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50글쓰기] 부산에 사는 아버지의 무력한 생활...해결책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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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현주 기자]
지난달에 친정아버지 생신이 있어 남편과 함께 부산에 내려갔다. 부산에 가면 항상 친정집에 머물지만, 이번에는 오랜만에 여행 기분도 낼 겸 온천 여행 삼아 동래 온천에서 1박을 하고 친정으로 가기로 했다.
동래 온천은 해운대와 더불어 부산을 대표하는 관광지다. 신라 시대까지 유래가 거슬러 올라가는 오래된 온천 주변에는 예전부터 유흥가가 발달해서 내 기억 속의 동래 온천은 항상 사람 많고 번화한 장소였다. 부산에 살 때는 온천욕을 즐기러, 혹은 외식하러 동래 온천에 더러 갔었다. 하지만 부산을 떠나고부터는 발길이 뜸해졌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방문은 오랜만이기도 했고, 더욱이 숙박으로는 처음이었다. 멀쩡한 친정집을 놔두고 다른 곳에서 잔다는 게 좀 어색하긴 했지만, 익숙한 곳에서 여행자가 되어보는 낯선 경험도 재미있을 것 같았다. 내심 설레었다.
부산의 별칭 '노인과 바다'
아! 그러나 동래 온천은 더 이상 내가 알던 그 모습이 아니었다. 금요일 저녁임에도 불구하고 거리는 썰렁했고 불 꺼진 점포들이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한때 동양 최대 규모라고 자랑하던 허심청 주변에만 간신히 사람들이 좀 다닐 뿐이었다.
마지막 비행기를 타고 내려온 남편과 늦은 저녁을 먹으려고 숙소 밖으로 나왔던 우리는 거리를 걷는 내내 당혹스러운 기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서울내기인 남편이 옆에서 웅얼거렸다. "동네가 영 힘이 없네." 나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도대체 내 고향 부산이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대한민국 제2의 도시, 부산의 쇠락은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최근 부산의 인구 감소는 심각하다. 나라 전체가 인구 감소와 고령화로 몸살을 앓고 있다고는 하지만 부산은 그 정도가 가장 심하다. 24년 12월 기준 부산의 인구는 약 326만이다.
내가 학교에 다니던 90년대 초에는 398만으로 400만에 근접했었다. 그때는 곧 400만, 450만, 500만까지 갈 거라고 기대했었다. 지금은 400만은커녕 300만까지 줄 거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일자리가 없어 젊은 층이 썰물처럼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빈자리에는 노인만 남았다. 그래서 부산은 고령 인구 비율도 높다. 전국 평균이 19.2%인데 부산은 23.2%로 전국 최고다. 오죽하면 부산의 별칭이 '노인과 바다'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는 웃었다. 하지만 불 꺼진 동래 온천 거리를 직접 보니 그 말이 가슴에 훅 들어왔다.
'노인과 바다'라는 말은 몇 년 전 친정아버지에게 처음 들었다. 그때 우리 가족은 시원한 바람이 부는 대청 민주화 공원의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산책길에 있었다. 저 아래로 항구까지 이어지는 길에는 다닥다닥 붙은 집들과 건물들이 빼곡했고 그 앞으로 빨간 부산대교가 푸른 바다 위에 그림처럼 걸려 있었다.
당시에도 아버지는 고혈압, 척추협착증, 난청 등 여러 가지로 불편하셨지만 그래도 그럭저럭 아직 괜찮을 때였다. 그러나 최근의 아버지는 여기에 소화불량, 불면증, 변비 등 여러 가지 다른 증상이 더해져 사는 게 이만저만 힘드신 게 아니다. 게다가 부도와 사기로 경제적 여력조차 없는 형편이다.
아버지의 유일한 낙은 책읽기, 그러나
육체적으로나 재정적으로나 힘든 노년을 겪고 계신 아버지의 유일한 낙은 책, 영화, TV다. 그래서 아버지의 책상에는 언제나 책이 수북하다. 모두 서점과 헌책방에서 사 오신 것이다.
책을 사는 대신 도서관에서 빌려보는 게 어떠냐고 말씀드려봤다. 돈도 절약되고 집도 깔끔해질 테니 얼마나 좋을까. 그뿐만이 아니었다. 도서관에서는 이것저것 주민을 위한 취미, 교양 프로그램도 운영하니까 그런 강좌도 하나 신청해서 들으시면 재미도 있고 사람도 만나고 좋을 거라고 말씀드렸다.
하지만 아버지는 고개를 저었다. 근처에 도서관도 별로 없고 있다 해도 서울처럼 그렇게 문화 프로그램이 잘 갖추어져 있지 않다는 거였다. 괜히 도서관에 가기 싫어서 그러시는 걸로 생각했다. 그래서 직접 친정 주변 도서관을 찾아봤다.
아버지의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친정집이 있는 부산의 자치구에는 모두 합해서 5개의 공공도서관과 13개의 작은 도서관, 이렇게 총 18개의 도서관이 있다. 이중 친정 가까이에 있는 도서관은 공공도서관 2곳, 주민센터에 같이 있는 작은 도서관 1곳, 이렇게 총 3곳으로 추릴 수 있다.
그런데 공공도서관 중 한 곳은 현재(2025년 3월 기준) 휴관 중이다. 남은 공공도서관 한 곳은 친정에서 도보로 25분 거리다. 버스를 이용하면 19분으로 줄어들지만 버스를 타는 시간은 짧고, 걷는 시간은 15분, 20분이다. 작은 도서관은 걸어서 13분으로 그나마 가까운 편이다.
하지만 친정집은 비탈이 심한 곳에 있어 척추협착증이 있는 아버지로서는 오래 걷는 게 쉽지 않다. 게다가 두 도서관 모두 아버지 말씀처럼 성인을 위한 프로그램이 너무 빈약했다. 그나마 현재 운영되고 있는 프로그램도 없었다.
서울의 도서관 인프라만 생각하던 나는 우리나라 제2 도시라는 부산의 도서관 현실을 보고 놀랐다. 하지만 그 이전에 도서관 접근성 문제부터 해결해야 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해결책은 우연히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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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니어 북 딜리버리 안내문 시니어 북 딜리버리 제도에 대한 홍보 게시물입니다. |
ⓒ 우현주 |
시니어 북 딜리버리가 있다면 아버지뿐만 아니라 현재 부산 인구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어르신들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산비탈에 주택이 많은 부산의 특징상 아버지처럼 책을 좋아하지만 도서관 접근이 어려운 어르신들도 분명 많을 테니 말이다.
시니어 북 딜리버리, 금정구청에서 시작해놓고
좀 더 찾아보니 현재 시니어 북 딜리버리 사업을 전국 처음 도입한 곳이 바로 '부산 금정구청'이었다(관련기사 : '두 마리 토끼' 잡은 금정구 시니어 북 딜리버리, 전국으로 뻗어간다).
지난 2021년 3월 보도에 따르면, 이 사업의 반응이 좋아 전국으로 확대되어 서울에서도 시행되고 있는 거였다. 부산 출신으로서 갑자기 자랑스러워졌다(시니어 북 딜리버리 서비스는 만 65세 이상의 지역 어르신들이 작은 도서관의 책을 배달하는 사업으로 2020년 금정구와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이 손을 잡고 시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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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년 부산 금정구 시니어 북 딜리버리 홍보문. 부산 금정구에서 시니어 북 딜리버리 제도를 제일 먼저 시작했다고 한다. |
ⓒ 우현주 |
그런 의미에서 시니어 북 딜리버리 서비스의 확대 개선을 바란다. 노인 일자리로서의 역할 뿐만 아니라, 아버지처럼 거동이 불편하고 도서관에 편하게 드나들 수 없는 노인들이 집에서 편히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폭넓게 시행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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