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로 일어난 '아랍의 봄' 혁명, 만약 폰 없었다면?
[김진웅 기자]
2010년 북아프리카 튀니지에서 시작된 민주화 운동은 알제리, 요르단, 이집트, 예멘 등으로 이어지면서 아랍에는 봄이 찾아왔다. 아랍에 봄이 급작스럽게 찾아올 수 있었던 '아랍의 봄' 혁명 배경에는 반민주적 정치체제에 대한 염증과 한 청년의 공권력에 의해 희생되는 동영상이 촉매제가 됐다.
그 영상은 스마트폰을 통해 SNS로 전파되면서 아랍을 일깨웠다. 관련해 책 <기술은 세상을 어떻게 바꾸는가> 저자 이정동은 휴대전화 메시지나 SNS가 아닌 입에서 입으로 소식이 전해졌다면, 아랍의 봄은 수 세기 동안 천천히 찾아왔거나 도중에 멈추었을 거라고 지적하면서 "이처럼 하나의 기술은 인간사회에 혁명을 불러"온다고 역설한다.
우리는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가? 그 어느 때보다 과학기술이 고도로 발달된 그야말로, 기술 혁신 시대를 지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언어는 존재의 집합이다"라고 인간의 기능과 본질을 요약한 문장을 세상에 내놓은 하이데거는 일찍부터 인간과 인간 아닌 것 간의 차이는 결국, 언어에 있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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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기술은 세상을 어떻게 바꾸는가> 표지 |
ⓒ 화면갈무리 |
너무 어렵지 않은 용어와 설명, 예시로 과학기술의 역사와 동태를 서술한 이정동 교수의 <기술은 세상을 어떻게 바꾸는가>를 읽으면서 과학기술과 개인, 과학기술과 국가 그리고 민주화에 대해서 고민하는 시간을 가져봤다.
인간의 가능성 펼치게 한 기술
기술은 인간이 생물학적 제약을 벗어나 상상 속의 가능성을 마음껏 펼치도록 했다. 한마디로 기술은 인간을 자유롭게 하고, 활동 영역을 확장시킨다. 인류의 새벽이 밝아온 이래 인간은 기술과 한 몸처럼 발전해왔고, 생물학적 인간의 모습은 변함없었지만 기술 덕분에 기술과 인간이 합쳐진 복합체는 더 큰 존재로 발전했다. 그 결과가 오늘 우리가 누리고 있는 문명이다. -책 24쪽.
뻔한 이야기 같지만 많이들 간과하는 지점이 바로 이것이다. 우리가 누리는 문명이 무엇 때문인가? 바로 기술 발전 덕분이다. 그러나 최근의 한국 사회에서는 특히 과학자들, 기술자들을 박대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상대적으로 돈을 잘 버는 의사와 법조인을 으뜸으로 여기는 문화가 팽배하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의사는 아픈 사람을 치료하고, 법조인은 피고, 원고 즉 피해를 주거나 피해를 당한 사람들에 한해서 기소도 하고, 변호도 하고, 판시를 내릴 뿐이다. 과학 기술자들은 보편적으로 인류의 문명 발전에 크고 작은 헌신으로 이바지한다.
저자의 말처럼 인간을 자유롭게 하고 우리의 활동 반경을 넓혀주고 내 삶을 보다 편리하게 누릴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은 기술 발전이다. 그러나 현실은 정부에서는 과학기술 연구개발비를 삭감하고, 점점 뒤처지고 있는 AI 영역이나 반도체 산업에는 미온적으로 대응하는 부분이 없지 않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문명의 발원을 잊고 있었는데, 이 책 덕분에 다시금 깨달았다.
스몰베팅은 생물뿐 아니라 기술의 진화가 일어나는 가장 기본적인 논리다. 스몰베팅으로 한 칸씩밖에 나갈 수 없는 것은 인간이 미래의 모든 가능성을 다 알 수 있는 전지전능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마치 개미가 미로를 탐색하듯이 나갈 수 밖에 없다.
(중략) 짧은 시간에 놀라운 기술적 도약이 일어났다면 많은 스몰베팅을 압축해서 집어넣었기 때문이지 축지법을 쓴 것이 아니다. 근시안적 시계공이지만, 지치지 않고 남보다 스몰베팅을 더 많이 할 수 있다면 누구라도 세상 처음 보는 놀라운 시계를 만들어낼 수 있다. -책 110.
저자는 스몰베팅을 누가 얼마나 어느 국가와 사회가 공을 들이냐에 따라서 짧은 시간에 놀라운 기술적 도약이 가능하다고 한다. 최근 중국 대학원생의 딥시크 개발이야말로, 사회에 안겨다 준 충격이 컸다.
한국은 IT 강국이고, 네이버와 다음 카카오, 토스와 같은 기술집약적인 혁신기업이 있다. 그러나 우리사회 그 어느 곳에서도 딥시크에 필적할 만한 놀라운 기술적 도약이 근래에 나타나진 않았던 것 같다. 중국의 대학원생은 엔비디아의 고성능 AI 개발비의 20분의 1비용으로 중국형 AI 모델인 딥시크를 선보였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사회도 이공계열 대학원생들에게 학비와 생활비, 연구개발비 걱정 없이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는 토양을 마련해주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치지 않고, 남보다 스몰베팅을 더 많이 하는 개인일수록, 사회일수록 해당 분야에서는 개인의 역량과 기술개발의 도약은 그만큼 이뤄지는 것이 아닐까?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당연한 이야기를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사회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전언한 바와 같이 아랍의 봄은 민주주의는 고도로 발달된 기술 덕분에 오게 된 것이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과학자, 기술자 개인의 영달을 넘어 우리사회에 민주화를 이룩한다는 주장이 과한 것일까?
기술의 자연 경로에서 또 한 가지 중요한 경향성은 혁신의 민주화(democratizing innovation) 추세다. 이는 과거 소수의 전문가만이 교과서적 원리를 알고 새로운 기술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면, 기술이 발전하면서 비록 비전문가라고 하더라도 기술 발전에 참여할 수 있게 되는 경향성을 의미한다. 대표적인 예로 과거엔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소프트웨어 전문가만 코딩을 할 수 있었다면, 지금은 챗GPT에 자연어로 명령하면 웬만한 코딩을 해주기 때문에 비전문가도 자신만의 고유한 프로그램을 만들어볼 수 있다. (중략) 지금은 중학생도 3D 프린팅 프로그램에 입력하고 마우스로 조절해가면서 복잡한 모형 틀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이 혁신의 민주화 경향은 인류가 기술을 쓰기 시작한 이래 계속된 기술진화의 자연스러운 추세 중 하나다. -책 144쪽.
나는 사회과학자로서 통계 프로그램을 활용해서 연구를 진행한다. 이런 통계 프로그램이 개발되지 않았더라면, 수학을 못하고, 통계 지식이 부족한 사람들은 회귀방정식부터 시작해 고차방정식을 스스로 이해하고,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일찍부터 고등교육을 받을 그리고 학위를 받을 수 있는 길이 없는 것 아닐까?
기술 혁신의 민주화는 그 기술로 말미암아 인간이 누릴 수 있는 다양한 영역이 한정되지 않고, 보편화된다는 의미로 이해된다. 기술의 발달은 전동휠체어와 리프트, 엘리베이터와 자동차, PC, 스마트폰 등 각종 전자기기를 탄생시켰고, 이를 통해 장애인 등 이동권과 접근성에 취약한 대상들이 사회참여와 노동참여 등 기본권을 보장받게 된 것이다.
저소득층 아동 청소년의 경우에도 코딩부터 애플리케이션 개발, 3D 프린트 산업 등에 접근할 기회가 기술 혁신으로 인해 확대된 것 또한 마찬가지다. 큰돈이 없어도 남다른 재주가 없어도 이미 개발된 기술들을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조합해서 프로그래머가 충분히 될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이 저자가 이야기하는 기술 발달의 경향성인 혁신의 민주화라고 생각한다.
과학 기술 개발을 국가의 발전과 이익으로만 이어진다는 협소한 관점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기술 혁신의 목적도 결국 민주화일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민주화란 먹고사는 경로가 특정 소수 엘리트에게만 열려 있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도, 저소득층도, 학업 능력이 조금 부족한 사람들도, 이민자도, 난민에게 열려 있는 사회라고 생각한다. 그 기저에는 복지제도가 놓여 있겠지만 물고기 잡는 법을 익힐 수 있는 수단은 결국, 과학기술이 아닐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필자의 SNS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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