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아니면 안 될 거 같아서..." 영어 배우는 중년 남자 배우의 속내

이준목 2025. 3. 18.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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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JTBC <늦기 전에 어학연수 - 샬라샬라>

[이준목 기자]

"영어도 못하는데 어학연수를 왜 가냐' 이런 이야기가 많았다. 서른 살 늦은 나이에 처음 연극영화과에 가서 배우가 되겠다고 이야기했을때도, 주변에서는 다들 모두 '미쳤냐, 그런다고 네가 배우할 수 있을 것 같냐'는 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어쨌든 배우가 되지 않았나. 어학연수도 마찬가지다. 그래도 이때 아니면 못할 것 같아서, 이번 어학연수를 계기로 다시 한번 도전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덧 현실의 무게를 책임지고 사는 데 익숙해진 중년 남자들에게 '새로운 배움과 도전'이란 과연 어떤 의미일까. 현재 방영 중인 JTBC <늦기 전에 어학연수- 샬라샬라>는 영국 현지에서 영어 어학연수에 도전한 다섯 중년배우(성동일, 김광규, 장혁, 엄기준, 신승환)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체험 관찰 예능이다.

다섯 배우의 영국 여행기
▲ 더늦기전에어학연수 샬라샬라 성동일
ⓒ JTBC
지난 15일 방송된 5회에서는 다섯 배우들의 주말 영국 여행기가 펼쳐졌다. 배우들은 휴일 기간을 맞이하여 영어수업 대신 런던과 브라이튼 지역으로 여행을 떠나는 모습이 그려졌다.

첫날은 각자 로망에 따라 영국 현지에서의 '버킷리스트'를 실천하는 하루를 보냈다. 엄기준과 장혁은 뮤지컬 '레미제라블' 관람을, 김광규와 신승환은 잉글랜드 토트넘 홋스퍼의 홈구장을 찾아가 손흥민의 프리미어리그 경기를 관람했다.

맏형 성동일은 홀로 런던 대영박물관을 찾아가 람세스상과 비너스상을 관람하고, 저녁에는 유람선에서 야경투어를 즐겼다. 다음날에는 다시 한자리에 모인 배우들이 함께 여행하며 영국의 살인적인 물가를 경험하고 당황하기도 하고, 해안 도시 브라이턴과 스톤 헨지, 세븐 시스터즈(백악 해안절벽) 등을 명소들은 방문하며 즐거운 추억을 쌓았다.

연예인 출연자들의 해외여행과 체험을 통한 관찰예능은 이미 익숙한 소재다. 여기서 <샬라샬라>는 '중장년층 남자 배우들의 영어 어학연수'라는 이색적인 설정을 덧붙였다.

평범한 중년 세대에게 영어와 해외여행이란 가깝고도 먼 이야기다. 젊은 세대와는 달리 영어를 문법 위주로 배웠고, 실제 외국인을 만날 기회도 흔치 않았던 세대다 보니까 막상 실전 프리토킹에는 취약한 경우가 많다. 또한 이미 직업과 가정이 있고 굳이 영어를 쓸 일도 없는 중년들에게, 늦은 나이에 굳이 새로운 언어를 배우기 위하여 해외로 까지 어학연수를 생각하는 일도 현실적으로 드물다.

<샬라샬라>의 출연자인 다섯 배우들은 모두 40대에서 60대까지의 전형적인 중장년 세대에 해당한다. 영어 구사 능력도 대부분 고만고만하다. 국내에서는 모두가 알아보는 잘나가는 인기 배우들이지만, 지구 반대편의 낯선 나라에 가서는,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그저 말도 잘 안 통하는 이방인이자 왕초보 '영어 미생'으로 전락한다.

첫날부터 초라한 영어실력 때문에 간단한 교통편을 찾지못해 지하철을 몇시간이나 헤메고 다니고, 처음 만난 이웃 앞에서 어눌한 발음 때문에 실수를 남발하는 등, 매순간 진땀을 빼는 모습은 영어와 평생 거리를 두고 살아온 평범한 한국 아저씨들과 크게 다르지 않아 웃음을 자아낸다.

하지만 영어도 전혀 안 되는 중장년 나이의 배우들을 왜 굳이 해외로 보내서 우습게 만드냐는 일부의 비판은 그리 타당하지 않다. 사실 영어를 잘하는 연예인을 섭외하려고 했다면 그리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기꺼이 늦은 나이에 학생으로 돌아가 새로운 언어와 문화를 배우려 고군분투하고, 전 세계의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 서툴게 소통하는 아저씨들의 모습에서는, 저마다의 소박한 진심과 열정이 담겨있다.

새로운 도전 시작한 이유
 ‘샬라샬라’중 한 장면
ⓒ JTBC
멤버들의 공통된 이야기처럼 어학연수는, 각자의 목표와 도전을 위한 하나의 '계기'로서 활용된다. 맏형 성동일은 "이제 우리 나이에는 새로운 도전이라는 게 없는 것 같다. 눈뜨면 일해야 하고, 집에 가면 잘 시간이니까"라는 이야기가 대부분 4050중 장년 세대의 현실과 심경을 반영한다. 그들에게 어학연수와 해외여행이란, 단순히 며칠 간의 짧은 일탈을 넘어서, 그 자체로 용기가 필요한 새로운 도전을 의미한다.

멤버들은 여행을 통하여 한편으로 배우이자 그 나이대의 사람들만 공감할 수 있는 진지한 대화들도 나눈다. 엄기준은 젊은 시절 투병 중이던 아버지를 자주 볼 수 없었던 안타까운 과거를 털어놓았다. 이에 성동일은 "나도 이제 사생아로 태어나서 아버지와 기억이 없으니 아이들과 놀아주는 법을 몰랐다"라며 어린 시절의 아픔을 고백하기도 했다.

특히 성동일은 아들이 "아빠가 진짜 무서웠다"라는 이야기에 많은 자책감을 느꼈고, 그 한마디가 계기가 되어 드라마 < 응답하라 1988 >의 명대사 "아빠도 아빠가 처음이니까 이해해 줘"라는 탄생했다는 비화를 털어놓았다.

또한 여행 편에서, 엄기준은 배우로서 겪어야 했던 빛과 그림자에 대하여 솔직히 털어놓았다. 엄기준은 "노래하는 게 좋아서 애초에 가수를 꿈꾸기도 했었다. 지금은 노래와 연기를 다 할 수 있는 뮤지컬 배우를 하고 있어서 내 상황에 만족하고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성대도 근육이라 나이를 먹을수록 기능이 떨어진다. 옛날에는 가능했던 고음이 점점 (소화할 수 없어서) 내려온다"면서 배우로서 어쩔 수 없이 나이가 들며 겪는 고충도 밝혔다.

엄기준은 "그래서 어느 작품에서는 벌써 밀려난다. 예전부터 10년씩 했던 뮤지컬에서 몇 작품이나 캐스팅에서 밀려나기도 했다. 고음은 안 나고, 노래 잘하는 사람이 너무 많으니까"면서 "최근에는 다시 보컬 레슨을 시작했다. 나도 먹고 살아야 하니까. 그런 스트레스가 있다"고 솔직히 털어놓았다.

최연장자인 성동일과 둘째형인 김광규는 멤버들 중에서도 어학연수를 통한 '배움과 도전'이라는 콘셉트에 가장 충실한 인물들이기도 하다. 성동일은 서툰 영어에도 불구하고 짧은 단어 몇 개만으로도 누구보다 가장 적극적으로 소통에 나서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멤버들과 같이 있을 때는 솔선수범해서 동생들을 챙기는 든든한 맏형의 역할이라면, 혼자 있을 때는 또 혼자만의 풍류와 낭만을 즐길 줄 알면서 매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여행 편에서 성동일은 몸살 때문에 늦게 출발했고 유일하게 혼자였음에도 오히려 멤버들 중 가장 행복하게 여행을 즐겼다. 박물관 관람을 마친 뒤에는"가난한 연극쟁이가 여길 왔다"며 감개무량해하는가 하면, 런던의 야경명소인 빅벤에 도착하여 "내 나이가 60이 다 되어서, 이걸 보는데 뭐 이렇게 시간이 오래 걸렸는지"라며 소년처럼 가슴 벅차한다.

성동일은 "지난 15년 동안 일을 쉬어본 적이 없다"고 회상하며 "솔직히 언제 여기를 또 와보겠나. (여행와서) 진짜 해보고 싶은 거 다 해봤다. 축복받은 느낌이었다. 너무 소름 돋을 정도로 좋았다"며 만족스러워했다. 가난한 무명 연극배우에서 출발하여 치열한 과정 끝에 성공한 중견 배우이자 가장으로 자리 잡고, 이제는 60대의 나이에 영국에서 버킷리스트를 이뤘다는 성동일의 진솔한 고백은, 중장년 세대를 대신하여 대리만족의 여운을 남긴다.

김광규의 속사정

김광규는 다른 예능 출연작에서도 그렇듯이, 마치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편안한 동네 형이나 삼촌을 연상시킨다. 멤버들중에서도 가장 영어에 서툴고, 하는 일마다 시트콤같은 실수 연발이지만, 그만큼 자신의 부족함을 잘 알기에 누구보다 가장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하는 것도 김광규다.

여행 편에서 김광규는 함께 대화를 나누다가 늦은 나이에 연기에 도전하게 된 계기를 밝혔다. "집이 가난해서 돈에 쫓기면서 살았다. 20대에 돈을 벌기 위하여 군인 등 여러 직업을 전전했다. 그런데 딱 서른 살이 되니까 번아웃이 오더라. 돈을 떠나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어렸을 때는 웅변하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나는 국어책 읽기도 부끄러워하는 소심한 학생이었다. 그런데 군대 있을 때 처음 봤던 연극배우들을 보고 '나도 죽기 전에 한번 할 수 있을까?'하고 한 번만 해보자고 시작한 게 지금까지 온 것"이라고 밝혔다.

김광규는 서른 살의 늦은 나이에 꿈을 이루기 위하여 만학도가 되어 대학교 연극영화과에 진학했다. 그리고 모두의 부정적인 예상과 비웃음을 딛고 김광규는 정말로 당당히 배우가 되는 데 성공했다. '아버지 뭐하시노'라는 유행어를 낳은 <친구>의 통하여 존재감을 알린 김광규는 현재까지 배우로 꾸준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김광규는 "어학연수도 마찬가지다. 주변에서 영어도 못 하는데 왜 가냐고 하지만, 이번 어학연수를 계기로 다시 도전해 보고 싶었다"고 밝혔다.

이처럼 중장년 배우 멤버들은 어학연수라는 계기를 통해 모처럼 '나의 로망'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진다. 짧은 영어 실력을 노력과 팀워크로 극복하고 별것 아닌 일에도 새로운 경험에 행복해하는 멤버들의 모습은, 소소하지만 따뜻한 웃음을 선사한다. 어른이 되고 나이가 들어도 새로운 것을 경험하며 설레는 기분이 들고, 아이처럼 좋아할 수 있다는 감정을 느낀다는 것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늦었다고 포기하지 말고, '더 늦기 전에' 해보고 싶은 열정이 있는 사람이라면, 배움과 도전이란 그리 멀리 있는 것만은 아니다. "지금이라도 이런 경험을 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는 막내 신승환의 소감은 <샬라샬라>의 취지를 가장 잘 요약한 표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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