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지난해 한국영화 ‘성평등 테스트’ 통과율 역대 최고… 성비 불균형은 여전

김효실 기자 2025. 3. 15.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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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진위 성인지 통계 발표]
여성 캐릭터 숫자 늘어
‘벡델 테스트’ 통과작 절반 이상
내용보니 ‘보여주기식’ 등장 다수
창작인력 여성 참여율 늘고 있지만
‘남성 감독·주연’ 영화 81.3% 압도적
백델 테스트를 통과한 영화 ‘파묘’(왼쪽)와 ‘시민덕희’ 포스터.

지난해 개봉해 흥행 순위 30위 안에 포함된 한국영화 가운데 양적 성평등 측정 도구인 ‘벡델 테스트’를 통과한 영화는 59.3%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테스트 결과를 정기적으로 발표하기 시작한 2017년 이래 가장 높은 수치다. 하지만 성역할 고정관념을 강화하는 여성 캐릭터가 등장하는 영화도 44.4%에 달해, 성평등의 질적 향상을 위한 노력이 더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가 지난 7일 펴낸 ‘2024 한국영화 성인지 결산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흥행 순위 30위 영화 가운데 애니메이션·다큐멘터리 3편을 제외한 27편 중 벡델 테스트를 통과한 영화는 모두 16편이었다. 벡델 테스트는 ‘영화에 이름을 가진 여성 인물이 최소 2명 등장하는가?’ ‘그들이 서로 대화를 나누는가?’ ‘그 대화의 주제는 남성에 대한 이야기 이외의 것인가?’ 등 3개의 기준을 모두 충족해야 통과할 수 있다.

벡델 테스트를 통과한 영화 16편은 ‘파묘’ ‘파일럿’ ‘시민덕희’ ‘외계+인 2부’ ‘그녀가 죽었다’ ‘히든페이스’ ‘청설’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 ‘보통의 가족’ ‘원더랜드’ ‘설계자’ ‘빅토리’ ‘늘봄가든’ ‘도그데이즈’ ‘소풍’ ‘1승’이다. 흥행 순위 30위권 영화의 벡델 테스트 통과율은 조사를 시작한 2017년 34.5%에서 2018년 36.7%, 2019년 43.3%, 2020년 53.6%로 상승세를 이어가다가 코로나19 팬데믹을 통과하며 2021년 39.3%, 2022년 35.7%로 하락했다. 팬데믹으로 영화산업이 크게 위축되고 ‘고예산·남성’ 위주의 작품이 편성되면서 성평등 측면에서도 퇴보했던 것이다.

영진위 보고서 갈무리

2023년 벡델 테스트 통과율은 41.4%를 기록하며 다시 상승하기 시작했고, 지난해 역대 최고치(59.3%)를 기록했다. 영진위는 통과율이 늘어난 이유에 대해 “여성이 주연에 1명 이상 포함된 영화(‘남-여’ ‘여-남’ ‘여-여’)가 소폭 증가한 데서 일차적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주·조연을 맡은 여성 캐릭터가 적어도 양적으로 증가했음을 시사한다”고 했다.

영진위는 흥행 영화 속 여성 인물의 ‘숫자’를 확인하는 수준을 넘어서, 이들이 ‘어떻게’ 재현되는지 살필 수 있는 ‘여성 스테레오타입 테스트’도 실시했다. 이 테스트는 ①‘여성이 전적으로 남성의 구출 혹은 구원에 의지하는가?’ ②‘여성의 행동이나 결단이 설득력 없이 소개되며 남성을 곤경에 빠트리는가?’ ③‘여성이 거의 남성으로만 이루어진 집단에서 구색 맞추기나 감초로 기능하는가?’ ④‘돌봄이 설득력 있는 서사 없이 여성의 당연한 의무나 본성으로 부여되는가?’ ⑤‘여성이 일차원적 이성애 로맨스의 대상으로만 기능하는가?’(이상 주·조연 대상 질문), ⑥‘과도하게 성애화된 자극을 위해서만 이용되는 여성이 존재하는가?’ ⑦‘자기 서사 없이 (범죄 등의) 피해자로만 전시되는 여성이 존재하는가?’(이상 모든 여성 인물 대상 질문) 등 총 7가지 질문 가운데 하나라도 해당하면 집계에 포함된다.

흥행 30위권 영화 중 분석 대상인 27편 가운데 여성 스테레오타입 테스트에 해당하는 작품은 12편(44.4%)이었다. ③번 질문(여성이 거의 남성으로만 이루어진 집단에서 구색 맞추기나 감초로 기능하는가?)에 해당하는 작품이 ‘범죄도시4’ ‘베테랑2’ ‘소방관’ ‘하얼빈’ ‘탈주’ ‘댓글부대’ ‘행복의 나라’ ‘아마존 활명수’ 등 8편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①번, ⑥번, ⑦번에 집계된 영화가 각각 2편, ④번과 ⑤번에 각 1편이 해당했다(여러 질문에 해당할 경우 1편으로 집계).

영진위가 여성 주·조연 인물의 서사가 남성 서사에 종속되는지를 조사한 결과도 대상작 27편 가운데 14편(51.8%)이 해당했다. 영진위는 “여성 캐릭터가 양적으로는 증가했지만 여전히 다수가 ‘보여주기식’으로 등장하며 평면적으로 재현되는 경향이 이어지고 있다”면서 “여성 캐릭터의 양적 증가는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이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여성 캐릭터 재현의 질적인 깊이와 독창성을 고민해야 할 필요가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라고 풀이했다.

한편, 한국 상업영화의 핵심 창작인력 가운데 여성 참여율이 2023년보다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영진위가 지난해 순제작비 30억원 이상 상업영화 37편을 분석한 결과 여성 감독 비중은 13.5%(5명)으로 2023년(2.7%, 1명)보다 늘었다. 여성 제작자(30.2%, 29명), 여성 각본가(32.3%, 20명)도 전년(제작자 23.9%, 각본가 21.8%)보다 증가했다. 프로듀서(23.6%, 13명)와 주연(24.3%, 9명) 분야는 전년과 비슷했다. 다만 여성 촬영감독은 3년 연속 0명으로 집계됐다.

영진위 보고서 갈무리

영진위는 “여성 핵심창작인력은 증가세를 보였으나 여전히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상업영화 시장에서 ‘남성 감독-남성 주연’인 영화가 81.3% 비율을 차지하는 등 성별에 따른 분업과 성비 불균형의 문제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면서 “산업의 위기가 고착되면서 다양성에 대한 요구가 어느 때보다 커진 지금, 성별 불균형 개선과 다양성 확대를 위한 인식적·정책적 노력이 지속적으로 이어져야 할 것”이라고 했다.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참조

영진위는 보고서에 활용한 성별 범주에 대해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영화인 DB’를 따른다”고 밝히면서, “인력과 재현 모두에서 이분법적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 성의 범주에 관해서는 추후 연구를 통해 개선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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