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채의 '민중과 경제'

김삼웅 2025. 3. 8.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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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80주년명문100선 59] 이 땅의 토속적 민초들의 삶을 살아온 저자의 육화된 '민중론'

[김삼웅 기자]

▲ 1987년 <한국 경제구조론>(일월서각), <한국자본주의와 민족운동>(한길사), <민족경제론>(한길사)으로 제2회 단재상을 수상한 박현채 교수가 수상연설을 하고 있다. 1987년 <한국 경제구조론>(일월서각), <한국자본주의와 민족운동>(한길사), <민족경제론>(한길사)으로 제2회 단재상을 수상한 박현채 교수가 수상연설을 하고 있다.
ⓒ 한길사
1980년대는 광주민주화운동의 살육과 이에 대한 저항의 피값으로 진행되었다. 살육자들은 여전히 공권력을 사유화하면서 광란의 칼춤을 추고 비판세력은 학술·문화·법조·예술 등 분야를 확대하면서 저항하였다. 일단의 학자·문인·예술가들의 역할이 컸다.

1934년 전남 화순출생인 박현채는 서울대 상과대학을 졸업하고 한국농업문제연구회 연구원으로 활동, 군 제대 후 서울상대·국학대 등 시간강사, 1964년 인혁당 사건에 연루되어 1년 복역, 출감 후 여러 대학에 출강, 1980년 '134명 지식인선언'과 관련 서대문경찰서에 조사받고 풀려나는 등 시련을 엮었다.

1985년 <창작과비평> 57호에 '현대 한국사회의 성적과 발전단계에 관한 연구'로 '한국사회구성체 논쟁'의 계기가 되고, 여기서 제기된 쟁점을 중심으로 민족경제의 이론화를 추구하여 '한국경제구조론'과 '민족경제론'등을 집필했다. 1987년 한길사에서 제정한 제2회 단재 학술상을 받았다.

박현채에게 '민족'이나 '민중' '민주주의'는 젊은 시절부터 의식의 중앙에 그리고 심장의 한가운데 자리잡은 생명체이고 가치관이었다. 일제 식민지와 동족상쟁, 이승만·박정희 시대의 반민족, 반민중, 반민주주의체제를 겪어오면서, 이런 가치는 더욱 육화되고 체화되었다. 그래서 민족이 곧 민중이고 민중이 바로 민주주의라는 삼위일체의 등식을 신념화하면서 이를 위한 경제(학) 논리를 전개하였다. 그의 수많은 경제논설에는 주제가 무엇이든 민족·민중·민주가 바닥에 깔렸다. 70~80년대에는 직접 '민중론'의 중심에 서기도 하였다.

책 이름에 '민중과 경제'라 붙힌 것도 이런 깊은 속내 때문이었다. 책의 첫 논설로 실린 '민중과 경제'는 '민족경제론'에 수록된 동명의 글과는 다소 다른 내용이다. 박현채는 4·19혁명으로부터 점차 치솟아오르는 기층민중의 역량에 때로는 감탄하고, 때로는 좌절하면서 역사에서 민중의 역할을 천착하였다.

오늘 날의 역사에서 민중은 수동적 민중, 피조자적 민중, 그리고 주체적 민중을 포괄해서 그 비중을 확대해 가고 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민중의 구성은 더욱 능동적인 것으로 되고 민중을 민중 스스로가 주체적 능동적인 것으로 구체화시키기 위해 계급이나 민족, 그리고 시민이나 인류라는 자기 한정(限定)을 일단 지나 계급의식, 민족의식, 시민의식, 인류의식 등을 매개로 해서 새로운 의식에 이르게 하고 있다.

이와 같은 민중의식은 그것을 담당하는 주체의 성격을 반영해서 가령 독립과 민족, 민주주의와 시민, 사회진보와 계급, 평화와 인류 등과 같은 요구와 결합되고 있으며 이와 같은 민주의식이 민족·시민·계급·인류 등을 단순한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자각적 집합으로서 스스로를 설정하려 할 때 정당, 노동조합, 농민조합 등과 기타의 자발적 결사가 조직되기에 이른다. 그리하여 조직 가운데서의 민중은 당연히 자기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려고 하고, 그들을 소외시키고 있는 세력에 저항하고 있는 것이다. (주석 1)
 왼쪽부터 <우상과 이성>. 이 책은 발간되자 마자 판매금지 되었고, 저자 리영희 교수는 구속되었다. <민족경제론>. 박현채 선생의 이 책도 발간되자마자 판매금지 되었다. <해방전후사의 인식>. 이 책은 10.26 직전에 발간되었으나 발간 즉시 판매금지 되었다. <제3세계와 종속이론>. 10.26 이후 계엄령 하에서 검열을 받고 정식 출간되었지만 전두환 제체 출범 후 판매금지 되었다.
ⓒ 김학민
사회학자들의 교과서적인 '민중론'이 아니라 이 땅의 토속적 민초들의 삶을 살아온 저자의 육화된 '민중론'이다. 그는 이 같은 인식에서 '민중과 경제'의 관계를 계속 탐구한다.

경제적 관점에서 민중은 역사적으로 직접적 생산자이면서도 노동생산의 결과, 즉 사회적으로 생산된 경제잉여의 정당한 참여에서 소외된 광범한 사람들을 주된 구성으로 한다. 따라서 역사에 있어서 민중은 사회적 생산력의 주된 담당자였으며 국부(國富)의 생산자였다. 그러나 그들은 한 사회의 구성상 피지배 상태에 처해 있었고, 따라서 노동의 결과에서 소외된 채 인간적 요구의 관철을 저해받아 온 사람들이다. (주석 2)

박현채는 초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책상물림이 아닌 생산노동자의 길을 걷고자 하였다. 하지만 그의 신체조건과 시대상황은 이를 허여하지 않았고, 그래서 민중을 내포하는 민족경제학자가 되었다. 생산자이면서도 생산된 경제잉여의 배분에서 소외된 민중의 아픔을 대변하고자 하는 많은 글을 썼다.
 1964년 8월 중앙정보부가 ‘6·3 한일회담 반대 시위’의 배후세력으로 구속시킨 ‘1차 인혁당 사건’ 피고인들이 재판을 받고 있다. 재판부는 도예종·박현채(앞줄 맨 오른쪽과 둘째), 박중기(뒷줄 왼쪽 둘째) 등 12명에게 반공법 위반으로 실형을 선고했다.
ⓒ 정부기록사진집
박현채는 이 논문에서 '근대 이전의 민중', '근대 이후의 민중', '우리 역사에 있어서의 경제와 민중'을 천착하면서 다음과 같이 결론을 맺는다.

한국에 있어서 민중의 상황은 그 역사적 위치에도 불구하고 주체적 능동적인 것으로 되고 있지 못하다. 그리고 이것은 국민경제의 상황에서 경제성장 결과에의 광범한 민중 소외로 사회적 불균형을 확대시키고 있다. 국민경제에 있어서 민중 소외는 근원적인 국민경제의 구조에서 이미 주어지고 있으나 우리의 경우 국민경제의 성장 유형은 이를 더욱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되고 있다.

오늘 우리나라 민중이 당면한 문제는 많다. 그것은 민주주의, 평화, 민족과 통일, 인권에 이르는 광범한 자기 과제에서 제시된다. 계급적 계층적 이해의 조정에서 공동의 자기요구를 정립하는 것은 오늘 우리가 직면한 상황에 대처하는 중요한 계기이다. (주석 3)

주석
1> 박현채, <민중과 경제>, 10~11쪽, 정우사, 1978.
2> 앞의 책, 11쪽.
3> 앞의 책, 25~26쪽.

덧붙이는 글 | [광복80주년명문100선]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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