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이들 아프다”...살벌한 걸스릴러 ‘선의의 경쟁’ 만든 김태희 감독

" “머리채 잡혀서 끝까지 봤다”는 말이 듣고 싶네요. " 지난 10일 중앙일보에서 만난 김태희(42) 감독에게, ‘선의의 경쟁’이 어떤 인상을 남기길 바라느냐 묻자 돌아온 답이다.
‘선의의 경쟁’(와이랩 플렉스, STUDIO X+U 제작)은 지난달 10일 U+tv, U+모바일tv에서 선보인 16부작 ‘미스터리 걸스릴러’ 드라마다.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방영 기간 4주 내내 국내외 콘텐트 화제성 상위권을 차지하며 영향력을 입증했다. 지난 10일부턴 티빙을 통해 전편 공개됐고, 왓챠와 웨이브 등의 OTT에도 일부 회차가 풀리기 시작했다.
김 감독은 “매일 리뷰를 찾아보고 있다”며 “시원 섭섭하다”는 소감을 전했다. ‘선의의 경쟁’은 김 감독이 4년 간 준비한 작품. 그는 “단순 로맨스·스릴러가 아니라, ‘감정’이 함께 가는 미스터리에 대한 관심과 욕심이 있다”고 했다. 김 감독은 2008년 장편영화 ‘동거, 동락’으로 입봉 후, 드라마 ‘모모살롱’(2014), ‘슴슴한 그대’(2014) 등을 연출하고 2020년엔 웹소설 ‘결혼의 이유’를 집필했다. 2021년 ‘선의의 경쟁’ 작업을 제안받아, 대본 집필과 연출을 담당했다.

‘선의의 경쟁’은 공부만이 유일한 살 길이었던 우슬기(정수빈)가 살벌한 입시경쟁이 벌어지는 채화여고 3학년으로 전학 오며 시작되는 이야기. 원작에는 없는 설정인 ‘수능 출제위원’ 슬기 아버지의 의문사를 좇는 과정은 드라마를 관통하는 서사다. 슬기 외에도 유제이(이혜리), 최경(오우리), 주예리(강혜원) 등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는 캐릭터들의 매력은 작품의 깊이를 더했다.


초반 회차는 채화여고 4인방을 소개하는 ‘프롤로그’로 구성된다. 우슬기는 주어진 환경을 벗어나기 위해 약을 먹으며 공부에 집착한다. 유제이는 겉으론 완벽하지만, 아버지의 지나친 통제로 누구에게도 곁을 내어주지 않는 사람이다. ‘만년 2등’으로 콤플렉스가 있는 최경, 보이는 것과 가십거리에 집착하는 주예리 또한 자신만의 사연을 갖고 있다.
Q : 인물의 특징이 확실하다.
A : 뾰족한 인물의 매력을 여러군데 녹였다. 상징색을 만들기도 했다. 슬기는 노란색과 파란색 사이에서 고민하는 친구다. 자신이 미아가 된 이유라고 생각하는 ‘파란 드레스’와 입었어야 했던 ‘노란 원복’의 대비가 시작이다. 제이에게도 혼재된 두 색을 발견해,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특히 드라마에서 제이와 슬기의 관계는 각별하다. 서로가 서로를 구하는 ‘구원서사’도 느낄 수 있다. 특히 이혜리 배우는 인터뷰에서 “너에게 준 약, 사실 비타민이었어”라고 슬기에게 고백하는 장면을 가장 좋아한다고 밝혔다. 제이가 자신에게 집중력을 높이는 약을 판 줄 알았던 슬기는 ‘비타민이었다’는 제이의 고백을 들은 후 약을 먹을 때마다 그동안 갇혀있던 ‘물 속’에서 해방되는 느낌을 받는다.
Q : 제이와 슬기, 둘의 관계는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A : “슬기의 19살에서 제이를 빼고 얘기할 수 없고, 제이도 마찬가지다. 둘은 서로에게 한 단어로 명명되기 어려운, 나의 10대와 20대 모두를 뒤흔들 만한 일생일대의 ‘사고’ 같은 존재가 아닐까 생각한다.”
Q : 제이와 슬기에게 ‘물’은 어떤 의미인지.
A : “둘 모두에게 끝이자 시작이다. 슬기에게 ‘물’은 가족을 잃어버린 장소이나, 약을 먹으며 공부에 집중할 땐 심연 속에서 안정감을 느끼게 된다. 제이는 프롤로그를 통해 물속에서 안정감을 느낀다고 묘사되지만, 물로 뛰어내리며 새 삶을 시작한다.”

드라마를 준비하면서 감독은 강남구 학군지를 포함한 여러 지역의 실제 여자 고등학생들을 만났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현직 교사에게도 자문을 구했다. “요즘 아이들이 아파요”라며 운을 뗀 그는 인물들을 통해 각기 다른 힘듦을 전하고 싶었다고 전했다. 그는 “집중력 높이는 약을 먹는 건 기본, 컨디션 좋을 때 자기 피를 뽑아뒀다가 집중을 위해 다시 수혈하는 경우도 있었다”며 작품에 녹인 요소를 설명했다.
“대입을 위해 달려온 인물들이지만, 앞으로는 각자만의 속도로 달리길 바라는 마음”으로 연출했다고. 가장 모범적으로 달려가던 ‘제이’라는 인물에게 자유를 주었던 이유도 마찬가지였다.
Q : 마지막 장면에서 제이의 표정이 자유로워 보인다. 제이는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될까.
A : 오랜 시간동안 억압당한 사람이 갑자기 자유를 얻게되면 바로 뭔가가 떠오를 것 같진 않다. 그래도 이전의 주목받던 삶보다는 조용하지만 내면의 행복을 찾아가며 바람처럼 살지 않을까. 그런 미래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만든 장면이다.

'선의의 경쟁'은 김 감독에게 ‘자식 같은’ 작품이다. 차기작은 아직 계획이 없지만, 긴 작업을 마친 기념으로 휴식 중이라고 했다. 이어 “제작할 때 시즌 2를 염두에 둔 상황은 아니었다”며 “상황이 잘 맞아야 하겠지만, 반응이 뜨거우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기대를 내비쳤다.
최혜리 기자 choi.hyer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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