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씹 5, 답장 0... '단톡방' 전쟁이 괴로운 사람들
[박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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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디지털 소통 |
| ⓒ kellysikkema on Unsplash |
"아, 지현(가명)씨한테는 따로 알려줬어야 했는데, 깜빡했네요. 미안해요."
그 말을 들었을 때, 지현씨는 그저 웃으며 괜찮다고 했다. 하지만 속으로는 '또 나만 빼고 논의했구나' 하며 존재감이 미세먼지처럼 흩어지는 기분이었다. 중요한 회의 일정 변경을 혼자만 모르고 있었다니. 그것도 모든 팀원이 함께 있는 공식 단체방이 있는데도! 알고 보니 '핵심 멤버들'의 비밀 단체방이 따로 있었던 것이다.
입사 두 달 차에 느낀 이 미묘한 소외감은 사실 새로울 게 없었다. 단체 카톡방에서 동료들이 한꺼번에 'ㅋㅋㅋㅋㅋㅋㅋ'를 날릴 때마다 지현씨는 '뭐가 그렇게 웃긴 거지?' 하며 혼자 멘붕에 빠졌다. 약자는 마치 외계어 같았고, 알 수 없는 이모티콘 조합이 웃음 폭탄을 만들어내는 현상은 양자물리학보다 이해하기 어려웠다.
지현씨의 사례는 요즘 직장인들이 흔히 겪는 디지털 소통의 불편한 순간들을 잘 보여준다. 업무 평가에서 지현씨는 소통 항목에서 낮은 점수를 받았다. 그 이유로 '단체방 참여도'가 거론되기도 했다. 하지만 지현씨가 메시지를 쓰기 위해 입력창에 타이핑했다가 지우기를 수십 번 반복한 흔적은 아무도 볼 수 없었다.
또 다른 직장인 미경(가명)씨는 업무용 메신저에서 상사의 메시지에 단순히 답했다가 무례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메시지에 답장을 바로 하지 못한 때는 재촉을 받기도 했다. "빨리 보내야 하는데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하느라 시간이 걸렸어요"라고 설명하고 싶었지만, 그런 변명이 받아들여질 리 없었다.
요즘 많은 회사에서는 '디지털 에티켓'이나 '메신저 사용 지침'을 만들어 배포한다. "24시간 내 답장하기", "공식 단체방에서 비공식 대화 자제하기", "모든 팀원에게 공유해야 할 정보는 개인 메시지 대신 공식 채널에 올리기" 같은 규칙들. 하지만 이런 형식적인 가이드라인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미묘한 디지털 소외의 순간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이런 소외감은 주로 회의실이나 회식 자리 같은 오프라인 공간에서 경험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 카톡방, 팀즈 채팅, 슬랙 쓰레드가 일상의 중심이 되면서, 디지털 배제의 경험은 더 빈번해지고 명확한 기록으로 남게 되었다. "읽음 5"라는 표시와 함께, 당신을 제외한 모두가 이미 봤다는 증거까지도.
"유리벽 앞에서 손짓하는데, 아무도 못 보는 것 같아요"
IT 회사의 민수(가명)는 직접 만든 여러 단체방이 누군가에게는 배제의 벽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더 효율적인 소통을 위해서"라는 좋은 의도가 일부 멤버들의 배제로 이어졌던 것이다. 이처럼 디지털 배제는 대부분 의도적인 차별이 아닌, '효율성'이나 '친밀함'이라는 긍정적 가치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조직심리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디지털 암묵적 배제(Digital Implicit Exclusion)'라고 부른다. MIT 슬론 비즈니스 스쿨의 2022년 연구에 따르면, 하이브리드 근무 환경에서 가장 큰 문제는 '정보의 비대칭성'과 그로 인한 '심리적 안전감의 저하'였다. 즉, 누가 어떤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지에 따라 팀 내 보이지 않는 권력 구조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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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통을 위한 도구가, 거대한 벽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
| ⓒ createwithconstantin on Unsplash |
"마치 투명 유리벽 앞에서 열심히 손짓하는데 아무도 보지 못하는 것 같아요."
"단체방에서 나는 흑백 텔레비전인데, 다른 사람들은 모두 컬러 TV로 보는 것 같아요."
이런 경험들은 단순한 불편함이 아니다. 놀랍게도, 신경과학 연구에 따르면 디지털 소외로 인한 뇌의 반응은 물리적 통증을 경험할 때와 유사한 패턴을 보인다. UCLA의 매튜 리버만 교수팀은 fMRI 연구를 통해 사회적 배제가 전두엽 피질과 전대상 피질(anterior cingulate cortex)을 활성화시키는데, 이는 물리적 고통을 느낄 때와 동일한 뇌 영역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러니 "단체방에서 소외됐어요"라고 말하는 동료가 있다면, 그들은 말 그대로 '아픔'을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
디지털 배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효과적인 접근법은 규칙이나 의무가 아닌, '인식의 변화'다. 몇 가지 핵심 질문을 던져보자.
- 내가 자연스럽게 이해하는 이 약자나 이모티콘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언어적 장벽'으로 작용할 수 있을까?
- 효율성을 위해 만든 이 별도의 소통 채널이 '정보 불평등'을 만들어내고 있지는 않을까?
- 디지털 공간에서 구성원들의 '발언권'이 동등하게 분배되고 있을까?
- 우리 팀의 디지털 의사결정 프로세스에서 소외되는 사람은 없을까?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디지털 공감 지능(Digital Empathic Intelligence)'이다. 텍스트와 이모티콘 너머에 있는 사람의 감정과 경험을 상상하고 적절히 반응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이는 단순한 친절함을 넘어 다양한 디지털 맥락에서 사회적 신호를 인식하고 해석하는 복합적 역량을 의미한다.
디지털 공간이 더욱 확장되는 미래에서, 우리가 어떤 인식과 태도를 가지느냐에 따라 소통의 질은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디지털 소통에서의 포용성은 단순한 구호가 아닌, 조직의 생존과 혁신을 위한 필수 조건이 되어가고 있다. 특히 AI 기반 디지털 소통 도구가 급속도로 발전하는 상황에서, '인간적 연결'과 '디지털 포용성'의 가치는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어쩌면 오늘 당신이 무심코 보내는 메시지 하나, 생각 없이 만드는 단체방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소속감을 주는 따뜻한 초대장이 될 수도, 차갑게 배제하는 벽이 될 수도 있다. 그 선택은 우리의 인식과 작은 실천에 달려있다.
우리의 디지털 소통 공간에, 아무도 벽 밖에 서 있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답은 복잡한 알고리즘이나 정교한 가이드라인이 아닌, 간단한 질문에서 시작될지도 모른다.
"혹시 누군가 이 대화에서 소외되고 있지는 않을까?"
심리학자 칼 로저스가 말했듯, "진정한 이해는 타인의 세계를 그들의 관점에서 보려는 노력"에서 시작된다. 이 간단한 질문과 성찰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디지털 세상은 조금 더 따뜻해질 수 있다. 그리고 그 온기는 스크린을 통해, 광케이블을 타고, 마침내 누군가의 마음에 도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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