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국민이 헌법재판소만...이게 정상인가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가 지체되면서 헌법재판소가 5천만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하는 게 적절하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헌법재판소를 둘러싼 다양한 의견을 소개합니다. <편집자말>
[박찬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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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일을 놓고 장고를 이어가고 있다. |
ⓒ 유성호 |
온 국민이 헌재(헌법재판소)만 바라보고 있다. 이제나저제나 헌재의 탄핵 선고를 기다리고 있다. 지금 이 시점에선 대한민국 최고 권력은 누가 뭐래도 헌재다. 대통령도 아니다. 대한민국의 운명을 헌재가 쥐고 있는 셈이다.
이게 정상일까? 지금의 헌재가 이런 권력을 갖는 게 타당한가? 지금의 헌재가 5천만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이 맞는 것일까? 나는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지금 정도의 헌재에게 그런 권력이 주어지는 것은 적절치 않다.
2.
지금 많은 국민이 대통령 탄핵의 최종 결정권을 헌재에게 주는 것에 의문을 품고 있다. 이에 전문가들이 대안을 제시하기 시작했다. 그중 가장 설득력 있는 대안 중 하나는 탄핵의 최종 결정권을 국민에게 주자는 것이다. 국회가 탄핵 소추는 하되, 탄핵 여부는 국민투표에 부치자는 것이다. 나는 이 안의 타당성에 대해 높이 평가한다. 충분히 논의할 만한 것이라 생각한다. 추후 개헌 논의 때 신중히 논의해 볼 것을 제안한다.
3.
그러나 헌재를 유지하고 그곳에서 대통령 탄핵 심판을 계속 담당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 장점도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헌법수호기관답게 대통령의 비위를 헌법 위반 여부라는 잣대로 꼼꼼히 살펴 대통령 직무 계속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면 포퓰리즘으로 흐르기 쉬운 국민투표보다 공정할 수 있다(이 안의 결정적인 문제는 국민투표를 하게 되면 피소추자의 헌법 위반 문제는 사라지고 극한적인 여야 대립으로 흘러 엉뚱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임). 그것이 탄핵 가부만 묻는 국민투표 방식보다 유사한 비위 방지와 국민 설득을 위해 좋을 수 있다. 따라서 나는 이 방법에 우선 초점을 맞추고 싶다. 헌재를 어떻게 바꾸면 국민의 여망에 맞는 헌법수호기관으로 재탄생시킬 수 있을까?
4.
헌법재판소(헌재)의 속성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정치적 사법기관'이라고 할 수 있다. 헌재는 정치적 분쟁에 대해 헌법과 법률에 위반되었는지 여부를 판단하지만 그 결과는 정치적 지형을 바꾼다. 이것은 헌재가 재판이라는 이름 하에 고도의 정치를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헌재가 아무리 분쟁을 사법적 기준에 의해 정밀하게 판단한다고 해도 그 판단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사법적 해석으로만 받아들이지 않는다. 어쩜 그것은 헌재의 숙명일지도 모른다.
5.
이런 헌재를 헌법수호기관으로 계속 유지하기 위해선 헌재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지 않으면 안 된다. 헌재의 숙명에서 비롯된 비난을 최소화시키기 위해선 헌재는 지금보다 더 공정하고 중립적인 모습으로 재탄생되어야 한다. 지금의 헌재는 국민의 신뢰를 확보하기엔 태생적 한계를 지닌다.
무엇보다 재판관 구성에서 정치권의 영향이 너무나 크다. 9명의 재판관을 대통령, 국회, 대법원이 나누어 지명, 선출해 임명하기 때문에 헌재를 사법기관이라기 보다는 정치기관으로 만들 가능성이 높다. 지금 방식은 누가 보더라도 대통령의 의중이 지나치게 반영된 구조다. 3명의 대통령 지명 몫과 국회 여당 몫, 그리고 대통령의 대법원장 임명권에서 비롯된 우호적 대법원 몫을 고려하면, 대통령 재임기간 중 헌재는 대통령의 의중을 따르는 사법기관으로 변화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6.
지금 탄핵 국면에서 헌재가 비판받고 있는 것은 모두 여기에서 비롯된다. 많은 사람들이 현재의 헌재 구성을 보면서 몇 대 몇의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예측한다. 이런 예측이 단순한 기우라고 말할 수 있을까? 재판관 개개인의 그동안의 성향을 분석하면 오히려 상당한 개연성이 있다고 보여진다. 최상목 대행이 마은혁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는 것도 그를 임명하면 탄핵 가능성이 높아지니 임명해서는 안 된다는 여권의 주장을 수용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지금처럼 헌재가 정치권의 직접적 영향권 내에서 구성되고 중대 정치적 분쟁에 대해선 결과까지 예측이 가능하다고 인식되는 상황에서는 헌재의 판단이 국민 다수를 설득하기 어렵다. 헌법수호기관으로서의 기능을 지금보다 더 안정적으로 가져가기 위해선 무엇보다 헌재의 구성 방법을 근본적으로 개선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해서 9명의 재판관을 많은 국민이 '지혜의 9개 기둥(미국에선 연방대법원 9명의 재판관을 이렇게 부른다)'이라고 여기도록 해야 한다. 그럼 어떻게 하면 헌재를 지금보다 정치권의 직접적 영향력에서 해방시켜 공정성과 신뢰도 높은 지혜의 9개 기둥으로 만들어 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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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을 비롯한 헌법재판관들이 18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박성재 법무부 장관의 탄핵심판 1회 변론에 입장해 착석해 있다. |
ⓒ 공동취재사진 |
헌재의 공정성과 신뢰도를 높인다는 최종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위해서는 몇 가지 구체적 방법론적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 하나는 헌재를 정치권에서 가급적 최대한 해방시켜야 한다. 지금과 같이 정치권이 직접 개입해 재판관을 임명하는 방식은 안 된다. 둘째 재판관의 임기는 가급적 대통령의 임기와 다르도록 해 대통령 입김에서 벗어나도록 해야 한다. 대통령제 국가에선 대통령은 어떤 방식으로든지 헌재 구성에 개입할 수 있기 때문에 특정 대통령 임기 중에 재판관 대다수가 임명되는 일은 막아야 한다. 셋째, 헌재 구성을 다양화해야 한다. 헌재를 특정 성이 독점해선 안 되고 법률가로 전원 구성돼 국민의 생각과 유리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8.
나는 위와 같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차기 개헌을 통해 헌재의 구성 방식을 전면적으로 바꿀 것을 제안한다. 그것의 핵심은 추첨식 추천 임명 방식이다. 이것은 그리스식 직접민주주의를 현대판으로 수용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고대 아테네는 폴리스의 주요 공직자를 추첨식 임명방식(클레로시스)으로 했는데, 이는 시민들에게 공평한 정치 참여 기회를 보장하고 부패와 엘리트층의 정치 독점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였다. 이러한 아이디어를 우리 제도에 접목하면 지금 헌재의 공정성과 중립성을 상당한 정도 개선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다만 현대 사회를 운영하기 위해선 재판관의 전문성이 있어야 하므로 그것을 추첨 방식에 어떻게 수정 접목시키냐 하는 것이 관건이다. 나아가 현대의 성평등을 중심으로 한 다양성의 인권의식을 헌재 구성에서도 구현해야 하는 일이 과제다.
9.
이 방안의 핵심은 다수의 재판관 자격을 가진 후보자 풀을 만든 다음, 풀에 들어온 후보자들 중에서 추첨을 해 최종 후보자를 선택해, 대통령이 형식적으로 임명하는 것이다. 구체적 방법은 다음과 같다.
(1) 헌재는 9년 임기의 9명의 재판관으로 구성하되, 법률가 6명, 비법률가 3명으로 구성하고, 한 성이 60%를 넘을 수 없도록 한다.
(2) 개헌이 된 다음 구성되는 재판관의 임기는 9년으로 하되, 제1기 재판관은 추첨에 의해 3년, 6년, 9년의 임기로 나눈다. (재판관 임기를 대통령 임기보다 길게 해 한 대통령이 재판관 대다수를 임명하는 것을 막아야 함, 이렇게 되면 9년 후부터는 3년 단위로 9년 임기의 재판관을 3명씩 임명하게 됨, 국제형사재판소를 창설할 때 이런 방식을 씀, 이것은 추후 헌법 개정에서 대통령 임기가 4년 중임을 전제로 하는 제안임, 만일 5년 단임인 경우에는 현재의 6년 임기를 유지하고, 제1기 재판관 임기를 2년, 4년, 6년으로 해도 될 것임)
(3) 국회에 헌재 재판관 후보자 추천 관리 위원회를 둔다. (이 위원회는 여야 국회의원과 여야가 추천하는 시민사회 대표자들로 구성)
(4) 위 위원회는 재판관 후보자 풀을 만든다. 후보자 풀은 두 그룹으로 나누어 하나는 법률가 풀(70명), 또 하나는 비법률가 풀(30명)로 한다. 후보자 자격은 법률가의 경우 20년 이상 법률가 자격을 갖고 판검사, 변호사, 법률학 교수의 경험을 가진 자로 하고, 비법률가의 경우 법률가에 상응하는 전문가로 한다. 성비를 고려하여 각각의 풀에서 중 한 성이 60%를 넘을 수 없도록 한다. (헌재는 사법기구이기 때문에 법률가가 중심이어야 함, 다만 법률가만으로 구성하는 것은 국민 다수의 입장을 대변하지 못하기 때문에 비법률가를 넣어 그것을 해소해야 함, 단 비법률가들도 법률가 못지 않은 전문성을 가져야 함, 성비는 현재 국가인권위 위원 구성에서 이미 입법적으로 실현되어 있음)
(5) 후보자 풀은 풀에 들어온 순서대로 3년에 한 번씩 3분의 1씩 교체한다. (향후 재판관은 3년 단위로 3명씩 임명되기 때문에 거기에 맞춰 후보자 풀도 바꾸는 것이 필요함)
(6) 재판관 임명은 헌재에 결원이 생길 때마다 재판관 후보자 풀에서 전임자의 지위를 승계하는 방식으로 무작위로 추첨해 피추첨자를 대통령이 임명한다. (예를 들면 전임자가 여성으로 비법률가였다면, 비법률가 풀에서 여성이 나올 때까지 추첨)
나는 이 안을 정치권과 학계가 심도 있게 논의하길 기대한다. 특히 헌법학자들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좀 더 구체적인 논의를 이어 나갔으면 좋겠다. 그런 경우 나도 열심히 논의에 참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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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일을 놓고 장고를 이어가고 있다. |
ⓒ 유성호 |
덧붙이는 글 | 필자는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인권법 교수이자 변호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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