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니스공은 노란색일까, 초록색일까?

최훈 한림대 심리학과 교수 2025. 3. 19. 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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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훈의 이것도 심리학
사진 = 클립아트코리아
색은 참으로 오묘하다. 빛의 파장과 관련된 물리적 속성인 것처럼 보이면서도, 동시에 인간의 시각 시스템이 만들어낸 심리적 현상이기도 하다. 그래서 동일한 색을 보고도 서로 다른 색을 봤다고 말하는 경우가 있다. 한동안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던 드레스 착시나 신발 착시 등은 동일한 물체의 색을 사람에 따라 다르게 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얼마 전 인터넷에서 이와 비슷한 논란을 봤다. “테니스공은 노란색일까, 아니면 초록색일까?”

해외에서는 오래전부터 회자됐던 이야기이다. CNN 등 다수의 언론에서도 기사가 나갔고, 심지어 2018년에는 세계적 테니스 선수 로저 페더러에게 직접 물어보고 이에 ‘노란색’이라고 말한 장면이 화제가 될 정도로 매우 치열하게 전개된 논쟁이다.

테니스공은 원래 흰색이었다. 귀족 스포츠로서의 전통을 중시했던 테니스는 지금도 다른 스포츠에 비해 복장에 대한 규정이 까다롭다. 가장 귄위 있는 대회라고 불리는 윔블던 대회는 아직도 흰색 복장을 드레스 코드로 규정하고 있는데, 크림색, 아이보리색, 베이지색 등을 인정 하지 않는 것은 물론, 신발, 양말, 헤어밴드, 손목밴드 등이 모두 흰색이어야 한다. (최근에는 액세서리에 대해서는 규제가 조금 약해졌다고 한다) 이러한 흰색 사랑은 공에도 적용됐다.

그런데 흰색 공에 문제가 생겼다. 컬러 TV의 발명·보급 때문이었다. 컬러 TV에서는 흰색 공이 잘 보이지 않았던 것. 그래서 국제테니스연맹에서는 다양한 실험을 통해 지금의 노란색인 듯, 녹색인 듯한 공이 컬러 TV에서 가장 시인성이 좋다는 결론을 내리고 공식구로 인정했다.

연맹이 정한 공의 색이니, 연맹에서 가장 잘 알고 있지 않을까? 테니스공의 색에 대한 논란이 거세지자, 국제테니스연맹은 테니스공의 색이 ‘Optic Yellow(옵틱 옐로우, 우리말로 번역하면 형광 노란색 정도가 될 것이다)’라고 공식적으로 답변했다. ‘옐로우’가 붙었으니, 정답은 노란색으로 이 기나긴 논쟁이 마무리돼야 할 것 같은데,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옵틱 옐로우’라는 색은 ‘옐로우’라고 명명하기는 했지만, 그 정의 자체가 애매하다. 옵틱 옐로우의 정의는 ‘밝은 형광빛으로 노란색과 초록색 사이에 위치한 테니스공의 색’이다. 이름만 노란색일 뿐이다. 그러니 연맹의 공식 답변도 논란의 결론을 내리기는 역부족.

그렇다면 보다 직접적인 방법으로 테니스공의 색을 확인해 보는 것이 나을 것 같다. 색은 빛의 파장과 관련이 깊다. 400~700nm의 범위를 갖는 가시광선 중 450~496nm의 파장을 갖는 빛은 파란색으로, 620~700nm의 범위의 빛은 빨간색으로 지각하는 식이다.

따라서 테니스공의 색을 알아보는 방법은 간단하다. 초록색은 500~570nm의 파장에서, 노란색은 570~590nm 파장의 빛으로 정의될 수 있으니, 테니스공의 파장을 확인해서 그 값이 어느 색의 파장 범위에 들어가는지만 알아보면 되지 않겠는가. 실제 몇몇 실험실에서 측정해 봤다.

그런데 결과는 노란색과 초록색의 범위를 모두 포함하는 파장 값이 관찰됐다. 말 그대로 노란색이면서 초록색이라는 결과가 나왔던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사실 우리가 실제로 보는 색은 단일 파장으로 이뤄져 있는 경우가 별로 없다. 단일 파장의 색은 프리즘으로 보는 무지개 정도일 뿐, 대부분 사물의 색은 여러 개 파장으로 구성된 경우가 많다. 각 파장 별 에너지 강도의 비율에 따라서 우리 눈에 어떤 색으로 보이는 지 결정될 뿐이다.

특히 초록색과 노란색은 서로 이웃한 색으로, 원래부터 그 경계가 애매하다. 정확하게는 경계 자체가 없다. 원래 파장은 연속선상에 있는데, 그 파장을 우리가 색이라는 심리적 범주로 나눈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테니스공의 파장도 정답을 알려주지 않는 셈이다.

여기서 잠깐, 질문을 바꿔보자. ‘테니스공은 노란색인가 아니면 초록색인가?’를 물어보는 대신 ‘테니스공은 무슨 색인가?’로 물어보자. 여러분들은 어떻게 답할 것인가? 의외로 우리는 그렇게 어려움을 겪지 않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냥 ‘연두색’이라고 말하면 되기 때문이다. 실제 노란색이면서도 초록색인 색은 노란색과 초록색을 섞은 색이고 그렇다면 연두색이지 않은가?

이렇게 허탈한 질문이? 왜 이런 간단한 문제가 전 세계적 이슈가 됐던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서구권에서는 ‘연두색’이 없기 때문이다. 정확하게는 연두색을 지칭하는 말이 없다. 있기는 있다. 영어로는 ‘옐로우 그린’ 혹은 ‘라이트 그린’이라고 하는데, 독립적인 색상으로 존재하는 느낌은 아니다. 그 외에 ‘샤르트뢰즈’라고 하기도 하는데, 전문가들의 용어일 뿐,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단어라고 보긴 힘들다. 눈에는 ‘연두색’으로 보이는데, 그 색을 표현할 색 이름이 없으니, 노란색과 초록색의 이름을 빌려야 하고, 그 과정에서 각 개인이 연두색을 노란색의 범주에 넣을지 초록색의 범주에 넣을지를 결정하는 과정, 즉 색의 범주화 과정에서 개인차가 발생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우리말은 영어와 비교해서 색을 묘사하는 단어가 더 다양하다고 한다. 다채로운 접두사와 접미사의 사용 등을 통해 색조, 밝기, 채도를 잘 표현하는 메커니즘을 갖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더 다양한 색상의 세계에서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테니스공의 색에 관한 논란은 드레스 착시처럼 색에 관한 착시의 문제는 아닌 듯하다. 차라리 눈에 보이는 색에 이름을 붙이는 과정에서 생기는 혼란 정도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 와중에 주변의 다양한 색에 하나하나 이름을 붙여가며 살아왔던 우리 선조들의 멋스러움이 보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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