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둥 조롱'에서 시작된 동화, 광주 기적적인 ACLE 8강 진출 '굴곡진 서사'

김희준 기자 2025. 3. 13.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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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FC.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풋볼리스트] 김희준 기자= 광주FC가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엘리트(ACLE) 8강에 진출하기까지는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그 서사는 지난달 11일 광주와 산둥타이산 경기에서 시작된다. 당시 산둥 홈팬은 故 전두환 씨의 사진을 광주 팬들을 향해 내보였다. 전두환은 1980년 5·18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시민들을 상대로 학살극을 벌인 주동자이기 때문에 해당 행위는 광주의 아픈 역사를 알지 못하면 결코 할 수 없는 악의적인 조롱이었다.


산둥은 곧바로 해당 팬에게 평생 출입 금지 조처를 취했지만 여파가 있었다. 산둥은 2월 19일에 있던 울산HD와 경기를 2시간여 앞두고 돌연 기권을 선언했다. 공식 사유는 선수단 건강 문제였고, AFC에서는 산둥이 울산전뿐 아니라 ACLE 자체를 기권하는 걸로 결론지었다. 그러면서 산둥과 경기 결과는 모조리 무효 처리가 됐고, ACLE 동아시아 권역 리그 순위도 요동쳤다. 원래대로라면 포항스틸러스가 16강에 진출해야 하지만 승점 조정 결과 포항보다 낮은 순위에 있던 상하이선화가 8위로 16강행 열차에 탑승했다.


이정효 광주FC 감독. 서형권 기자

광주도 16강 상대가 바뀌는 피해를 입었다. 기존에는 5위 광주가 4위 조호르다룰탁짐을 만날 예정이었다. 그러나 산둥 기권으로 순위표가 바뀌면서 4위로 올라섰고, 3위에서 5위로 떨어진 비셀고베와 16강에서 만났다. 리그 페이즈에서 0-2로 패했던 전적이 있는 팀을 만나는 건 광주 입장에서 아쉬운 일이었다.


조호르도 좋은 팀이지만 지난 시즌 J리그 우승팀인 고베보다 어려운 상대는 아니었다. 고베는 오사코 유야, 사카이 고토쿠, 무토 요시노리 등 일본 대표팀을 경험한 선수들이 있는 강팀이었다. 광주는 허율, 이희균, 정호연 등 핵심들이 이탈하며 리그 페이즈보다 전력이 약해진 데다 빅톨이 장기부상으로 계약을 해지하고 가브리엘, 변준수, 유제호도 부상당하는 등 전력 누수가 상당했다.


광주는 16강 1차전 고베 원정에서 고배를 마셨다. 고베 공격을 막기 위해 다소 수비적인 경기 운영을 했음에도 오사코와 이데 하루야에게 연달아 실점했다. 고베의 선굵은 축구를 제어하는 데 어려움을 겪으며 그 벽을 실감하는 듯했다.


2차전을 앞두고 이정효 감독과 광주 선수들은 결의를 다졌다. 요시다 타카유키 감독이 '아사니만 막으면 된다'라는 뉘앙스의 인터뷰를 했고, 이 감독은 아사니 외에도 좋은 선수들이 많다고 이야기하다가 "생각해보니 열받는다"라고 발진하며 상대의 무시를 선수들의 동기부여 재료로 삼겠다고 이야기했다.


이번 경기 광주는 자신들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방식에 용기, 용맹, 몰입을 더해 고베를 격침시켰다. 조직적인 움직임을 통한 패스워크로 용기 있게 돌격했고, 용맹한 압박으로 상대를 거칠게 밀어붙여 공격을 무산시켰다. 그 결과 전반 18분 박정인이 박태준의 프리킥을 백헤더로 연결해 선제골을 넣은 데 이어 후반 40분 아사니가 페널티킥 득점을 하며 합계 2-2가 돼 연장전을 치렀고, 경기가 막바지로 흘러가던 연장 후반 13분 아사니의 환상적인 왼발 감아차기 슈팅이 골대를 맞고 들어가며 광주가 극적인 8강 진출을 확정지었다.


아사니(광주FC).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이정효 광주FC 감독.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이 감독의 용병술도 빛났다. 고베에게 흐름을 뺏길 수 있었던 후반 22분 박정인 대신 박인혁을 투입해 공격 상황에 높이를 더했고, 이는 후반 37분 박인혁이 이와나미 타쿠야와 공중 경합을 통해 이와나미의 핸드볼 반칙과 페널티킥을 유도하는 단초가 됐다. 연장 후반 11분에는 오후성 대신 최경록을 투입했는데, 최경록은 그로부터 2분 뒤 간결하게 내주는 패스로 아사니의 득점을 도우며 영웅의 조력자 역할을 했다.


이 감독은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그런 날이 있다. 뭘 해도 될 것 같은 날"이라며 KIA타이거즈의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광주FC 팬인 김도영의 밈을 응용했고 "용기, 용맹, 몰입 전부 구현됐다. 용기있게 돌격했고, 용맹하게 압박했다. 모두가 조직적으로 몰입해서 결과를 만들어냈다"라며 선수들의 경기력에 만족했다.


광주는 이제 사우디아라비아로 향한다. ACLE는 8강부터 사우디에서 단판 승부로 치러진다. 현지 시간으로 4월 25일에 시작되기에 약 한 달 반의 시간이 남았다. 광주는 서아시아 권역 4팀 중 하나와 붙는데 알힐랄, 알아흘리, 알나스르 등 사우디 리그만 세 팀이라 어려운 승부가 예상된다. 이 감독이 8강을 '보너스 스테이지'로 표현한 이유다.


선수들과 감독에게는 어느 때보다 큰 동기부여가 될 것이다. 세계적인 선수들과 맞붙는 자체가 성장에 도움이 되며, 승리할 경우 돈과 명성은 물론 실력을 한 단계 발전시킬 기회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광주의 서사는 여기서 끝이 아니라 본격적인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사진=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풋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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