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재 결장으로 보는 축구 트렌드 : 요즘 센터백은 잘 다치고 잘 꺾인다

김정용 기자 2025. 3. 18.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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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재(바이에른뮌헨). 게티이미지코리아

[풋볼리스트] 김정용 기자= 한때 센터백은 덜 뛰어서 덜 다치는 포지션이었지만, 세상이 바뀌면서 이젠 반대가 됐다. 큰 덩치로 똑같이 뛰어서 가장 잘 다치는 포지션이다.


한동안 다른 포지션은 로테이션 시스템을 가동해도 센터백만큼은 예외였다. 특히 센터백 두 명 조합을 시즌 내내 안정적으로 가동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감독이 많았다. 예를 들어 2000년대 첼시 간판 센터백 존 테리는 14시즌 중 50경기 이상 뛴 시즌이 5회, 40~49경기 뛴 시즌이 6회였다. 부상으로 좀 휘청거린 두어 시즌을 제외하면 거의 매 경기 뛰었다. 약간 뒷세대 선수인 제라르 피케의 경우 바르셀로나에서 주전급으로 14시즌 활약했는데 50경기 이상이 2시즌, 40~49경기가 9시즌으로 역시 가능하면 빼지 않는 선수였다.


요즘엔 그러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다. 선수들이 자꾸 다치거나 컨디션 난조를 겪기 때문이다. 특히 주도적이고 적극적인 전술을 쓰는 팀에서 이런 양상이 많이 발견된다. 맨시티는 과르디올라 감독이 부임한 2016년부터 센터백 영입에 쓴 이적료만 2억 9,910만 파운드(약 5,617억 원)일 정도로 많은 돈을 쏟아부었다. 그 결과 존 스톤스, 에므리크 라포르트, 네이선 아케, 후벵 디아스, 마누엘 아칸지, 요슈코 그바르디올을 차례로 영입했다.


그런데 이들 중 꾸준하고 안정적인 활약을 이어 온 선수는 아무도 없다. 다들 부상이나 부진으로 한두 시즌은 부침을 겪었다. 그래서 그 대체 선수가 계속 영입된 것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맨시티 센터백 중 가장 고침인 스톤스는 앞선 8시즌 중 50경기 넘게 뛴 적은 없고, 40경기 이상도 단 1시즌에 불과하다. 맨시티가 매년 컵대회에서 오래 살아남아 경기 숫자가 엄청나게 많다는 걸 감안한다면 주전 센터백의 기록은 아니다.


더 쉬운 사례는 아스널이다. 아스널은 미켈 아르테타 감독 부임 후 다섯 번의 여름 이적시장을 거쳤는데 유독 센터백 성향의 선수를 잔뜩 영입해 놓고 이들을 측면수비에까지 활용하는 방식을 고수했다. 가브리엘 마갈량이스 한 명만 전문 센터백으로 영입됐고 벤 화이트, 도미야스 다케히로, 야쿱 키비오르, 위리엔 팀버르, 리카르도 칼라피오리가 꾸준히 수급됐다. 아스널의 경우 센터백 듀오 윌리앙 살리바, 마갈량이스는 큰 부상 없이 많은 경기를 소화하지만 풀백으로 이동해서 뛰는 선수들은 돌아가면서 다치기 때문에 저렇게 많은 선수를 영입해 놓고도 가용 자원이 한두 명인 경우가 허다하다.


▲ '장신 테크니션'의 포지션이 된 센터백, 이젠 가장 귀하다


과거에는 센터백이 좀 굼뜨고, 풀백이 좀 작아도 허용이 됐다. 서로 신장과 민첩성을 담당하면서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이뤘다. 센터백의 빌드업이란 패스만 정확하면 됐지 공을 간수해야 하는 발재간까지 많이 요구되진 않았다. 그러다 풀백들이 중앙으로 진출하면서 패스를 많이 전개하는 인버티드 풀백이 중요한 전술 용어로 떠올랐다.


이 점이 강조되던 약 10년 전에는 운동능력이나 신체조건에 약점이 있더라도 빌드업을 우선시하며 수비수로 기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바이에른뮌헨의 단신 풀백 필립 람이 대표적이다. 펩 과르디올라 맨체스터시티 감독도 느린 미드필더 파비안 델프를 풀백으로 배치해 효과를 봤고, 그 제자인 미켈 아르테타 아스널 감독은 미드필더 출신 올렉산다르 진첸코를 풀백으로 둔 뒤 빌드업의 허브로 삼았다.


그러다 빌드업에 치중해 신체조건이 떨어지는 축구가 아니라,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축구가 필요해졌다. 수비라인을 전진시켰을 때 배후를 커버해야 하는 센터백의 운동능력, 그리고 센터백이 아닌 풀백이 이 자리를 커버해야 할 때 상대 공격수와 몸싸움에 밀리지 말아야 한다는 점 등이 부각됐다.


이제 수비수는 '공은 못 차도 덩치만 크면 되는' 포지션이 아니라 '다른 포지션과 똑같은 기술 및 스피드를 가졌으면서 키까지 큰' 선수들의 포지션이 됐다. 국내에서 가장 적극적인 전술을 쓰는 이정효 광주FC 감독도 "공격수는 내가 만들 수 있지만 수비수는 만들 수 없다"며 장신 선수 중 적합한 재능을 찾는 게 어렵다고 말한 바 있다.


김민재(남자 축구대표팀). 대한축구협회 제공
김민재(왼쪽), 에릭 다이어(오른쪽, 바이에른 뮌헨). 서형권 기자
미켈 아르테타 감독과 리카르도 칼라피오리(왼쪽부터, 이상 아스널). 아스널 X(구 트위터) 캡처

▲ 판더펜이 다치고 김민재가 지쳐 쓰러지는 세상, 백업이 더 필요하다


전술의 변화는 센터백의 수준을 향상시키기도 했지만, 이들에게 걸리는 부하를 엄청나게 높이기도 했다. 공격 상황에서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수비라인이 올라가다보니 후퇴할 때 전속력으로 50m 정도 거리를 질주해야 한다. 앤지 포스테코글루 토트넘홋스퍼 감독, 뱅상 콩파니 바이에른뮌헨 감독은 아예 경기장 절반을 센터백 두 명에게 맡겨버리고 나머지 선수들을 다 전진시키기도 한다. 그럴 때 센터백들이 얼마나 큰 신체적인 부하에 시달리는지는 토트넘 수비수들의 줄부상, 바이에른 수비수들의 급격한 스피드 저하를 통해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재능 넘치는 센터백이 무수히 배출되는 프랑스 대표팀을 봐도, 요즘 센터백들의 건강 관리와 컨디션 유지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있다. 프랑스는 유로 2016 결승 진출로 전력을 다 회복한 뒤 최근 5차례 메이저 대회 본선 모두 다른 센터백 조합이 나왔다. 앞선 대회에서 맹활약한 센터백 중 한 명은 부상이나 소속팀에서의 슬럼프로 도태됐기 때문에 안정적인 조합을 오래 유지하는 게 불가능했다.


한국 센터백 중 유일하게 세계수준에서 경쟁 중인 김민재도 비슷하다. 2022-2023시즌 나폴리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경기강도를 맛본 뒤, 2023-2024시즌 바이에른에서는 혹사에 가까운 경기 부담을 견디지 못하고 탈이 나 후반기에는 경기력 난조가 심했다. 그 여파가 이번 시즌까지도 완벽하게 해소되진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이제 센터백은 가장 부상과 슬럼프에 취약한 포지션이 됐다. 과거에는 센터백의 햄스트링 부상이 드물었지만, 토트넘 센터백에게는 가장 흔하다. 큰 덩치로 똑같은 스피드와 활동량을 감당하려면 다리 근육과 관절이 받는 충격이 더 클 수밖에 없다.


이제 강팀이라면 맨시티와 아스널처럼 센터백과 풀백을 모두 소화할 수 있고 몸싸움 능력이 있는 선수를 더블 스쿼드 이상 보유해 돌려가면서 활용하는 게 필수로 떠올랐다. 다른 종목에서도 유독 많이 뛰고, 유독 내구성이 낮은 포지션들이 존재한다. 특히 미식축구처럼 선수생명이 짧고 충돌이 심한 종목은 경기 중 자주 교체해야 될 걸 염두에 두고 충격이 심한 포지션의 선수를 더 많이 구비해놓는 것이 상식적인 선수단 운용이다. 그래서 바이에른은 현재 수비진을 대부분 유지하면서 주전급 센터백을 한 명 더 영입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이는 한국 대표팀 입장에서도 과거처럼 최고 선수 한 명의 출전을 무조건 전제로 두고 그 파트너만 찾는 식으로는 운용이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월드컵 본선은 김민재가 부상 없이 치를 수 있길 빌어야겠지만, 특히 센터백의 이탈 확률은 다른 포지션보다 높다는 걸 염두에 두면서 3배수에 가까운 선수층을 구비해둬야 한다. 김민재의 3월 A매치 이탈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늘 대비해야 하는 확률 높은 일이 됐다.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 풋볼리스트, 대한축구협회 제공, 아스널 X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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