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벤져스 루소 형제가 만든 넷플릭스 영화, 아쉬움만 남네

조영준 2025. 3. 19.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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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버링 무비 446] 영화 <일렉트릭 스테이트>

[조영준 기자]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일렉트릭 스테이트> 스틸컷
ⓒ NETFLIX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01.
흔히 루소 형제라 불리는 두 감독, 형 앤서니 루소(Anthony Rusoo)와 동생 조 루소(Joe Russo)에 대해 먼저 이야기해야겠다. 누군지는 몰라도 이들이 만든 영화 한 편 정도는 직접 봤거나, 분명히 들어봤을 법하다. MCU(Marvel Cinematic Universe) 세계관의 페이즈 3에 해당하는 <캡틴 아메리카 : 윈터 솔져>(2014),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2016), <어벤져스 : 인피니티 워>(2018), <어벤져스 : 엔드게임>(2019)이 모두 이들이 연출한 작품에 해당한다. 이 작품 이전에도 <웰컴 투 콜린우드>(2002), <유, 미 앤 듀프리>(2006)와 같은 저예산 작품이 있었다. 하지만, <어벤져스>(2012) 시리즈 이후 10여 년에 달하는 긴 시간 동안 MCU의 세계관을 조직하고 팀업 무비의 시대를 열면서 자신들의 이름과 재능을 세상에 알리기 시작했다.

당시 MCU의 수장이었던 케빈 파이기는 제대로 된 이력 하나 없던 두 사람에게 제작사의 운명이 걸린 배팅을 했고, 그 결과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큰 성공을 가져다주었다. <어벤져스 : 인피티니 워>와 <어벤져스 : 엔드게임>은 각각 월드와이드 20억 달러가 넘는 성적(제작비의 약 7배에 해당하는 수치)을 거뒀고, 마블에서 연출한 작품의 누적흥행으로만 스티븐 스필버그, 제임스 카메론 감독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많은 수익을 창출해 냈다.

2019년 <어벤져스 : 엔드게임>을 마지막으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떠난 루소 형제는 20세기 폭스와 함께 새로운 제작사를 설립할 것이라는 소문이 있었으나 결렬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이후 연출한 두 편의 영화 <체리>, <그레이 맨>이 전작들에 비해 다소 아쉬운 평가를 받았다는 것이며, 오늘 이야기할 이 작품 <일렉트릭 스테이트>는 혹평을 받으며 넷플릭스가 선택한 최악의 작품으로까지 언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일렉트릭 스테이트> 스틸컷
ⓒ NETFLIX
02.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일렉트릭 스테이트>는 스웨덴 작가인 시몬 스톨렌하그의 동명 그래픽 노블을 원작으로 하는 작품이다. 루소 형제와 함께 <캡틴 아메리카>, <어벤져스> 시리즈의 시나리오 작업을 도맡았던 크리스토퍼 마커스와 스티븐 맥필리가 이번 작품에서도 함께 호흡을 맞췄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들의 협업은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대체로 황폐하고 기괴하면서도 디스토피아적 감상을 주는 원작을 들고 이들이 한 일이라고는 80-90년대 디즈니 가족 동화를 연상하게 만드는 어린이 친화적인 감성을 불어넣는 일처럼 보인다. 독창적인 화풍으로 깊은 인상을 남기는 대부분의 이미지컷을 우스꽝스러운 액션과 무의미한 개그 코드를 담은 형편없는 대사로 점철해 버린 것이다.
영화의 대략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미셸(밀리 바비 브라운 분)은 천재성을 타고난 동생 크리스토퍼(우디 노먼 분)와 행복하게 살아가던 중, 인류의 편의와 발전을 위해 개발된 로봇들이 반기를 들고 일어나며 발생한 전쟁을 경험항다. 인간은 이선 스케이트(스탠리 투치 분)라는 인물이 고안한 기술 '뉴로캐스터 네트워크'를 통해 전쟁에서 승리하며 로봇을 추방구역으로 몰아내는 데 성공하지만, 그 과정에서 미셸은 동생을 비롯한 가족 모두를 잃고 만다. 어느 날, 동생이 좋아했던 TV시리즈의 마스코트 코즈모를 닮은 로봇이 그를 찾아와 자신이 크리스토퍼이며, 신체가 어딘가에 억류되어 있다고 말한다. '신경 분기'라는 기술을 통해 한 번에 두 장소에 존재할 수 있는 '뉴로캐스터 네트워크'를 이용해 누나인 미셸을 찾아온 것이다. 두 사람은 동생 크리스토퍼의 실체가 있을지도 모르는 곳을 향해 여정을 떠나게 되고, 그 과정에서 밀수업자 키츠(크리스 프랫 분)와 그의 동료 로봇인 허먼(안소니 맥키 분)의 도움을 받는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일렉트릭 스테이트> 스틸컷
ⓒ 시몬 스톨렌하그 홈페이지
03.
작품의 대략적인 내용조차 평면적으로 건조하게 쓸 수밖에 없는 이유는 영화 자체가 조금도 입체적이지 못해서다. 영화의 목적이나 가치관, 메시지를 생각하기도 전에 이 이야기가 시청자(관객)에게 어떤 내용으로 전달되고자 하는지조차 가늠하기가 어렵다.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팝콘 무비'는 최소한의 오락성을 바탕으로 관객들의 이목을 끌기라도 하지만, 이 영화 <일렉트릭 스테이트>는 그나마 세계관을 지탱하기 위한 여러 종류의 로봇 외에는 흥미를 주지 못한다. 그마저도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때의 이야기다.

같은 맥락에서 원작인 시몬 스톨렌하그의 저서에 담긴 이미지적 내러티브를 시각화하며 또 하나의 콘텐츠로 승화시키는 데 실패한 것처럼 보인다. (원작의 이미지컷 일부는 작가의 오피셜 페이지인 simonstalenhaq.se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영화는 그저 원화 속 캐릭터의 외형을 영화의 캐릭터로 소비하는 수준에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로봇 세력의 리더로 그려지고 있는 미스터 피넛(우디 해럴슨 분)은 미국 견과류 시장의 선도 주자인 플랜터스(Planters)의 대표 캐릭터를 차용해오면서 원작의 고유한 분위기를 완전히 훼손하는 모습이다. 이 또한 포스트 아포칼립스적 세계관에서 마지막까지 남겨지는 것이 천박한 자본주의의 마스코트라는 역설로도 해석 가능하겠으나, 해당 지점에서 더 나아가지 못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부여하기는 힘들 것 같다.

04.
서사적인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다. 편의를 위해 이용된 기술이 삶을 침식해오고, 더 나아가 통제에서 벗어나 위협이 된다거나 욕망을 끌어내 위기를 초래한다는 식의 전개는 이런 종류의 SF 작품이 충분히 보여줄 수 있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를 쌓아가는 방식이 피상적이기만 하고, 현재와 과거, 서로 다른 인물이 서로 안고 있는 서사조차 잘 정리되지 않은 채로 교차하면서 전체적으로 어수선하게만 여겨지는 부분이 있다. 나름의 연결성을 위해 미셸이 수업 시간에 뉴로캐스터를 사용하지 못한다거나, 앰허스트 박사가 크리스토퍼와 이선 스케이트 사이에 위치하는 식으로 배치되어 있기는 하지만 이 또한 효과적으로 여겨지지는 않는다.

사이언스 픽션 펑크라는 장르적 설정을 위해 굳이 과거적 시점을 선택해야 했는지도 의문이 남는다. 90년대의 대체 현실을 배경으로 하는 것은 일종의 레트로 테크놀로지의 구현처럼 느껴지지만, 인간과 로봇의 대결 구도와 설정이 가질 수 있는 모든 풍자적 요소가 제거된 상태에서는 그 어떤 것도 제대로 표현되지 못하고 무너져 내린다. 이는 빌 클린턴 행정부 시기를 빌려와 정치적 풍자를 꺼내고자 하는 시도에서도 마찬가지다. 골격이 제대로 일으켜지지 않은 상태에서 사족은 없으니만 못하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일렉트릭 스테이트> 스틸컷
ⓒ NETFLIX
05.
이렇게밖에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이 진심으로 유감이지만, 이 작품의 제작비가 3억 2천만 달러라는 것을 생각하면 마음은 더욱 착잡해진다. 최근 개봉했던 봉준호 감독의 영화 < 미키 17 >(2025)에 들어간 제작비가 1억 1800만 달러라고 알려져 있다. 더 쉬운 예를 들기 위해 루소 형제의 마지막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연출작 <어벤져스 : 엔드게임>의 제작비는 3억 5천만 달러였으니, 이 작품에 쓰인 비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모든 것이 수의 볼륨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지만, 두 작품의 간극을 생각하면 씁쓸하기만 하다. 넷플릭스라는 거대한 스튜디오가 이와 같은 작품에 투자할 만한 여력이 충분하다는 것만을 다시 확인했을 뿐이다. 두 형제 감독은 무엇이 하고 싶었던 것일까.

루소 형제는 이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로 돌아간다. 2026년에 개봉하는 <어벤져스 : 둠스데이>와 이듬해인 2027년 예정된 <어벤져스 : 시크릿 워즈>의 연출을 맡으며 자신들이 가장 빛났던 곳으로 돌아간 셈이다. 이제 두 사람의 행보는 자신들에게 맡겨진 임무, 무너져 가는 마블 멀티버스 사가를 다시 일으킬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달렸다. 이 영화 <일렉트릭 스테이트>를 포함해 마블을 떠나 연출한 작품들의 부진이 형식이나 결과에 구애받지 않고 하고 싶었던 창작에 몰두한 결과였는지, 마블의 거대한 세계관 내에서만 작동하는 제한적인 재능인 것인지는 영영 알 수 없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 영화가 루소 형제의 선명하고 분명한 오점으로 남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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