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받아도 기쁨은 절반...나머지는 한심하고 부끄러운 마음"
[외교부 공동취재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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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나카 사토시 니혼 히단쿄(일본 원수폭 피해자 단체 협의회) 대표이사 |
| ⓒ 외교부 공동취재단 |
단정한 백발의 노인은 1945년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될 당시 17개월 아기였다. 노인이 활동한 단체는 지난해 12월 노르웨이 오슬로에 초대받아 세계적인 상을 받았다. 평생 사회운동을 해온 공로를 인정받았지만 그 기쁨은 크지 않았고, 절반은 부끄러움이었다고 했다.
수십 년 세월 동안 '핵무기 금지'를 외쳐왔고, 2017년엔 UN이 핵무기금지조약(TPNW)을 채택하는 등 성과를 이뤘지만, 핵무기에 큰 피해를 입은 유일한 나라이자 자기 조국인 일본이 이 조약에 가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인은 "우리는 피폭자로서도 일본 국민으로서도 정말 부끄럽다"라며 "우리는 일본 정부에 핵 보유국과 비보유국 사이에서 가교가 되는, 적어도 옵저버로서만이라도 TPNW 회의에 참가해 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미국의 핵무기를 빌리는 처지여서 참가가 어렵다'고 한다"라고 한탄했다.
하지만 "그것을 시정하는 게 피폭 80년을 맞은 과제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하는 노인의 표정에 잠시 비장함이 스쳤다.
한강이 노벨문학상 받을 때, 노벨평화상 받은 니혼 히단쿄
한국이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에 열광할 때, 일본의 한 단체에 노벨평화상이 주어졌다. 1956년 결성된 니혼 히단쿄, 즉 '일본 원수폭 피해자 단체 협의회'는 핵무기가 다시는 사용되어선 안된다는 것을 증언하고, 2017년 UN의 TPNW 채택을 위해 노력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외교부 공동취재단은 지난 16일 히로시마시 오테마치 히로시마평화회관에서 다나카 사토시 니혼 히단쿄 대표이사를 만났다. 다나카씨는 지역 단위의 피폭자 단체와 관련한 일도 여럿 맡고 있다.
그는 노벨평화상 수상 공로를 "우리가 잘했다는 게 아니고 (그동안의) 운동에 보답을 받은 것도 아니다. 다른 노벨상처럼 발명을 해서 받은 것도 아니고. 다만 핵무기를 없애자는 운동이 핵 금기, '핵을 전면적으로 없애야 한다'는 우리의 주장이 나이 먹고 나서야 인정을 받은 것"이라고 평가하면서 "그것과 함께 피폭자들에게 '오랫동안 수고하셨다'는 위로의 차원도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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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45년 8월 9일 나가사키 원폭 투하 직후의 버섯구름. 나가사키 인구 24만 명 중 7만 4천여 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
| ⓒ wiki commons |
다나카씨는 "최근 1년에도 10명 정도의 사람들이 새로 피폭자로 인정받고 있다. (원폭 투하로부터) 80년 가까이 지났는데도 피폭자가 총 몇 명인지 알 수가 없다"라며 "피폭 2세, 3세, 4세 시대가 됐어. 어마어마한 숫자의 사람들이 (피폭의) 유전적인 영향을 걱정하면서 살고 있다"고 말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원폭 문제, 피폭의 영향이라는 것은 옛날 이야기가 아니다. 과거의 문제가 아니다. 현재의 문제다. 여러분과 우리의 문제이자, 미래까지 계속되는 문제이다."
"곽귀훈씨의 재판 투쟁으로 해외에 살아도 지원받을 수 있게 돼"
니혼 히단쿄는 노벨상 시상식에 한국 대표로 정원술 한국원폭피해자협회장과 이태재 한국원폭피해자후손회장 2명을 초청해 함께 참석했다. 시상식 연단에 오른 다나카 데루미 니혼 히단쿄 대표위원은 연설에서 한국인의 피해도 컸고 한국 피해자들이 오랫동안 함께 투쟁해 왔다는 점을 언급하기도 했다.
원폭 피해자들은 피폭자 인정을 받고 '건강 수첩'을 받으면 일본 정부로부터 의료 등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데, 과거엔 외국인이 이런 지원을 받기는 어려웠다. 해외에 있는 피폭자에 대한 지원은 2002년부터 시작됐는데, 이와 관련해 다나카 대표이사는 한국인 고 곽귀훈씨의 '재판 투쟁'으로 그게 가능해졌다고 공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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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판 투쟁'의 주인공 곽귀훈씨(오른쪽) |
| ⓒ 이철우 |
최근의 한국 상황도 잘 알고 있었다. 국민의힘 등 여당을 중심으로 핵무장론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을 언급한 다나카씨는 "한반도 사람들은 '원폭 투하로 전쟁이 끝났으니, 원폭은 민족을 해방시켜 준 것', '원폭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는 생각이 있다"라며 "피폭자들 가운데서도 핵 개발에 찬성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했다. 국적에 따라 피폭자들 간에도 핵무기에 대한 생각에 온도차가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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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나카 사토시 니혼 히단쿄 대표이사 |
| ⓒ 외교부 공동취재단 |
한국 법원이 일본 기업에 강제동원 피해자에게 배상하라고 판결하자 일본 정부가 반발하면서 한일 관계가 악화됐던 일을 묻자 다나카씨는 "비판적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물론 일본 정부가 (배상 책임을) 100% 부정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일 양국 정부가 기금을 만들었다"라는 단서도 달았다.
다나카씨는 "기본적으로 우리는 한일청구권협정으로 다 해결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개인에 대한 보답(배상)은 해야 한다고 본다"라며 "보답 방법 대해서는, 기금과 관련해선 그 사람들(강제동원 피해자) 살아 계실 때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게 맞다"라고 말했다.
다나카씨는 "피폭자들은 그동안 원폭을 투하한 미국이 아니라 일본 정부에 대해 보상하라고 계속 운동을 해왔다. 하지만 그건 충분한 요구 방법이 아니라고 본다"라며 "즉 미국에도 보상을 받아야 한다고 본다. 그게 올해 과제"라고 말했다. 또 "그래서 한일 간 문제와 우리 피폭자가 미국에 대해 요구하는 것은 개인의 청구권이라는 점에서 공통된 면이 있다"라고 했다.
'핵무기를 완전히 없애'는 데 가장 큰 장벽은 역시 국제정치 이론으로 굳어진 '핵 억지론'이다. 다나카씨는 핵공격이 두려워 전쟁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논리 때문에 핵무기가 계속 퍼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5개의 핵 보유국만 인정하고 나머지 나라는 핵을 가지지 말라는 NPT(핵확산금지조약)체제가 인도·파키스탄·이스라엘·북한 등의 핵확산을 막지 못했다는 것이다.
"NPT가 그렇게 만들고 있는 거다, 핵 군축 노력을 안 하니까 설득력이 없다. '너희도 다 가질텐데, 나도 가지겠다' 이렇게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핵을 가지고 있으면 안전하다'라는 사고방식이 있는 한 핵무기를 가진 나라는 늘 수밖에 없다."
그는 "핵 보유국이 우선 하나씩이라도 줄이려고 노력하는 것을 세계에 보여주는 게 새롭게 핵을 보유하려는 나라를 설득하고 핵무기를 없애는 길"이라며 "미국·중국·러시아·영국·프랑스 등 5개 핵 보유국이 TPNW에 동시 가입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라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한 최소의 조건은 핵무기를 없애는 것이라고 우리는 호소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핵 금기를 모든 세계의 공통된 인식으로 만들어 핵을 없애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핵무기를 사용한 사람들의 책임도 촉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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