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한국영화 ‘성평등 테스트’ 통과율 역대 최고… 성비 불균형은 여전
여성 캐릭터 숫자 늘어
‘벡델 테스트’ 통과작 절반 이상
내용보니 ‘보여주기식’ 등장 다수
창작인력 여성 참여율 늘고 있지만
‘남성 감독·주연’ 영화 81.3% 압도적

지난해 개봉해 흥행 순위 30위 안에 포함된 한국영화 가운데 양적 성평등 측정 도구인 ‘벡델 테스트’를 통과한 영화는 59.3%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테스트 결과를 정기적으로 발표하기 시작한 2017년 이래 가장 높은 수치다. 하지만 성역할 고정관념을 강화하는 여성 캐릭터가 등장하는 영화도 44.4%에 달해, 성평등의 질적 향상을 위한 노력이 더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가 지난 7일 펴낸 ‘2024 한국영화 성인지 결산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흥행 순위 30위 영화 가운데 애니메이션·다큐멘터리 3편을 제외한 27편 중 벡델 테스트를 통과한 영화는 모두 16편이었다. 벡델 테스트는 ‘영화에 이름을 가진 여성 인물이 최소 2명 등장하는가?’ ‘그들이 서로 대화를 나누는가?’ ‘그 대화의 주제는 남성에 대한 이야기 이외의 것인가?’ 등 3개의 기준을 모두 충족해야 통과할 수 있다.
벡델 테스트를 통과한 영화 16편은 ‘파묘’ ‘파일럿’ ‘시민덕희’ ‘외계+인 2부’ ‘그녀가 죽었다’ ‘히든페이스’ ‘청설’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 ‘보통의 가족’ ‘원더랜드’ ‘설계자’ ‘빅토리’ ‘늘봄가든’ ‘도그데이즈’ ‘소풍’ ‘1승’이다. 흥행 순위 30위권 영화의 벡델 테스트 통과율은 조사를 시작한 2017년 34.5%에서 2018년 36.7%, 2019년 43.3%, 2020년 53.6%로 상승세를 이어가다가 코로나19 팬데믹을 통과하며 2021년 39.3%, 2022년 35.7%로 하락했다. 팬데믹으로 영화산업이 크게 위축되고 ‘고예산·남성’ 위주의 작품이 편성되면서 성평등 측면에서도 퇴보했던 것이다.

2023년 벡델 테스트 통과율은 41.4%를 기록하며 다시 상승하기 시작했고, 지난해 역대 최고치(59.3%)를 기록했다. 영진위는 통과율이 늘어난 이유에 대해 “여성이 주연에 1명 이상 포함된 영화(‘남-여’ ‘여-남’ ‘여-여’)가 소폭 증가한 데서 일차적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주·조연을 맡은 여성 캐릭터가 적어도 양적으로 증가했음을 시사한다”고 했다.
영진위는 흥행 영화 속 여성 인물의 ‘숫자’를 확인하는 수준을 넘어서, 이들이 ‘어떻게’ 재현되는지 살필 수 있는 ‘여성 스테레오타입 테스트’도 실시했다. 이 테스트는 ①‘여성이 전적으로 남성의 구출 혹은 구원에 의지하는가?’ ②‘여성의 행동이나 결단이 설득력 없이 소개되며 남성을 곤경에 빠트리는가?’ ③‘여성이 거의 남성으로만 이루어진 집단에서 구색 맞추기나 감초로 기능하는가?’ ④‘돌봄이 설득력 있는 서사 없이 여성의 당연한 의무나 본성으로 부여되는가?’ ⑤‘여성이 일차원적 이성애 로맨스의 대상으로만 기능하는가?’(이상 주·조연 대상 질문), ⑥‘과도하게 성애화된 자극을 위해서만 이용되는 여성이 존재하는가?’ ⑦‘자기 서사 없이 (범죄 등의) 피해자로만 전시되는 여성이 존재하는가?’(이상 모든 여성 인물 대상 질문) 등 총 7가지 질문 가운데 하나라도 해당하면 집계에 포함된다.
흥행 30위권 영화 중 분석 대상인 27편 가운데 여성 스테레오타입 테스트에 해당하는 작품은 12편(44.4%)이었다. ③번 질문(여성이 거의 남성으로만 이루어진 집단에서 구색 맞추기나 감초로 기능하는가?)에 해당하는 작품이 ‘범죄도시4’ ‘베테랑2’ ‘소방관’ ‘하얼빈’ ‘탈주’ ‘댓글부대’ ‘행복의 나라’ ‘아마존 활명수’ 등 8편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①번, ⑥번, ⑦번에 집계된 영화가 각각 2편, ④번과 ⑤번에 각 1편이 해당했다(여러 질문에 해당할 경우 1편으로 집계).
영진위가 여성 주·조연 인물의 서사가 남성 서사에 종속되는지를 조사한 결과도 대상작 27편 가운데 14편(51.8%)이 해당했다. 영진위는 “여성 캐릭터가 양적으로는 증가했지만 여전히 다수가 ‘보여주기식’으로 등장하며 평면적으로 재현되는 경향이 이어지고 있다”면서 “여성 캐릭터의 양적 증가는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이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여성 캐릭터 재현의 질적인 깊이와 독창성을 고민해야 할 필요가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라고 풀이했다.
한편, 한국 상업영화의 핵심 창작인력 가운데 여성 참여율이 2023년보다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영진위가 지난해 순제작비 30억원 이상 상업영화 37편을 분석한 결과 여성 감독 비중은 13.5%(5명)으로 2023년(2.7%, 1명)보다 늘었다. 여성 제작자(30.2%, 29명), 여성 각본가(32.3%, 20명)도 전년(제작자 23.9%, 각본가 21.8%)보다 증가했다. 프로듀서(23.6%, 13명)와 주연(24.3%, 9명) 분야는 전년과 비슷했다. 다만 여성 촬영감독은 3년 연속 0명으로 집계됐다.

영진위는 “여성 핵심창작인력은 증가세를 보였으나 여전히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상업영화 시장에서 ‘남성 감독-남성 주연’인 영화가 81.3% 비율을 차지하는 등 성별에 따른 분업과 성비 불균형의 문제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면서 “산업의 위기가 고착되면서 다양성에 대한 요구가 어느 때보다 커진 지금, 성별 불균형 개선과 다양성 확대를 위한 인식적·정책적 노력이 지속적으로 이어져야 할 것”이라고 했다.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참조
영진위는 보고서에 활용한 성별 범주에 대해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영화인 DB’를 따른다”고 밝히면서, “인력과 재현 모두에서 이분법적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 성의 범주에 관해서는 추후 연구를 통해 개선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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