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격의 거인'보다 높다... 일본 애니 떠받치는 이 작품의 인기

김성호 2025. 3. 20. 0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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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의 씨네만세 983] <귀멸의 칼날> 4기 합동 강화 훈련편

[김성호 평론가]

▲ 귀멸의 칼날: 합동 강화 훈련편 스틸컷
ⓒ 유포터블
현 시점 일본 만화 및 애니메이션 산업의 굵직한 기둥 중 하나라 불러도 좋은 것이 <귀멸의 칼날> 시리즈다. 21세기 들어 연재를 시작한 만화 가운데 누적판매량 1억 부를 넘긴 6개의 작품 중 하나이며, 개중 가장 많은 판매고를 올린 작품이기도 하다.

1억부 클럽이라 불리는 그리 길지 않은 목록 가운데 <귀멸의 칼날>은 일곱 번째 자리에 올라 있다. 위로는 <원피스>부터 <드래곤볼>, <나루토>, <슬램덩크> 등 전설적인 작품들이 위치하고, 바로 아래엔 역시 한국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구가한 <진격의 거인> 시리즈가 자리한다. <귀멸의 칼날>이 가진 위상이 어떤 것인지를 알만도 하다.

만화의 성공이 TV애니와 극장판 애니, 블루레이와 DVD, 관련 상품 판매까지 전방위적인 콘텐츠 산업의 순차적 순환으로 이어지는 일본이다. 다양한 기관에서 서로 다른 기준으로 측정한 산업규모가 대체로 30조 원을 상회한다고 추정되는 가운데, 유럽과 미주 등으로 확장돼 가는 일본 콘텐츠의 인기가 시장규모를 더욱 키울 것으로 전망된다.

<귀멸의 칼날>은 그 신상이 철저히 베일에 싸인 작가 고토게 코요하루의 원작 만화로부터 출발했다. 2016년부터 2020년까지 <주간 소년 점프>에 연재한 첫 작품이 의외의 성공을 거둔 뒤 곧장 TV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됐다. 전형적이고 밋밋한 구성이며 완급조절에 실패한 듯한 전개까지 단점이 없지 않았으나, 선명하고 호소력 있는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의 캐릭터가 매체를 달리했을 때 파괴력을 발할 수 있으리란 기대가 크게 작용했다.

'귀멸의 칼날' 신드롬은 계속될까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유포터블의 소토자키 하루오가 총연출을 맡은 1기는 원작의 단점을 보완하고 장점을 극대화해 <귀멸의 칼날> 시리즈의 오늘을 있도록 했다. 1기부터 극장판인 무한열차편, 2기 '환락의 거리'를 거쳐 3기 '도공마을'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 동안 관객은 혈귀로 변한 동생을 치유해 인간으로 되돌리려는 오빠 탄지로의 모험을 깊이 응원하게 된다. 여느 만화며 애니의 주인공보다도 더 선하고 이타적이며 열정적인 탄지로의 모습은 다분히 만화적이지만 그래서 더욱 큰 울림을 전한다.

각자도생의 시대라 불리는 한국과, 그와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희망 없고 쇠락한 일본의 오늘 가운데서 인간성과 관계, 공동체의 가치를 일깨우는 작품의 울림이 결코 작지 않은 것이 도리어 놀랍다. 작품은 탄지로의 개별적 여정이 더욱 큰 세계와 맞닿는 과정을 비춘다. 혈귀와 인간이 대립하는 <귀멸의 칼날> 속 세계엔 귀살대라 불리는 혈귀를 멸하는 조직과 혈귀들을 통해 세상을 어지럽히는 흑막 속 존재가 대립하고 있다. 그저 동생을 지키고 치유하려 했던 탄지로가 차츰 그 너머의 뜻에 귀의해나가는 과정은 차라리 필연적이라 해도 좋겠다.

<귀멸의 칼날> '합동 강화 훈련편'은 지난해 후지테레비를 통해 방영된 네 번째 TV애니 시리즈다. 그 대단한 인기 덕택에 넷플릭스와 왓챠, 티빙, 웨이브 등 국내 다수 OTT가 약간의 시차를 두고 곧장 서비스를 개시했다. 앞선 시리즈와 비교해 비교적 짧은 8회 차로 구성됐으나 일본은 물론 한국 여러 OTT에서도 매주 새로운 에피소드가 공개될 때마다 조회수 순위 최상단에 오를 만큼 화제를 모았다. 그저 일부 마니아, 소위 오타쿠들의 전유물이라 여겨졌던 일본 애니가 대중문화의 중심으로 진입했음을 알게 하는 기록이었다.

4기는 제목처럼 탄지로와 주변인들의 훈련을 그린다. 도피와 만남, 음모와 혁파, 추적과 실패 등이 엇갈리는 지난 이야기가 모조리 생과 사를 건 실전이었다면 안전한 후방에서 이뤄지는 훈련이 대부분의 에피소드를 채우는 것이다. 인물들이 목숨을 걸고 혈전을 벌이지 않는 데다 전체 이야기가 새로운 장으로 진입하는 것도 아니어서 전과 같은 긴박감은 찾을 수 없다.

지난 3기 '도공마을'편이 역시 휴식처럼 보이는 일상 가운데 찾아든 혈귀의 습격과 그에 대응하는 과정을 통해 인상적인 드라마를 펼쳤단 걸 생각하면 4기는 거의 재료 없이 저녁상을 채운 꼴이 아닌가 싶어질 정도다(관련기사: '칼잡이'의 이야기가 울림을 주는 이유 https://omn.kr/252yj).

이야기는 3기의 끝으로부터 시작된다. 탄지로의 동생 네즈코는 지난 결전의 끝에서 태양을 극복한다. 해가 떠 있는 동안에는 활동할 수 없었던 혈귀의 단점을 극복하고 대낮에도 바깥에 나설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를 알아차린 혈귀들의 수장 키부츠지 무잔은 숙원인 태양의 극복을 위해 네즈코를 목표로 삼는다.

쉬어갔음에도 여전한 인기
▲ 귀멸의 칼날: 합동 강화 훈련편 스틸컷
ⓒ 유포터블
무잔과의 결전이 예고된 가운데 귀살대 최고의 전력인 주들은 전체 귀살대의 역량을 끌어올리기 위한 합동강화훈련을 실시한다. 각 주마다 제 장기를 살린 훈련방식으로 찾아든 대원들을 녹초로 만든다. 탄지로는 그 모든 훈련에서 독보적인 성취를 이루며 성장한다. 배우고 성장하는 일이 매 회차마다 이어지는 가운데, 지난 시리즈에서 거듭됐던 혈귀와 귀살대의 대결은 보이지 않는다.

말하자면 4기 전체가 쉬어가는 것인데, 그저 한두 편의 에피소드가 아니라 기 전체를 이와 같은 이야기로 채운 선택이 낯설고 놀랍다. 조금만 긴장이 무너져도 순식간에 채널을 돌리는 현대인들의 영상 콘텐츠 소비행태에 비추어, 스스로 그 흐름을 늘어뜨리고 쉬어가는 선택이 결코 쉽지 않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포터블의 선택은 적중했다. 시청률이며 조회수가 빠지리라는 예측에도 불구하고 시리즈는 일본과 한국, 전 세계에서 고공행진을 계속했다. 귀살대 최고의 정예라 불리는 여러 주들을 한 명씩 찾아 탄지로를 포함한 귀살대원들이 집중적인 훈련을 받는 평이한 과정이 대부분의 회차를 채웠음에도 시청자의 이탈은 얼마 되지 않았다. 탄지로와 그를 위시한 캐릭터들에 대한 애정, 이들이 향후 맞이할 대결전에 대한 기대감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 만한 일이다.

놀랍게도 4기 가운데는 이렇다 할 승부수가 자리하지 않는다. 마지막 회차에서 끝판왕이라 해도 좋을 키부츠지 무잔이 등장해 여러 주와 탄지로 등 귀살대 정예들을 끌고 제 본진으로 도망치는 사건이 빚어질 뿐이다. 그를 통해 다음 시리즈에서 이제껏 기다려왔던 일대 격전이 이루어지리란 기대를 품도록 하지만, 4기 전체는 그를 위한 뜸들이기 역할에 그칠 뿐이다. 훗날 전체 시리즈가 완결된 이후 시간 여유가 없는 시청자가 4기를 아예 건너뛴다 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다.

그럼에도 4기는 <귀멸의 칼날>이 지닌 여력이 어떤 것인가를 돌아보도록 한다. 기존 애니는 물론 영상 콘텐츠가 갖춰야 할 기본적 미덕을 모두 내팽개치고 평이한 이야기를 보여준다 해도 버텨낼 수 있는 힘이 있단 것을 과시한 것이다. 그 근간은 다른 작품에선 쉬이 구할 수 없는 특별한 캐릭터, 또 부족한 이야기를 보완하는 세계관과 액션의 힘에 있는 것 아닌가.

무엇보다 동생과 친구, 급기야 한 번도 인연을 갖지 못한 세상 모든 인간들을 위해 끝없이 전진하는 주인공 탄지로의 드문 인간성에 대한 동경이 남의 피를 빨아먹는 혈귀 못잖은 이들로 가득한 세계 속에서도 강력한 힘을 발하는 것이란 확신을 관객은 이 시리즈의 흥행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일이다. 이야말로 <귀멸의 칼날> 4기가 보인 최대의 미덕이다.
▲ 귀멸의 칼날: 합동 강화 훈련편 포스터
ⓒ 유포터블

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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