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경아의 행복한 가드닝] 스노드롭이 피었습니다

정원 일은 작정을 하고 나설 때도 있지만, 오다가다 느닷없이 쪼그려 앉아 시작할 때가 많다. 문득 지난해 가을 땅에 묻었어야 했던 튤립 알뿌리가 덩그러니 화단에 남겨져 있는 게 보였다. 그걸 묻겠다고 시작한 일이 내친김에 두어 시간 동안 낙엽을 치우고, 갈대·아스타·딜의 묵은 줄기를 잘라주는 화단 정리로 이어졌다.
그러고 나니 하얗게 꽃을 피운 스노드롭이 보였다. 다 커도 10㎝ 정도 키여서 화단이 지저분하면 놓치기 십상인데 작년에 이어 올해도 어김없이 잘 와준 셈이다. 눈송이를 닮아서 그 이름도 스노드롭인데 공식 학명은 갈란투스(Galanthus)다. 22종 정도가 온대기후인 서유럽에서 자생한다. 몇 년 전, 이 꽃이 너무 갖고 싶어 튤립 알뿌리를 네덜란드에서 수입할 때 나는 특별히 이 식물의 알뿌리를 넣어달라고 부탁을 했었다. 우리나라 날씨에 견디지 못할까 싶어 많이도 못 심고 스무 알 정도 묻었는데, 그중 반이 살아남아 몇 년째 봄소식을 알려준다.

세상 모든 일이 거저 오지 않고, 치러야 할 진통이 있음을 잘 안다. 급격하게 기온이 올라가서 이렇게 봄이 오는구나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화단 청소를 끝내고 밀린 숙제를 다 한 듯 개운한 마음으로 저녁을 준비하는데 갑자기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순간 낮에 본 뽀얀 흰색 꽃, 스노드롭 꽃이 생각났다. 그 연약한 꽃잎이 잘 견디려나. 하지만 난 식물의 강인함을 잘 안다. 크로커스·스노드롭·복수초 등은 이른 봄에 꽃을 피운 채 눈을 맞아도 잘 견딘다는 걸 이미 봐왔기 때문이다.
서양 격언에 3월은 사자처럼 들어왔다가 양처럼 나간다고 한다. 아직은 사자의 으르렁 같은 봄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연약한 꽃 스노드롭이 눈발에도 견디듯, 결국 양처럼 고요하고 따스한 봄은 온다는 것이다. 그때까지 꽃도 나도 우리 모두 꺾이지만 않으면 된다.
오경아 정원디자이너·오가든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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