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백종만 (10) 선망의 외국계 회사 ‘어메리칸 트레이딩 상사’ 입사

이현성 2025. 3. 13.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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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겨울, 군대에서 전역함과 동시에 가장이 됐다.

"이 새벽에 주무시지도 않고 왜 청소를 하고 계세요. 아무도 안 보는데요." "내가 일하는 회사잖아. 누가 보든 안 보든 깨끗하게 만드는 게 너무 좋아서 그래." 감동이 됐다.

미국에 본사가 있고 전 세계 각국에 지사를 둔 회사로, 미국의 IBM, 휴렛팩커드(HP), 제너럴일렉트릭(GE) 등 당시 세계적인 기업들의 제품을 수출하는 일종의 종합무역상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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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상의 아버지 대신 가족 생계 책임
복학 미루고 제조공장서 일하던 중
대학 선배 소개로 미국계 회사 면접
사장에게 좋은 면접 평가 받고 합격
백종만 YPP 회장의 청년 시절 모습. 백 회장은 1977년 전역 이후 신발 공장에서 일하며 무역 공부를 이어갔다. 백 회장 제공


1977년 겨울, 군대에서 전역함과 동시에 가장이 됐다. 부모님은 내가 제대할 무렵 서울 양천구 신월동으로 이사를 와서 어렵게 살고 계셨다. 나이가 들어 농사일이 힘에 부쳤고, 동생들 교육을 위해서기도 했다.

아픈 아버지를 대신해 가족들을 먹여 살려야 했기에 대학 복학은 미룰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서울역 인근 신발창 제조공장에 가게 됐다. 대졸 신입사원이 월급 20만원을 받던 시절, 나는 4만5000원을 받으며 일을 했다. 원자재 수입과 관련된 간단한 무역 업무를 보조했는데 무역학과를 졸업한 신입 직원이 들어오면서 나는 대전 공장으로 내려가게 됐다. 대전 공장에선 기계에서 쏟아져 나오는 신발창을 정리하는 단순 작업을 했다. 묵을 곳이 없어서 공장 경비원들이 생활하는 수위실 구석에서 쪽잠을 자며 살았다.

대전 공장에선 잠자리가 불편해 새벽 두세시쯤 눈을 뜨는 날이 많았다. 그날은 유독 다시 잠이 안 와서 ‘언제까지 이 일을 해야 하나’ 기도하고 있었다. 공장 마당에서 뭔가 움직이는 모습이 보이고 슥슥 소리가 났다. 수위실에서 같이 주무시던 경비원 아저씨가 새벽에 혼자 공장 청소를 하고 있었다.

“이 새벽에 주무시지도 않고 왜 청소를 하고 계세요. 아무도 안 보는데요.” “내가 일하는 회사잖아. 누가 보든 안 보든 깨끗하게 만드는 게 너무 좋아서 그래.” 감동이 됐다. 잠시 잊고 있던 열정과 꿈이 다시 살아나는 듯했다. 이 기억을 교훈 삼아 무슨 일을 하든지, 누가 보든지 보지 않든지 그 경비원 아저씨처럼 열심히 일했던 것 같다.

대학은 결국 졸업하지 못했다. 가족들을 위해 계속 돈을 벌어야 했다. 하지만 일을 하면서 무역 공부를 이어갔다. 어느 날 우리 집 형편을 아는 대학 선배가 새로운 일자리를 소개해줬다. 당시 미국계 무역회사에 다니던 그분은 이렇게 말해줬다. “우리나라 회사는 학력 많이 따지잖아. 이 회사는 학력을 안 봐. 한 번 지원해봐.”

밑져야 본전인데, 면접은 보게 해준다니 일단 가보기로 했다. 미국에 본사가 있고 전 세계 각국에 지사를 둔 회사로, 미국의 IBM, 휴렛팩커드(HP), 제너럴일렉트릭(GE) 등 당시 세계적인 기업들의 제품을 수출하는 일종의 종합무역상사였다.

시골 출신에 대학도 못 나오고 연줄도 없는 나 같은 사람을 뽑아 줄까 싶으면서도 묘한 자신감이 들었다. 그때만 해도 외국계 회사는 선망의 직장이었다. 능력 위주로 사람을 평가하고, 이미 주5일 근무제를 시행하고 있었다. 맡은 일만 열심히 하면 쉬는 날도 보장됐다. 무엇보다 주일성수를 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었다. 루마니아 출신 미국인 사장이 면접에서 좋은 점수를 준 덕분에 나는 ‘어메리칸 트레이딩 상사’ 사원이 됐다. 하늘을 날 듯 기뻤다.

나는 곧 GE 담당 사업부에 배치됐다. 토머스 에디슨이 설립한 전기조명 회사를 모체로 성장한 GE는 당시 세계 최대의 글로벌 기업이었다. 오늘까지 파트너로 일하고 있는 GE와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이 됐다.

정리=이현성 기자 sag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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