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 임팩트투자를 활성화하자

문진수 2025. 3. 11.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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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팩트투자에 대한 비판적 고찰 ③

임팩트투자는 2000년 후반 영미권에서 흐름이 형성되어 2010년 무렵 우리나라에 도입된 투자 방식이다. 사회, 환경적으로 유의미한 임팩트(impact)를 창출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이 새로운 투자 실험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까. 이글은 글로벌 임팩트 투자시장의 현주소를 짚어보고 한국적 맥락에서 발전적 대안을 찾기 위한 취지에서 작성된 것으로, 이후 몇 차례에 걸쳐 게재할 예정이다. <기자말>

[문진수 기자]

투자의 세계는 냉혹하다.
투자자는 피투자자가 수익을 안겨줄 수 있는 상대인지를 빈틈없이 살피고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각종 장치를 계약서에 삽입한다. 투자가 이루어진 후에도 수시로 피투자자를 만나 사업 진행 상황을 점검한다.

투자금을 회수하려면 긴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최소 5년에서 최대 10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돈이 잠기게 된다. 융자는 담보를 통해 채무불이행에 따른 손해를 보상받을 수 있지만, 투자는 원금을 회수할 안전장치를 만들기가 쉽지 않다. 투자자 관점에선 신중할 수밖에 없다.

벤처캐피털(VC), 사모펀드(PEF) 등 투자 전문업계에서는 확률값 10%가 공공연한 진실로 회자한다. 10곳에 투자하면 1곳에서 성공의 과실을 딴다는 뜻이다. 이 말은 투자금을 온전히 회수하려면 성공한 1곳에서 10배의 수익을 올려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임팩트투자도 이 질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자본시장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수익과 가치를 한 바구니에 담으면 더할 나위 없지만, 둘이 늘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건 아니다. 현실에선 상충하는 경우가 더 많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몰린다면, 투자자는 어느 쪽을 선택할까.

수익을 포기하고 가치를 선택할 가능성보다 가치를 접고 수익을 택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보험회사. 자산운용사. 대기업 등 영리를 추구하는 회사는 물론이고 공공기관, 공익재단, 임팩트투자 전문회사도 마찬가지다. 손실을 감내하면서 '임팩트'를 창출하려는 곳은 드물다.

똘똘하고 훌륭한 선수를 발굴해도 차돌처럼 차가운 현실에서 두 마리 토끼를 쫓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혁신기업은 가치와 수익 사이에서 힘겨운 줄타기를 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들의 짐을 가볍게 해 줄 필요가 있다. 가치 창출에 집중할 수 있도록 여지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이 역할을 할 수 있는 투자자가 정부다. 정부가 투자자로 참여하면 차돌처럼 딱딱한 지형을 말랑하게 바꿀 수 있다. 정부 참여 지분의 기대수익률을 낮춰 총수익률(ROA) 목표를 조정할 수도 있고, 후순위채권(subordinated debt)을 활용해 상환 부담을 덜어줄 수도 있다.

자본시장에서 투자받을 기회를 얻기 힘든 혁신기업을 돕는 일도 가능하다. 투자 집단을 구성(portfolio)할 때, 시장친화적(market-oriented)인 사회적기업과 소셜벤처만 묶지 말고 공동체 친화적(community-oriented)인 사회적경제 기업도 함께 포함하는 것이다.

비영리·비정부 기구, 마을기업, 협동조합 등 3부문(sector) 조직들은 임팩트 창출 능력은 뛰어나지만, 수익성을 담보할 수 없어 임팩트투자 대상 목록에서 배제된다. 이 중에는 투자 유치를 희망하는 곳도 많다. 이들이 투자금을 지원받는다면 조직을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게 될 것이다.
▲ 혁신 주체들의 자원의존 경로 지향하는 가치에 따라 자원을 동원하는 방향이 달라짐
ⓒ 문진수
영국, 미국 등 시민사회가 발달한 나라를 살펴보면 기부(grant), 자선투자(philanthropy), 임팩트투자 시장이 일련의 띠(belt)를 형성하고 있다. 조건 없이 돈을 기부하는 사람, 쓰임새를 지정해 돈을 쾌척하는 기업, 가치 있는 일에 참여하면서도 원금을 돌려받길 희망하는 투자자가 고루 분포되어 있다.

우리는 사정이 다르다. 기부 시장은 비좁고, 자선투자 시장은 황무지에 가까우며, 임팩트투자 시장은 진입장벽이 높다. 혁신주체들의 자원 의존 통로가 극히 제한되어 있다. 비영리기구, 사회적경제기업 등 가치를 추구하는 단체와 기업들이 공공 재원에 기대는 이유다.

이런 토대 위에서, 3부문이 우리 사회에 긍정적인 '임팩트'를 창출하기란 난망한 일이다. 어떻게든 민간 자원이 이 영역으로 유입될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야 한다. 정부가 해야 할 역할이 이것이다. 공익을 위해 활동하는 주체들과 선한 의지를 가진 시민들이 교류할 수 있는 장(platform)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 작업을 수행하려면 임팩트투자의 판(version)을 바꾸어야 한다. 자본시장의 문법과 다른 공공 임팩트투자(public impact investment)의 기준과 원칙을 정립한 다음, 이 투자를 실행할 중개기관(intermediary)을 육성하는 것이다. 공공 원리를 부합하는 임팩트투자 생태계를 조성하면 된다.

영국은 임팩트투자 시장을 만들 때, 돈뭉치(fund)를 마련하는 것보다 선수(player)를 키우는 것이 먼저라고 보고, 중개기관을 육성하는 작업에 주력했다. 소규모의 정책자금을 지원한 후, 이들이 뿌리를 내리도록 도운 것이다. 어느 정도 시장이 형성되자 도매기금(Big Society Capital)을 통해 자금을 풀기 시작했다.

'중개기관 먼저, 자금 나중!'이라는 원칙을 따른 것이다. 문재인 정부 시절, 영국 사례를 준거 삼아 사회적금융 생태계를 만들려는 시도가 있었다. 그런데 우리는 이 공식을 따르지 않았다. 중개기관을 육성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금융회사를 활용하는 쪽을 택했고, 도매기금을 만들었으나 정책자금을 태우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이 정책은 실패했다. 긴 안목으로 차근차근 시장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단기 성과에 급급해 사업을 그르친 것이다. 영국처럼 중개기관을 육성하는 일에 초점을 맞추고 공공기금을 통해 정책자금을 지원했다면, 임팩트투자 시장 판도는 확연히 달라졌을 것이다.
▲ 영국 임팩트투자 도매기금 누리집 (bettersocietycapital.com) 최초 이름은 Big Society Capital이었음
ⓒ 문진수
매년 상당한 양의 정부 정책자금이 벤처(venture) 시장으로 흘러 들어간다. 벤처기업을 지원하는 일은 중요하다. 동시에 사회·환경적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분투하는 혁신기업을 키우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과업이다. 이에스지(ESG)가 대세인 시대가 아닌가.

임팩트투자 시장에서 정부가 해야 할 일은 공익 목적 사업에 민간 자금이 유입될 수 있는 투자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이 임무를 방치한다면 임팩트투자는 자본시장에 끌려다닐 것이고, 우리 사회를 밝혀줄 혁신 주체들은 메마른 땅에서 힘겹게 버티다 고사(枯死)할지 모른다.

덧붙이는 글 | 문진수 기자는 사회적금융연구원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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