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포커스]우크라 지켜본 대만…"美못 믿어" 각성 목소리
대만 국방비 3%까지 증액 확정
트럼프, 대만 보호에 모호한 입장
중국을 견제할 목적으로 대만을 물밑에서 지원해온 미국이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부쩍 '대만 때리기'에 나섰다. 일각에선 자타공인 '거래의 달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으로부터의 대만 보호와 전 세계 1위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기업인 TSMC를 지렛대 삼아 미국산 제품 구매 등을 압박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중국이 대만을 향한 군사적 위협 수위를 높여나가는 와중에 소셜미디어 시대 미국의 '우크라이나 패싱'을 실시간으로 목격한 대만 내부에선 "각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위협 수위 높이는 중국…대만도 국방비 3%까지 높인다
대만을 향한 중국의 위협 수위는 매년 높아지고 있다. 리창 국무원 총리는 지난 5일(현지시간)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올해 국방비를 지난해보다 7.2% 증액한다고 발표했다. 지난 14일에는 2005년 제정된 중국의 '반분열국가법(Anti-Secession Law)'이 20주년을 맞았다. 이 법은 대만이 독립을 선언하거나 평화적 통일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될 경우, 군사력을 사용할 수 있도록 명문화하고 있다. 특히 2년 후인 2027년은 미국 정부 관계자들이 중국의 대만 침공이 가능해지는 시점으로 오랫동안 주목해온 해다. 중국 인민해방군(PLA) 창설 100주년과 맞물려 군사 현대화 목표가 설정된 해라는 점이 근거로 꼽힌다.
중국의 위협에 맞서 지난 3년 동안 대만 정부는 국민의 지지를 바탕으로 국방력을 강화해왔다. 2022년 2월 러시아 침공 이후 3년간 힘겨운 싸움을 지속해 온 우크라이나는 대만의 중요한 참고 사례가 됐다. 대만은 방위비를 매년 증액해 국내총생산(GDP)의 2.5%를 국방비로 사용한다. 라이칭더 총통도 최근 이를 3%까지 확대하겠다고 공약했다. 다만, 미국은 이마저도 마땅치 않다는 눈치다. 엘브리지 콜비 미 국방부 정책담당 차관 지명자는 상원 청문회에서 이 비율을 10%까지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대만의 방위비 분담을 늘려야 한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과 맞닿아있다.
미국의 태도 변화…요동치는 대만 민심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외교·안보 노선은 오리무중이다. 역대 미 대통령들은 중국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해왔다. 트럼프 대통령도 지난달 26일 각료회의에서 대만 보호 의무에 대한 질문에 "나는 절대로 코멘트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 입장(대만 방어 의무)에 직면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동시에 미 국무부는 지난달 홈페이지에서 '대만 독립 반대' 문구를 삭제했다가 중국 정부로부터 항의를 받았다. 중국국제방송은 궈자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미국은 대만 독립 지지를 멈추고 미·중 관계에 심각한 피해를 주는 일을 그만둬야 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고 전했다.
대만 고위관리들은 대만이 가진 전략적 중요성을 들며 여론 달래기에 나섰다. 프랑스아 우 대만 외교부 차관은 최근 일본 영자신문 재팬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의 안보 공약에 대한 대만인들의 우려에 대해 "우리는 미국이 인도·태평양 지역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며 "미국이 중국이 이 지역을 장악하도록 내버려 둔다면, 그 위험은 즉시 미국 본토로 다가올 것"이라고 반박했다. 웰링턴 쿠 대만 국방부 장관 역시" 미국은 결코 인도·태평양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며 "대만은 워싱턴의 지역 전략 한가운데에 있다"고 했다.
정부의 공언에도 대만인들은 미국의 약속을 못 미더워한다. 미국이 우크라이나를 대하는 태도 때문이다. 지난달 전 세계에 TV와 인터넷으로 생중계된 미·우 정상회담은 대만인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줬다. "우크라이나의 성공은 대만의 성공"이란 샤오메이친 현 대만 부총통의 2023년 발언처럼 대만은 우크라이나를 자국과 동일시해왔기에 감정의 진폭이 컸다. 대만 수도인 타이베이에 거주하는 패션 디자이너 이안 차이는 "그는 젤렌스키를 부하처럼 대했다. 동맹국을 향한 미국의 약속을 더 이상 믿을 수 없다"고 비판해 대만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많은 공감을 얻었다고 홍콩 일간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전했다. 다른 사용자들 역시 "이번 사건을 보고 대만의 진짜 위치를 알게 됐다", "트럼프에게 대만은 언제든 버릴 수 있는 존재인가" 등의 반응을 보였다. 당시 회담을 두고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푸틴의 승리"라고 일갈했다.
TSMC에도 태클 건 트럼프…'거래의 기술' 일환
여기에 한술 더 떠 트럼프 대통령은 대만 국부(國富)의 산실인 TSMC까지 문제로 삼고 있다. 정확히는 TSMC가 글로벌 반도체 산업에서 가지고 있는 영향력과 이로 인한 대미 무역흑자다. 미 온라인 매체 악시오스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언론에 대만에 대한 불만을 종종 토로해왔다. 지난 7일에도 백악관 집무실에서 "우리는 반도체 사업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제 그건 전적으로 대만에 있다. 대만이 우리에게서 훔쳐 갔다. 대부분은 대만에 있고, 조금은 한국에 있다"고 짚었다. 한국 역시 트럼프 대통령의 사정권에 포함돼 있다는 의미다.
대만의 대미 무역흑자는 2024년 기준 1114억달러로 집계됐다. 반도체를 비롯해 하이테크 기술 제품이 상당수를 차지한다. TSMC는 대만인들에게 야시장만큼 대만의 자부심이자 상징적인 존재로 꼽힌다. 전 세계 고급 반도체의 90%를 담당하는 것으로 알려진 TSMC는 대만에 대한 중국의 침공을 막는 '보이지 않는 성벽' 역할을 해왔다. 전 세계의 화두인 인공지능(AI) 경쟁에서 반도체는 곧 힘이다. 반도체가 군비경쟁에 자주 비유되는 이유다.
TSMC가 최근 미국 백악관에서 발표한 1000억달러(약 145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 계획 역시 이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관측된다. 깜짝 발표 이후 대만에선 원천 기술을 뺏길 수 있다는 불안감도 터져 나왔다. 이와 관련해 류징칭 대만 국가발전위원회(NDC) 주임위원(장관급)은 지난 12일 입법원(국회) 대정부 질의에서 미국 투자와 관련해 미국 공장에 '한 단계 뒤처진 기술' 규정을 적용한다는 방침을 재확인했다. 대만 기업이 첨단 공정(N)은 대만에서, 한 세대 낮은 공정(N-1)은 외국에 세운 공장에서 운영하는 'N-1' 규정을 TSMC의 미국 투자에도 적용할 것이란 얘기다. 그는 "정부는 '최신 기술이 건너가지 않는다', '가장 핵심적인 기술은 건너가게 하지 않는다', '국가안보가 우선이다'라는 3대 원칙을 끝까지 고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보니 글레이저 미국 독일 마셜재단 인도·태평양 프로그램 소장은 미국 공영 라디오방송 NPR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대만을 향한 공격적인 태도가 일종의 "거래의 기술"일 수 있다고 짚었다. 거래의 기술은 트럼프 대통령이 쓴 책 제목이기도 하다. 그는 "트럼프가 대만이 본인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게 만들기 위해 이런 지렛대를 확보하려 한다고 본다"고 짚었다. 미국에 '선물 꾸러미'를 건넨 일본, 인도 등처럼 무기와 액화천연가스(LNG) 등을 구매하도록 유도할 것이란 얘기다.
대만 내부에서 끓어오른 '자주국방' 목소리
대만 내부에선 자주국방과 더불어 미국에 내밀 '패'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강해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쏘아붙인 "당신에겐 카드가 없다(You don’t have the cards)"는 비판은 대만에도 뼈아픈 말이었다. 대만 입법원의 외교안보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왕팅유 의원은 대만이 트럼프 정부와의 관계를 원활하게 유지하는 핵심으로 '윈윈(win-win)' 전략을 강조하는 것을 꼽았다. 대만은 미국의 무기 구매를 늘리는 우군이란 얘기다. 그는 또 대만의 방위력 강화를 강조하며 "우리는 친구들이 요청해서 국방 예산을 늘리는 것이 아니다"라며 "우리 스스로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다만, 대만 역시 야당의 반대로 국방 예산 삭감·동결이 이뤄진다는 점에서 정치권의 대화합이 필요한 대목이기도 하다.
전직 국회의원은 NPR에 "라이칭더 총통이 체스 게임의 플레이어가 아니라 체스 말이 될 위험이 있다"며 "트럼프에게 배신당하지 않도록, 대만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 공개 지지 활동을 하는 덩루이윈 활동가는 "대만인들은 우리가 미국에 무엇을 제공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그래야만 미국이 우리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도움을 제공하도록 만들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차민영 기자 blooming@asiae.co.kr
Copyright ©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넷플릭스에서 받은 160억…코인·명품에 다 써버린 감독 - 아시아경제
- "사랑 나누던 곳이 세상 떠나는 곳으로"…日 러브호텔 이유있는 변신 - 아시아경제
- '이게 뭔데?'…"외국인들 싹쓸어 갔다" 편의점서 매출 22배 대박난 음식 - 아시아경제
- "보이면 바로 쟁여" 쏟아진 후기…다이소, 또 나온 '품절대란' 아이템[써보니] - 아시아경제
- "직장 다니면서 월 6000만원 '따로' 벌었어요"…4500명, 부수입 어디서 - 아시아경제
- "할머니, 지금 자면 안 돼요" 치매 걸릴 위험 2배 '쑥'…충격 연구 결과 - 아시아경제
- 홍콩행 여객기 선반에서 '불'…생수·주스에 콜라까지 부었더니 - 아시아경제
- '소름돋는 기술력'…"2년 척수마비 환자, 하루 만에 움직였다" - 아시아경제
- "韓 이곳 굴 절대 먹지마"…美서 판매 중단에 회수 조치까지 무슨 일? - 아시아경제
- "제주여행 너무 비싸요" 불평에…'저렴한 날짜' 찾아낸 한은 직원 - 아시아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