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백종만 (11) 매니저로 초고속 승진… YPP 전신 ‘영풍물산’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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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무렵이었다.
사람 일은 정말이지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없는 것 같다.
발표를 하시기로 한 전무님이 건강에 문제가 생겨 먼 곳까지 출장을 갈 수 없으니 내가 대신 다녀오라는 명령이 떨어진 것이다.
말단 사원이었던 내가 부장급인 매니저로 단박에 초고속 승진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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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 중 본사 회장 눈에 들어 파격 승진
싱가포르서 80개국 120명 앞에서 발표
1981년 무렵이었다. 사람 일은 정말이지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없는 것 같다. 각 나라 GE 파트너 기업 대표들 앞에서 발표를 맡게 됐다. 발표를 하시기로 한 전무님이 건강에 문제가 생겨 먼 곳까지 출장을 갈 수 없으니 내가 대신 다녀오라는 명령이 떨어진 것이다.
발표 준비에 열을 내던 어느 토요일, 싱가포르 출장을 준비하려고 평상시처럼 혼자 출근을 했다. 그런데 사무실 문이 스르르 열리더니 백발의 외국인 노신사가 들어왔다. 그는 내게 물었다. “나는 이 회사의 미국 본사 회장입니다. 근데 당신은 왜 토요일에 출근했지요?” 깜짝 놀라 벌떡 일어섰다. “저는 백종만입니다. 영어 이름은 존 백입니다. 회사가 좋고 제가 하는 일이 재밌어서 출근했습니다.” 그는 웃으면서 내 이름을 수첩에 적었다.
며칠 뒤 파격 인사가 났다. 말단 사원이었던 내가 부장급인 매니저로 단박에 초고속 승진을 한 것이다. 대리 과장 차장 직급을 건너뛰고 곧바로 매니저가 됐다. 그 덕분에 사원이 아니라 매니저라는 자격으로 싱가포르 출장을 가게 됐다.
싱가포르에 도착한 나는 80개 국가에서 온 120명 앞에서 3분간 떨리는 마음으로 프레젠테이션을 이어갔다. 발표를 마친 날 저녁엔 파티가 있었는데 혼자 음료수를 홀짝거리고 있었다. 한국 사람은 나뿐이었고 술도 마시지 않으니 어울릴 사람들이 없었다. 그때 한 신사가 내게 다가와 자기소개를 했다. 당시 GE 본사의 부회장 조지 스타타키스였다. “미스터 백! 깜짝 놀랐습니다. 잭 웰치 회장님이 종종 우리에게 해결 방법을 찾아보라고 지시하신 문제가 있었는데 당신이 그 해법을 제시하고 있더군요.” 그러면서 이렇게 제안했다. “우리가 중동에 가서 아무리 영업을 해도 결국 프로젝트 수주는 한국 건설사들이 합니다. 당신이 우리 GE를 대신해서 그 사업을 해보는 건 어떻습니까?”
한국 파트너가 되란 말임을 깨닫고 손사래를 쳤다. “저는 사업할 능력도 경험도 자본도 없습니다.” 스타타키스 부회장은 “일단 알겠다”며 다시 연락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귀국한 뒤 보름쯤 지났을까. 미국 GE 본사 변호사 두 명으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무역 회사 일 때문이 아니라 오로지 날 만나러 왔다고 했다. 다행히도, 내가 GE에 손을 내민 것이 아니라 그들이 나를 찾아와 지명한 터라 무역회사와 갈등은 없었다.
미팅 장소는 소공동 조선호텔에 있는 나인스게이트 레스토랑. 여태 그 이름이 잊히지 않는다. 선임 변호사가 물었다. “미스터 백, 당신이 우리 GE의 한국 파트너가 되면 좋겠습니다. 한국에서 사업을 시작하려면 얼마가 필요합니까?” 어안이 벙벙했지만 머릿속으로 재빨리 계산기를 두들겼다. “50만 달러, 가능하겠습니까?” “몇 년간 지원해주면 독립할 수 있겠습니까? “2년만 주십쇼.” “미스터 백, 그럼 2년간 그 돈을 24개월로 나눠 매달 입금하겠습니다.” 월급쟁이로 돈 좀 벌어서 잘해야 분식집이나 차릴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국제적 기업의 파트너가 되다니. 상상조차 못 한 일이었다. 떨리는 손으로 계약서에 사인했다. YPP의 전신인 영풍물산은 1982년 1월 1일, 이렇게 시작됐다.
정리=이현성 기자 sag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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