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아리 없이 봄을 맞는 이 헛헛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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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여름은 1973년 이후 가장 더운 여름이었다.
태어난 병아리가 알을 낳을 즈음이 되자, 복분이는 다시 알을 품었다.
이번엔 추운데 병아리를 품는다고 고생할까 복분이를 밀어냈지만, 알을 품겠다는 본능을 막을 도리가 없었다.
복분이는 병아리를 알뜰살뜰 보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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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탉 ‘복분이’가 지극정성으로 품고 키웠지만… 꿈처럼 사라진 병아리들
2024년 여름은 1973년 이후 가장 더운 여름이었다. 최고로 더웠던 여름, 암탉 복분이는 알을 품었다. 이 더위에 고생스럽진 않을까? 복분이를 밀어내도 그때뿐이었다. 복분이는 이내 다시 올라와 알을 품었다. 어쩌겠니, 네가 그렇게 원한다는데. 알을 품을 수 있도록 도왔다. 지난한 21일이 지나고, 두 마리의 병아리가 태어났다.
태어난 병아리가 알을 낳을 즈음이 되자, 복분이는 다시 알을 품었다. 1월 한겨울이었다. 이번엔 추운데 병아리를 품는다고 고생할까 복분이를 밀어냈지만, 알을 품겠다는 본능을 막을 도리가 없었다. 복분이는 알이 조금이라도 식을까, 모이를 먹을 때를 제외하곤 거의 내려오지 않았다. 영하 15도~10도를 오가는 날씨였다.
새끼가 나올 때쯤, 복분이가 높은 곳에 있어 옮겨주려 밤에 닭장에 들어갔다. 복분이를 들어보니 벌써 두 마리의 병아리가 태어나 있었다. 둥지엔 온갖 오물이 퍼져 있었는데, 복분이가 둥지를 떠날 수 없어 그곳에 실례한 것이다. 다음날 추가로 두 마리가 태어났고, 총 네 마리가 지상에 발을 디뎠다.
복분이는 병아리를 알뜰살뜰 보살폈다. 날이 추우니 병아리들은 자주 복분이의 품속에 숨으려 했다. 복분이는 불평불만 없이 자신의 품속을 내주었다. 복분이가 먹을 것을 내려놓으면서 ‘이건 먹는 거란다’라고 가르치는 듯 울면, 병아리들은 이를 먹으면서 엄마 닭을 졸졸 따라다녔다. 이대로만 건강하게 커주길 바랐다.
태어난 지 2주가 지나서였을까? 병아리 한 마리가 닭장 밖에서 얼어 죽은 채 발견됐다. 밤이 됐을 때 미처 들어오는 곳을 찾지 못해 죽은 것으로 보인다. 꽁꽁 얼어붙은 병아리의 모습을 보니 미안하고 마음이 아팠다. 남은 병아리라도 잘 자라길 바라는 마음이었지만, 며칠 뒤 두 마리가 사라졌다. 흔적을 찾아보니 한 마리는 고양이에게, 다른 한 마리는 쥐에게 물려 간 것 같다.
복분이는 새끼를 잃은 충격 때문인지 마지막 한 마리 병아리는 돌보지 않으려 했다. 그 병아리가 얼어 죽을 것 같아 집에서 히터를 틀어주고 다시 살려 내보냈건만, 복분이는 병아리를 방치한 채 죽게 만들었다. 복분이는 언제 새끼를 돌봤느냐는 듯, 아무렇지 않게 활동을 시작했다.
자연의 속도가 얼마나 느린지 새삼 알게 됐다. 인공부화기로 했으면 벌써 100마리, 1천 마리를 생산했겠지만 닭의 자연적 시간으로는 이제 10마리다. 느려도 자연의 시간을 존중하면서 키우기로 했다. 참새가 지저귀고 새싹이 솟아오르는 봄날을 병아리와 함께 맞았으면 좋았으련만, 병아리들은 꿈처럼 사라져버렸다. 참새의 지저귀는 소리에 병아리인가 멈칫 돌아보게 된다.
생명의 탄생과 소멸, 기쁨과 상실이 한순간에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그 과정 속에서 복분이가 다시 알을 낳듯 나도 망연자실하고만 있을 순 없다. 언젠가 또 병아리가 태어나면, 이번에는 더 잘 지켜내리라. 자연의 시간을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함께 살아가는 법을 조금씩 배워가기로 했다. 따스한 햇살 아래 병아리들이 다시 깨어날 날을 기다리며, 오늘도 닭장을 바라본다.
글·사진 박기완 글짓는 농부
*농사를 크게 작게 지으면서 생기는 일을 들려주는 칼럼입니다. 지역이 다른 세 명의 필자가 돌아가며 매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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