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쇠 관식이 같은 남편의 한 마디...나도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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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아 기자]
드라마에 유독 재벌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것은 사람들이 욕하면서도 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잖아도 사는 게 퍽퍽한데 드라마에서 눈 호강이라도 하고 싶은 심리가 작용하는 것이다. 나에게는 일어날 수 없는 비현실적인 일이라고 해도 말이다. 조금은 이해하기 어려웠던 심리가 <폭싹 속았수다>를 보면서 완전히 이해되었다.
바다에 기대어 가난하지만 열심히 살아가는 관식과 애순의 삶이 지금의 내 모습 겹쳤다. 드라마의 재미와는 별개로 내 안의 설움이 올라와 보기 힘들 지경이다. 다른 시간, 다른 공간이건만 어째 목구멍에 풀칠하며 살아가는 일은 이다지도 치사할까. 자꾸 명치가 아팠다. 그러나 이 너무나도 현실 반영 처절한 드라마에도 딱 하나, 비현실적인 요소가 있었으니. 바로 양관식이다.
11살 때부터 애순이만 좋아한 관식이, 애순이의 구박에도 언제나 뒤를 쫓아다니던 관식이, 애순이의 양배추를 다 팔아주는 관식이, 애순이의 애타는 부름에 고래처럼 바다를 건넌 관식이, 시어머니, 시할머니 앞에서 애순이의 손목을 잡고 끌고 나와 분가를 한 관식이, 애순이가 술에 취해 봉춤을 춰도 그저 좋은 관식이. 무쇠 같은... 관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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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폭싹 속았수다> 한 장면. 무쇠 양관식 역의 박보검. |
| ⓒ 넷플릭스 |
"여보, 숨이 안 쉬어져."
사람 때문에 이렇게 힘들 수도 있는 거구나. 관식이를 괴롭히는 선장에게 "이 개새끼야"를 외치는 애순이처럼 할 수는 없어도 남편을 더 이상 사지로 몰아낼 수는 없었다. 숨을 못 쉬겠다는데, 그럼 그만둬야지.
그렇게 8개월이 지났다.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다른 일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지만 인생은 그리 희망차지 않았다. 사람을 뽑는 곳은 별로 없었고, 남편의 경력은 오히려 약점이 되었다. 일을 그만두면서 우리의 수입은 반 이상이 줄어든 터였다. 밥만 먹이고 학교만 보내도 할 일은 다한 드라마와 현실은 달랐다. 이것저것 해줘야 할 게 많은 10대 아이가 셋이다.
가난이 문으로 들어오면 사랑이 창문으로 나간다고 그랬나. 우리 부부는 최근 자주 다투기 시작했다. 쉽게 속내를 꺼내지 않는 남편은 힘듦을 표현하는 대신 예민해졌다. 생각지도 못한 포인트에서 상처받거나 화를 내서 남편에게 말하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물론 남편 입장에서는 나의 모든 말에 가시가 돋친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을 것이다. 나 역시 일부러는 아니지만 비난과 원망을 담지 않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었다. 앞으로 어떻게 할 거냐고, 무슨 계획은 있냐고, 업종을 바꿔야 하는 건 아니냐고 차마 묻지 못한 말이 원망을 담아 틱틱거리며 나왔을 테다.
부부라고 그 속을 다 알고 살아갈까. 어떤 것들은 서로 말하지 않는 편이 나은지도 모른다. 다그치는 나의 질문에 남편이 아픈 속내를 털어 놓고 무너지는 모습을 보느니 차라리 내 말에 큰소리를 뻥뻥 치는 게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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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폭싹 속았수다> 한 장면. 무쇠 양관식 역의 박보검. |
| ⓒ 넷플릭스 |
그 사이 어쩌면 남편은 몇 번씩이고 그만두고 싶었던 더럽고 치사한 순간을 견뎠을 것이다. 내가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는 가장의 무게를 지금도 그는 속으로 감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드라마 속 관식이를 보면 잠시 현실의 남편을 원망하다가 관식이에게 애순이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무쇠처럼 진득한 관식이 옆에는 언제 어디서든 달려와 날라차기를 하는 호루라기 애순이가 있었다. 가장 소중한 사람을 다른 사람으로부터 지켜야지, 그 사람을 가장 상처 주는 사람이 내가 되어선 안 되지 않겠는가!
관식이는 현실에 없다고 탓하지 말고 내가 그의 애순이가 되어야겠다. 무쇠 같던 그가 무너진 지금, 그를 지킬 사람은 나뿐이다. 사랑이, 밥은 먹여주지 못하겠지만 적어도 이 고비를 넘기고 일어설 수 있는 힘은 주겠지. 그러다 보면 이 고단하고 질긴 겨울이 지나고 봄도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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