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입 금지 풀라”…비관세장벽 빌미 가능성

미국 축산업계가 30개월령 이상된 미국산 소고기의 수입을 금지하고 있는 한국의 검역 규정을 해소해달라고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은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8년 ‘광우병 파동’ 이후 이를 제한하고 있다. ‘비관세장벽’인 수입 규제를 구실로, 미국이 한국에 상호관세 부과를 압박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미국 전국소고기협회(NCBA)는 11일(현지시간) 미무역대표부(USTR)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미국산 소고기에 대한 30개월 연령 제한이 한국에서 민감하다는 것을 알지만 무시하면 안 될 이슈”라며 “중국·일본·대만 등은 월령 제한을 폐지했으니, 한국과도 협의를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은 지난 2001년 미국산 소고기를 제한 없이 수입하기 시작했지만, 2003년 미국에서 광우병이 논란이 되자 미국산 소고기 수입을 전면 금지했다. 이후 2008년 한·미간 협상을 거쳐 30개월 미만에 대해서만 수입하기로 합의했다.
미국 축산업계의 소고기 수입 월령 확대 주장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USTR은 지난 2013년부터 매년 ‘국가별 무역장벽보고서(NTE)’에 “한국이 30개월령 미만인 미국산 소고기만 수입하기로 한 것은 ‘과도기적 조치’였다”며 소고기 시장 완전 개방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USTR은 업계 의견을 청취한 내용을 NTE에 담는다.
그러나 정부에 따르면 미국이 2008년 이후 이를 공식적으로 요청한 적은 없다. 전 통상당국 관계자는 “2008년 민간 자율협약에 따라 30개월령 이상의 미국산 소고기 수입을 제한하고 있다”며 “실제 미국에서 30개월령 이상의 소고기 비중이 높지는 않지만, 미국 업계 입장에서는 수출을 조금이라도 더 늘리고 싶을 것”이라고 말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미국이 실제로 소고기 수입규제 해소를 요구할 가능성이 적을 것으로 본다. 한국은 이미 세계에서 미국산 소고기를 가장 많이 수입하는 국가인데, 미국이 한국 소비자가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이슈를 건드릴 실익이 없다는 분석에서다. 실제 한국무역협회가 미 상무부 인구조사국 수출입 통계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미국산 소고기 냉장용(9억4000만 달러)·냉동용(12억 달러) 모두 한국이 1위 수출국이었다.

이미 한국은 지난해 소고기 수입량의 48.1%를 미국에서 들여 왔는데, 월령 제한을 푼다고 미국산 수요가 더 늘어날지 의문이라는 시각도 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만약 USTR에서 요청이 온다면 탄탄한 논리로 대응할 것”이라면서도 “미국 내 한 협회가 의견을 낸 정도라 당장 대응하기는 이르다”고 설명했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중국과 무역 전쟁으로 판로가 축소된 미국으로서는 잉여 제품의 수출을 한국 시장 등으로 확대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다른 농축산물에 대해서도 수입 확대를 요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미국이 이 문제를 일종의 ‘비관세 장벽’으로 보고, 상호관세의 구실로 삼는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상호관세를 매길 때 교역 상대국의 관세뿐 아니라 비관세 장벽 등 불공정한 규제까지 반영하겠다고 했다. 이에 다음 달 1일까지 USTR에 교역 상대국의 불공정 무역 관행과 개선 방안을 담은 보고서를 제출하라고 지시했다.
USTR은 미국 내 다양한 업계의 의견을 지난달 20일부터 이날까지 접수했다. 이들이 낸 의견서는 USTR 홈페이지에 공개돼 있는데, 한국이 개선해야 할 문제로 ▶보조금 지급 ▶저렴한 전기요금 ▶약값 통제 ▶환율 관리 ▶노조 억압 ▶콘텐트 규제 등을 꼽았다. 이 중 상당수는 수년전부터 주장했고, USTR의 무역장벽보고서(NTE)에도 담긴 것들이다.
미국철강협회(AISI) 등은 USTR에 “한국 정부가 유리한 조건의 대출과 수출 금융, 보조금 지급과 시장가격보다 낮은 전기요금 등을 활용해 한국의 철강업체들을 보조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한국 정부는 환율을 관리해 국내 제조업체들에 혜택을 제공한다”라고도 했다.
전미자동차노조(UAW)는 “한국 정부가 노조 활동을 억압하는 등 자동차 노동자 급여 인상을 억제한다면서 한국의 이런 노동 조건이 미국 자동차 노동자의 근로 여건에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했다. 미국영화협회(MPA)는 한국 국회가 추진하는 망 사용료 부과가 부당하며, 외화 상영 일수를 제한하는 스크린쿼터 등도 없애야 한다고 했다.
박성훈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미국이 무역적자 해소를 위해 비관세 장벽을 구실로 한국을 압박할 가능성이 크다”며 “미국 업계나 정부가 요청한 비관세 장벽 중 스크린쿼터처럼 산업 환경의 변화로 효과가 미미해진 규제를 상징적으로 해소하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지키는 식의 협상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세종=김원·임성빈 기자 kim.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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