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 넘보는 TSMC, F 발음 타령하는 삼성전자 [대통령을 위한 반도체 특별과외]
[이봉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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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웨이저자 TSMC CEO가 지난 3일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 루즈벨트룸에서 1000억 달러(약 146조 원)규모 미국 투자를 발표한 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함께 연설하는 모습. |
ⓒ EPA/연합뉴스 |
제안 내용을 보면 TSMC가 미국의 대표적인 팹리스 업체들과 함께하지만 지분율은 50%를 넘기지 않을 거라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미국 반도체의 상징인 인텔의 파운드리 부문이 대만으로 넘어가는 모습을 피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직접 운영하겠다는 의도가 읽힙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역시 인텔에 대한 TSMC의 투자를 요구해 왔던 터라 진행이 된다면 별다른 제약은 없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오늘은 이 보도 내용이 파운드리 업계에 어떤 의미인지,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등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복잡하진 않습니다. 기사 제목에 등장하는 다섯 회사에 대해 살펴보는 것만으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으니까요.
세계 최강 파운드리 회사 TSMC
우선 TSMC부터 보겠습니다. 다들 알다시피 TSMC는 세계 최고의 파운드리(위탁 생산) 회사이고 애플, 엔비디아, 퀄컴 등 반도체를 설계하는 팹리스 회사들이 가장 먼저 찾는 회사이기도 합니다. 대만 시장조사업체 트랜드포스가 조사한 2024년 4분기 세계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을 보면 TSMC는 무려 67.1%를 차지해서 독보적인 위치에 있습니다. 2023년 4분기의 61.2%에 비해서 5.9%P 점유율을 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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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SMC 애리조나 팹 전경 |
ⓒ TSMC |
일각에서는 파운드리 업체 가운데 TSMC와 삼성전자를 제외하면 IT업체들이 요구하는 7나노 이하의 선단 공정 기술을 가지고 있는 곳은 없다 보니, TSMC가 쏟아지는 수요를 다 감당하지 못하면 2위 업체인 삼성전자를 찾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최첨단 공정이 필요한 팹리스 업체들은 TSMC의 생산량이 늘어나기를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같은 설계를 맡겨도 TSMC에서 나온 제품이 수율과 품질에서 월등하다는 걸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TSMC가 함께 하자는 회사들의 정체
파운드리는 반도체 설계만 전문으로 하는 팹리스 회사로부터 설계도를 받아 칩을 대신 만들어 주는 사업입니다. 그 때문에 팹리스 업체와의 관계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TSMC가 조인트벤처를 구성하자고 제안했다는 회사들이 모두 팹리스 회사인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엔비디아는 AI 가속기 시장에서 독보적인 존재이며, 퀄컴은 삼성전자의 갤럭시 S25에도 사용하는 고급 통신용 칩의 절대 강자입니다. 브로드컴은 유무선 통신용 반도체를 주로 생산하는 회사이자 최근에는 주문형 AI 가속기 시장에서도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AMD는 CPU 부문에서는 인텔과, AI 가속기 부문에서는 엔비디아와 경쟁하는 회사입니다. 네 회사 모두 TSMC에 생산을 맡기고 있습니다.
트랜드포스가 2024년에 발표한 팹리스 회사 순위를 보면 엔비디아가 33%로 1위, 퀄컴이 18%로 2위, 브로드컴이 17%로 3위, AMD가 14%로 4위입니다. 상위 네 회사의 시장점유율을 다 더하면 82%에 달합니다.
이번 조인트벤처 제안은 세계 제1의 파운드리 회사 TSMC가 그들의 기술과 미국에 있는 인텔의 생산시설을 이용해서 미국 대표 팹리스 기업들의 주문을 모두 다 가져가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습니다. 여기에 이미 TSMC에 주문을 맡기고 있는 애플과 구글까지 생각하면 전 세계 최첨단 칩 생산은 모두 TSMC가 다 독차지하게 되는 셈입니다.
TSMC가 세 개의 팹을 짓고 있는 애리조나에는 차로 한 시간 거리에 300억 달러가 투자된 인텔의 신규 파운드리 팹이 있습니다. TSMC와 인텔의 팹 사이에는 세계 최대 반도체 패키징 회사인 엠코도 자리 잡고 있습니다. 엠코는 이미 TSMC와 패키징 분야에서 협업하고 있습니다. 조인트벤처 구상이 현실화하여 TSMC와 인텔이 손을 잡는다면 애리조나는 말 그대로 세계 최대, 최고 수준의 시스템반도체 클러스터가 될 것입니다.
지금도 TSMC는 고객이 없는 게 아니라 고객의 주문을 처리할 팹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TSMC가 인텔의 팹을 이용한다면 전 세계 팹리스 업체들의 'TSMC 쏠림 현상'은 더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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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항공 사진 |
ⓒ 삼성전자 |
여러 언론의 보도를 종합하면 고대역폭메모리(HBM)에서 밀린 삼성전자가 메모리 부문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파운드리 인력을 메모리 반도체 쪽으로 전환 배치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공정 및 설비 엔지니어 등 기술팀 위주로 이동이 진행될 것으로 안다"(파이낸셜뉴스)는 게 삼성전자 내부 관계자의 말입니다.
삼성전자의 지난해 총 시설투자액은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지만, 반도체를 담당하는 DS부문의 투자는 2023년 대비 2조 원가량 감소했다는 보도도 있습니다. 올해도 투자를 줄일 것으로 전망된다고 합니다. 평택의 팹은 파운드리 대신 메모리 반도체 라인으로 전환하는 중이고, 텍사스에 짓고 있는 파운드리 팹은 완공 시점을 미뤘습니다.
최근에 화제가 된 뉴스는 삼성전자가 파운드리 사업부 직원들에게 '파운드리'라고 한글로 표기를 하면 "f" 발음이 아닌 "p" 발음으로 들릴 수 있어서 영문(foundry)으로 통일하자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냈다는 겁니다. 시간이 곧 경쟁력이라며 자사 직원들을 대상으로 정부·여당에 주 52시간 이상 일을 더 시킬 수 있도록 요구하고 있는 삼성전자 내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치고는 참 한가해 보입니다.
긍정적인 소식도 하나 있습니다. 4세대 4나노 공정의 양산을 시작했다는 겁니다. 이 공정은 AI 칩을 비롯한 고성능컴퓨팅(HPC) 용 칩을 제작하는 데 쓰이는 최신 공정입니다. 최첨단 공정을 안정화했으니 이제 그 공정을 이용해서 제품을 생산하고자 하는 고객만 찾으면 됩니다. 하지만 삼성전자 최첨단 공정을 이용해 자사의 제품을 생산하겠다는 대형 IT 기업은 아직 눈에 띄지 않습니다.
67.1%의 시장점유율을 가지고도 파운드리 산업 지형을 뒤흔들 제안을 하는 TSMC, 한 자릿수 점유율로 떨어진 이후 파운드리 부문의 투자와 인원을 줄이는 삼성전자. 한쪽에서는 미래를 설계하고 있는데, 다른 한쪽은 현재를 버텨내기도 버거워 보입니다.
지금의 모습에서 변화가 없다면 당분간 파운드리 부문에서 삼성전자의 재도약은 기대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삼성전자가 지금보다는 좀 더 큰 그림을 그리는 그런 회사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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