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피하는 인간과 진정한 회개의 길 [배철현의 ‘카라바조로 보는 인생’]

2025. 3. 9.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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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부인(否認)하십니까?
베드로의 부인, La Negazione di Pietro 카라바조(1571~1610년), 유화, 1610년, 94㎝×125.4㎝,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대한민국에는 자신의 명백한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사람이 없다. 특히 정치인이 그렇다.

잘못의 시인은 온전한 자신을 수련하는 사람의 일상이다. 온전한 리더라면, 매일 밤 거울 앞에 선 자신을 본다. 그에게 거울은 자신의 가장 엄격한 법정이어야 한다. 실수와 잘못의 반복은, 개선된 자신이 추구하는 인생에 대한 배신(背信)이다. 시인(是認)이란 한자가 그런 의미를 담고 있다. 시인이란, 누가 칼로 위협해도 도끼(刃)로 자신의 심장(心)을 도려낸다 할지라도, 자신이 말(言)로 맹세한 철학을 지키는 용기다. 그런 자는 자신의 실수를 시인한다. 그 잘못을 스스로 인정하고 용서할 때, 타인도 그를 용서할 마음이 생긴다. 부인은 이 모든 것을 부정하는 비겁이다.

카라바조는 자신이 죽던 해인 1610년에 회한의 눈물을 머금은 자신을 그렸다.

그의 불행은 1605년 로마에서 토마소니라고 불리는 포주를 살해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는 변장을 하고 로마를 빠져나와 나머지 인생을 도망으로 불안하게 살았다. 당시 가톨릭교회는 개신교 종교개혁과 맞먹는 강력한 종교개혁을 실시하고 있었다. 특히 교황이 거주하는 로마에서 살인은 극형감으로, 누구나 살인자를 현장에서 죽일 수 있다는 포고령을 내렸다. 교황만이 그에게 사면을 줄 수 있었다. 카라바조는 그 후 말타섬에 잠입해, 독립된 자치정부를 유지하던 성요한 기사단을 위해 그림을 그렸다. 자신이 기사 작위를 얻으면, 교황으로부터 사면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는 ‘세례 요한 처형’과 같은 그림을 그리면서 기사 작위를 수여받았지만, 한 성요한 기사에게 심한 욕설을 퍼부으면서 싸움에 휘말렸다. 카라바조는 다리가 부러지고 얼굴에 큰 칼자국 상처를 얻었다. 그는 기사단에서 쫓겨나 다시 도망치는 삶을 살았다. 그는 말타를 떠나 시실리섬 시라쿠스로 밀항한 후, 메시나와 팔레르모를 전전하면서도 ‘나사로의 부활’ ‘예수의 탄생’ ‘에케 호모’와 같은 감동적인 성화를 드렸지만, 교황의 사면은 끝내 오지 않았다.

당시 카라바조는 앞을 거의 볼 수 없었고, 잘 걸을 수 없었다. 그는 다시 그를 죽이겠다는 기사단의 위협을 피해 나폴리 항구로 잠입한다. 1610년 여름이다. 다가온 죽음을 직감한 듯,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그림을 그렸다. ‘베드로의 부인’이다. 이 그림은 이전 그림들과는 달리 투박하다. 붓을 온전히 들지 못하는 떨리는 손으로 그렸을 것이다. 그래도 그의 천재성이 인물 표정에 남아 있다. 특히 자신의 스승 예수를 배신하고 자신의 잘못을 깨닫는 베드로의 심리를 표정에 온전히 담아 표현했다.

복음서에 등장하는 베드로의 원래 이름은 시몬이다. 그는 청년 예수를 만나 물고기가 아니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기를 결심했다. 베드로는 예수가 유대를 정치적으로 통일한 메시아로 착각했다. 그는 예수 앞에서 “당신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는 신앙고백을 하면서 충성을 약속했지만, 예수는 그의 연역한 인간성을 지적했다. 예수는 그에게 닭이 울기 전 세 번 부인할 것이라고 예언한다. 베드로는 절대 그럴 일은 없을 것이라고 힘줘 말했지만, 예수가 겟세마네 동산에서 대중에 의해 대제사장 가이바 궁궐에 끌려가는 모습에 두려워한다. 베드로는 멀찌감치 군중을 뒤따라갔다. 그는 아래 뜰에서 예수가 위 뜰에서 종교재판을 받는 광경을 목격하고 있었다. 예수가 온갖 모욕을 당하고 구타를 당하지만, 아래 뜰에서 숯불에 몸을 녹이며 방관한다. 그러자 가이바 궁궐의 여종이 그를 알아본다. 그녀가 베드로를 나사렛 출신 예수와 한패라고 몰아붙인다. 만일 베드로가 예수의 최측근 제자란 사실이 발각되면, 그도 끔찍한 처형을 당할 수 있었다. 그는 목숨이 경각에 달린 상태에서, 예수를 정면으로 알지 못한다고 부인한다.

‘부인’하는 인간의 나약함, 그리고 회개의 순간

‘마가복음’ 14장 65~72절에 베드로가 예수를 부인하는 세 장면이 등장한다. 첫 번째 장면에서 여종이 모닥불에 몸을 녹이고 있는 베드로를 빤히 보고 “당신도 저 나사렛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다”라고 말한다. 그러자 베드로는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나는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겠다”라고 유대 법정 용어를 사용하면서 공식적으로 부인한다. 그런 후 불빛이 없는 건물 아치 밑으로 몸을 숨긴다.

베드로는 여종이 자신의 얼굴을 잘 볼 수 없어, 그를 무시할 것이라고 판단했지만 오산이었다. 두 번째 장면에서 그 여종이 아치 밑으로 따라와 이번에는 이제는 그 곁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이 자는 예수와 한패입니다”라고 고자질한다. 그러나 이번에도 베드로는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나는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겠다”고 부인한다.

세 번째 장면에서, 여종이 아니라 그곳에 모인 주위에 다른 사람들이 베드로를 지적한다. 그들이 “당신이 갈릴리 사람이니까 틀림없이 그들과 한패다. 너의 말투가 그렇다.” 그러자 곧 닭이 두 번째 울었다. 그래서 베드로는 예수께서 자기에게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나를 세 번 모른다고 할 것이다”라고 하신 그 말씀이 생각났다. 그래서 그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면서 (혹은 땅에 자신의 몸을 던지면서) 괴로워 울기 시작했다.

카라바조는 ‘마가복음’에 등장하는 베드로가 예수를 부인하는 세 장면을 읽고 또 읽었다. 그는 세 번의 부인 이야기를 한 장의 그림에 담았다. 여기 문지기, 여종, 베드로가 등장한다. 아치를 떠받치는 황토색 가로 들보 앞에 특별히, 여종과 베드로 사이에 숯불 불씨가 하늘로 날아가고 있다. 베드로가 아래 뜰에서 몸을 녹이던 첫 장면이다. 왼편에 투구를 쓴 궁궐의 문지기가 있다. 그의 얼굴은 어둠 속에 있다. 카라바조의 ‘그리스도의 체포’에도 등장하는 군인이다. 왼편에서 온 조명이 그의 갑옷과 붉은 소맷자락을 비추고 있다. 그 옆 여종은 양손을 들어 베드로를 가리키지만, 얼굴을 문지기 쪽으로 돌려 빤히 쳐다보고 있다. 여종이 주위 사람들에게 베드로가 예수와 한패라고 고자질하는 두 번째 장면이다.

베드로의 모습엔 첫 번째, 두 번째, 그리고 세 번째 장면이 모두 함축적으로 담겨 있다. 그의 대머리는 힘없는 주름살 거죽으로 덮여 있다. 그의 휑한 눈은 문지기가 아니라 허공을 응시한다. 베드로의 눈에는 한없이 심오한 공허와 슬픔이 담겼다. 그는 두 손의 검지와 엄지를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에게 겨눈다. “내가요?”라고 항변하면서 자신이 예수와 한패가 아니라는 사실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그의 손가락은 이중적이다. 예수를 부인한 자신을 증오하는 몸짓이기도 하다. 그의 왼쪽 눈에서는 눈물이 넘쳐나 얼굴로 쏟아져 내릴 것 같다. 그는 스승을 배신한 자신과 마주할 수 없는 지경이다.

왜 복음서는 그리스도교의 반석인 베드로의 비겁한 부인을 이렇게 중요하게 다루었는가? 끔찍한 박해 앞에서 자신의 신앙을 지켜내기가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예수의 수제자도 이런 배교를 저질렀지만, 그가 그 후에 회개하고 새로운 삶의 길을 찾았다.

‘베드로의 부인’은 초대 그리스도교 교인들과 우리에게 던지는 위안의 복음이다.

[배철현 더코라 대표]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00호 (2025.03.06~2025.03.1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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