빤히 보이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나 [김선걸 칼럼]

김선걸 매경이코노미 기자(sungirl@mk.co.kr) 2025. 3. 9.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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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거꾸로 묻고 싶어요. 곧 변화할 세상이 눈앞에 빤히 보이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죠?”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이 반문했다. 지난 2018년부터 지금까지 AI에 총 1조원을 투자해온 이유를 물었던 터였다.

실제 주변에서 ‘카드사가 AI에 왜 그렇게 많은 돈을 쏟아붓느냐’는 질문이 근 7년 넘게 이어졌다고 한다.

그럴 만도 했다. 현대카드가 매년 영업이익의 30%를 뚝 잘라 소프트웨어와 인재에 투자했으니 말이다.

정 부회장은 그 질문을 받을 때마다 되물었다고 한다. 도리어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냐’고.

비가 올 것이 확실한데 ‘우산을 왜 챙겨요’라고 묻거나, 발등에 불이 났는데 ‘왜 물을 부어요’라고 묻는 셈이란 것이다. 현대카드는 개발한 AI ‘유니버스’를 작년 말엔 일본의 스미토모미츠이카드사에 수백억원을 받고 수출했다. 중동 등에서도 이 AI를 쓰겠다는 연락이 잇따른다.

AI를 바탕으로 한 현대카드의 PLCC(상업자표시신용카드) 사용자가 3억명을 바라본다. 1인당 최대 5000가지의 선호를 분석하고, 매장마다 개인별 추천 목록을 만들고, 고객이 어느 시점에 올지도 예상한다. 대한항공, 현대차, 이마트, 무신사 등 20여개 기업이 현대카드의 AI를 쓴다. ‘원유보다 소중한 자원’이라는 소비자 데이터를 선점하기 시작했다.

정 부회장은 현대카드를 ‘AI 분야의 SAP’라고 부른다. SAP는 세계 최대의 ERP(전사적자원관리) 소프트웨어 업체다.

현대카드는 지난해 ‘업계 부동의 1위’ 신한카드에 신용판매액 규모에서 처음 앞섰다. 다른 회사들이 전통적인 영업으로 규모를 늘릴 때 현대카드는 1조원을 들여 인프라를 열심히 깔았다. 비유하자면 주산으로 열심히 계산하고 있는 카드 업계에 컴퓨터를 사서 연산을 돌리기 시작한 격이다.

금융계에선 이미 알 만한 사람은 차이를 느낀다. 단지, 아직 승부가 끝났다는 말은 아니다. 다른 쟁쟁한 카드사들이 지금이라도 AI 투자를 시작하면 후발 주자로 압축적으로 따라잡을 수도 있다. 어쩌면 현대카드의 ‘도발’로 한국 카드 업계가 세계에서 가장 먼저 AI 기업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역사를 보면, 변화를 확신하고 행동에 옮긴 사람들이 세상을 바꿨다. 스마트폰을 확신한 애플의 스티브 잡스, 전기차의 대세를 예견한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스트리밍 서비스를 밀어붙인 넷플릭스나, 클라우드 시대를 연 아마존과 MS도 광활한 황무지에 먼저 깃발을 꽂았다. 처음엔 긴가민가했던 다른 사람들도 결국 나중에 그 깃발 아래로 모여들었다.

먹구름이 몰려오면 우산을 준비해야 한다. 저녁노을을 보면 불을 밝혀야 한다. 요즘은 기술 발전으로 세상이 광속으로 변한다. 너무 빨리 변해서 함께 변하지 않으면 곧바로 도태된다.

정 부회장만 변화를 확신한 건 아닐 것이다. 그가 던진 질문, ‘다른 사람들은 왜 가만히 있지?’의 답은 무엇일까. 아마도 관료제 때문일 것이다. 경쟁 금융회사의 임기제 전문경영인들은 10년을 내다보는 결단은 힘들다. 그보다는 임기 동안 투자금을 아끼고 올해 내년 실적을 올리는 전략을 선호하게 돼 있다.

문제는 세상이 예전처럼 천천히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변화에 관심 없이 하던 대로 하겠다는 100명의 직원보다 미래를 보고 행동하는 딱 한 명의 인재가 필요한 시대가 됐다.

변화에 간절하고 자원을 집중해야 살아남는다.

사실 평범한 우리도 웬만한 변화는 이미 다 예측하고 있지 않은가?

[주간국장 kim.seonkeol@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00호 (2025.03.06~2025.03.1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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