살인을 의뢰받자 공포에 질리고, 어떻게든 손에 피를 안 묻히려 온갖 궁리를 해보지만, 냉혹한 보스 세자르의 손바닥 안이다. 그에겐 아무런 선택권이 없다. 아랍계 몸종이라 멸시당하며 코르시카 조직의 잡일을 처리하고 청소와 커피 심부름이나 하는 게 주인공의 운명처럼 부여된다. 몸은 편해졌지만, 식민지 시절 하인과 다를 게 없는 신세다.

사실상 주인공은 프랑스 땅에서 야생의 들짐승처럼 살아왔다. 그렇다고 생존을 위한 비법을 달리 가진 것도 아니다. 하루하루 되는 대로 살아온 그에게 감옥은 너무나 위험천만한 곳이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강요된 살인을 해내고, '살인자'가 된 그에게 1단계 생존이 허락된다. 수명 연장을 이룬 주인공은 이제 장기 생존을 위해 필요한 힘과 지식을 갖춰야 한다. 영화는 마치 컴퓨터 게임에서 주문된 요구사항을 충족하면 상급 단계로 올라가듯 차례로 말리크에게 임무와 계기를 부여한다.

그 첫 단추는 기껏해야 폭행과 좀도둑질이나 해봤을 소년이 첫 번째 살인을 저지르는 과정에서 출발한다. 아랍계 출신을 연상케 하듯 동물을 도축하는 방법으로 그는 '동포'로 대하며 경계심을 접은 '레예브'를 목을 베어 살해한다. 그렇게 1차 관문을 통과한 주인공은 감옥에서 첫 '1년'을 넘기며 한 순환을 경험한다. 그다음엔 정석적 의미의 학교 교육으로 교도소의 '시민'이 될 차례다. 형 같은 동료 죄수 '리야드'가 교사이자 가족이 되어준다. 한편 주인공을 후원하는 코르시카 조직 '코르스'는 아둔하고 물정 모르던 그에게 '눈과 귀'를 달아준다. 교도소 내 다양한 세력의 동향을 파악하고 연락망의 중추가 되면서 그는 권력의 중심부로 진입한다.

살림살이 나아졌다 해도 세자르의 하인에 불과하던 말리크는 마약상인 '집시' 조르디와 연결하며 처음으로 독자적 사업을 개시한다. 물론 자신들에게만 충성하길 바라는 코르시카 조직에 알려지면 큰일이다. 아슬아슬한 줄타기 속에서 주인공은 감옥의 안과 밖을 연결하는 유통망을 구축하고 사업망을 확장한다. '체험 삶의 현장'처럼, 경영학과에선 절대로 배울 수 없는 지하 '실물 경제학'을 익히는 과정이 차례로 펼쳐진다.

범죄를 양성하는 역설
 <예언자> 스틸
ⓒ 판씨네마㈜
의지할 곳 없던 말리크는 이제 집시 조직은 물론, 교도소 내에서 날이 갈수록 늘어나는 아랍 이민자 폭력단과 중간 연결책으로 자리 잡는다. 세자르는 자신들의 영향력이 미치지 못하는 아랍계 수용자를 통제하기 위해 주인공을 활용하고, 기회를 이용해 말리크는 '핫산' 등의 보스와 직거래를 튼다. 그 연줄을 활용해 외부 마약 유통망 사업 경쟁자를 정리하고, 세자르의 심부름 때마다 자신의 사업 네트워크도 과외로 확장하게 된다. 격세지감이란 표현이 모자랄 정도다.

주인공의 본새도 환골탈태다. 처음엔 허드렛일이 고작이던 게 이제 비밀 교섭 특사로 정장을 차려입고 타 조직 보스와 면담하는 중책을 수행한다. 감옥에 득실대던 코르시카 조직원이 하나둘 가석방되면서 일손이 모자랐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가중된 역할을 활용해 말리크는 자기만의 세력을 형성한다. 세자르는 이를 알면서도 적당히 눈감을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본심은 아랍계를 내려다보는 걸 숨길 수 없다. 물론 말리크도 이를 간파하고 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온다. 세자르 덕에 정기적으로 외출하면서 말리크는 바깥에서 살아갈 법을 배우고 미래를 준비한다. 형제 같은 리야드의 가족과 어울리며 어린 아들의 '대부'가 되어준다. 리야드가 석방 후 자리를 잡게 도와준 이슬람 사원 네트워크에도 연이 닿는다. 물론 순수한 갱생과 정착 준비를 위해서만은 아니다. 이민자 사회에서 구심이 되는 종교기관이나 연결망을 활용하기 위해서다. 그런 가운데 자신에게 예정된 운명을 깨달은 말리크는 감옥이란 '학교'에서 배운 걸 실습하고 '졸업'하기 위한 마지막 통과의례 단계를 준비한다. '40박 40일'이 걸리는 고행의 시간이 다가온다.

<예언자>는 주인공이 학년 올라가듯 감옥 내 경험을 통해 학습과 훈련을 쌓아가는 구성이다. 손에 처음으로 피 묻게 한 피해자 레예브, 후견인 동시에 두목으로 군림하는 세자르, 가족이 되어준 리야드 모두 과외교사처럼 실생활에 유용한 지식을 전수하고 훈련을 돕는다. 책을 읽을 줄 알아야 힘이 되고, 자신의 속내를 들키지 않아야 이용당하지 않는다는 생활의 지혜를 그는 목숨 오락가락하는 시험 속에서 단계별로 갖춘다. 그렇게 '힘'을 가진 존재가 되어간다.

필연적으로 도래할 미래
 <예언자> 스틸
ⓒ 판씨네마㈜
영화는 그런 역설적 교육과정의 전모를 순차적으로 관객에게 제시하면서, 이 과정을 통해 프랑스 교정행정은 물론 사회문제에 대한 작가적 입장을 피력한다. 프랑스는 흔히 우리가 연상하는 유럽의 평균적 교도소와는 상당히 다른, 오히려 미국에 가까운 교정행정을 유지하는 나라다. 엄벌주의를 채택하고 사회로부터 격리를 기본으로 삼는다. 교화가 아니라 처벌을 위주로 하다 보니 감옥은 늘 만원이고, 그 수용자 대부분은 사회에서 하층민에 속하는 존재다. 적응하지 못한 이민자와 그 후손들이 감옥마다 득시글거린다.

세자르는 자신이 왕처럼 지배하는 감옥 내에 점점 아랍계가 넘쳐난다며 탄식한다. 자신의 조직원들이 출소하는 걸 환영해야 하지만, 교도소에 코르시카 조직원은 줄어들고 유색인종으로 가득할수록 그의 영향력도 쇠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감옥에 죄수가 넘쳐야 범죄조직에 인원이 충원되고 세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역설이다.

다들 얼른 석방되어 갱생할 수 있다면 누가 위험천만한 범죄단체에 적을 둘까? 프랑스 사회에서 이민자가 정착하지 못하면 당연히 지하 세계엔 그들로 넘쳐날 운명이다. 세자르가 놓친 게 하나 있다. 프랑스 뒷골목을 장악한 코르시카 조직 역시 과거엔 천대받고 무시당하던 역사에서 비롯된 것을. 이제 그들의 위치가 이동했을 뿐이란 점이다.

주인공에겐 감옥에서 다른 선택권이 없다. 살해되거나 노예처럼 지배를 당할 뿐이다. 그게 싫다면, 지배해야 한다. 말리크는 그 생존 법칙에 충실하게 모범생으로 교육받는다. 무섭지만 어느 순간에 그것이 자신의 운명으로 예언되었음을 확신하기에 이른다. 그 결과는 감옥이란 학교에서 별 볼 일 없던 소년이 범죄조직 두목이 되어 졸업=출소하는 기막힌 역전의 현장이다. 근작 <에밀리아 페레즈>로 또 한 번 세상을 놀라게 했지만, 자크 오디아르의 최고작은 여전히 <예언자>라는 사실을 부정하긴 힘들다.
 <예언자> 스틸
ⓒ 판씨네마㈜
<작품정보>

예언자
Un Prophète / A Prophet
2009|프랑스|범죄, 드라마, 스릴러, 하드보일드
2025.04.02. (재)개봉|155분|청소년 관람불가
감독 자크 오디아르
출연 타하르 라힘, 닐스 아르스트럽
수입/배급 판씨네마㈜

2009 62회 칸영화제 심사위원대상
 <예언자> 포스터
ⓒ 판씨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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