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홍구의, '역사와 책임'
[김삼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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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위직에 있는 사람들은 아무도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지만 세월호 사건 당시 의로운 사람들도 있었다. 한홍구 교수가 보여준 세월호의 의인들 모습 |
| ⓒ 오문수 |
극우세력은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파면을 결정하면 미국대통령 등에게 한미연합사령부가 조기 대선과 총선을 주관하도록 요청하겠다며, 제2의 건국전쟁이 일어날 것이라는 등 망동을 서슴지 않았다. 형법상의 외환죄에 속하는 것은 물론 민족적인 치욕의 망나니 짓이 아닐 수 없다. 한국사회의 극우세력의 병리 행태가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 개탄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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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확정고시 발표가 있었던 3일,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가 광주 서구 상록회관에서 '역사의 정의를 어떻게 세울 것인가'를 주제로 특별강연(무등공부방 주최)을 진행했다. |
| ⓒ 소중한 |
이승만 같은 자들이 선장을 하고, 김창룡, 원용덕, 노덕술, 박종표, 이근안 같은 자들이 선원질을 한 대한민국호가 침몰하지 않은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미국이 와서 구해준 덕분일까?
서울을 버리고 도망간 선조는 자기가 의주까지 가서 불러온 명나라 군대가 나라를 구해준 것이어야만 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아직도 신에게는 배가 열두 척이나 있습니다"라고 당당히 나선 이순신이 있었고, 나라의 녹을 먹은 적이 없으면서도 분연히 떨쳐 일어난 의병장들이 있었다. 장수만 있어서 어찌 전쟁이 되겠는가. 역사가 그 이름을 불러주지 못한 수많은 의병들이 이나라를 지켰고, 다시 세웠다.
전두환의 계엄군이 다시 광주로 쳐들어온 5월 27일 새벽, 도청에는 시민군이 300명이나 남아 죽음을 기다렸다. 지금까지 돌아가는 꼴을 보면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생각보다 많은 분이 살아남았다. 그렇지만 그날 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거기 남은 바보는 없었다. 누가 너는 꼭 남아야 한다고 명령하는 사람도 없었고, 집에 간다고 잡는 사람도 없었다. 아무도 집에 가는 사람을 비난하지 않았다. 여학생들, 고등학생들은 눈을 부라리고 악을 써서 도청에서 내보냈다.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남은 것이 아니었다. 지는 싸움을 피할 수 없었기에, 다 총을 놓고 집에 가버리면 텅 빈 도청을 전두환에게 내주는 것이기에 그냥 남았다. 특별한 직함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광주시장도 아니었고, 이름난 교수나 문화인도 아니었고, '사'자 돌림 전문가도 아니었다. 시민군 중대장, 소대장이라서 남은 게 아니라 남은 사람 중에서 새로 중대장, 소대장이 임명되었다. 남은 사람들 중에는 죽어 〈임을 위한 행진곡〉의 주인공이 된 윤상원 같은 지식인 출신도 있었고 더러 대학생들도 있었지만, 다수가 철가방, 구두닦이, 날품팔이, 용접공, 웨이터, 식당 보이 등 박정희가 '똘마니'라고 비하해 부르던 사람들이었다.
그 '똘마니'들이 위대한 광주 시민으로서의 무거운 책임을 피하지 않았다. 역사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집에 간 사람들도 "광주시민여러분, 광주시민여러분, 우리를 기억해주십시오. 우리는 폭도가 아닙니다."라는 애절한 호소를 들으며,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키워가며 반만년 우리 역사에서 가장 긴 새벽을 보냈다. '나는 5월 26일 밤 도청에 남을 수 있었을까?'라는 질문을 정직하게 자신에게 던지는 사람들이 바로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간직한 사람들이었고, 이들은 누구나 광주의 자식이 되어 온몸으로 새로운 역사를 써나갔다.
아이들을 구하러 가야 한다며 전화를 끊은 사무장 양대홍은 부인의 애타는 전화에는 응답하지 않고 끝내 퇴선 지시를 내리지 않은 무전기를 꼭 쥔 채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구명조끼가 모자라 "내 거 입어"하고 선뜻 벗어준 학생, 그 와중에 아기부터 탈출시키던 아이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끼고 살아가기엔 너무나 아이들 곁에서 선생 노릇 하고 싶어했던 교감선생님, 아이들과 함께 가라앉은 선생님들, 그리고 겨우 매점에서 물건 파는 어린 알바생이면서 "선원은 맨 마지막에 나가는 거야. 너희들 다 구하고 나갈 거야"라며 세월호의 악마들, 대한민국호의 악마들은 꿈도 꿀 수 없는 어마어마한 책임감을 보인 박지영……. 이들이야말로 구조변경에 노후수명 연장에 과적에 규제 완화에 온갖 비리와 뇌물로 이리 기울고 저리 기우는 대한민국호가 여태껏 가라앉지 않고 항해할 수 있는 숨은 복원력이었다. 우리가 믿을 것은 우리 자신에 내재한 이 복원력밖에 없다.
더 이상 대한민국호를 책임지지 않는 자들, 위기의 순간에 무엇을 해야 할 지 모르는 자들에게 맡겨둘 수 없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간직한 이들이 움직여야 한다. 역사는 책임지는 사람들의 것이다. (주석 1)
주석
1> 한홍구, <역사와 책임>, 49~51쪽, 한겨레출판, 2015.
덧붙이는 글 | [광복80주년명문100선]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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