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기세포 치료 해외 원정 시대 끝...빗장 풀린 K재생의료 [스페셜리포트]
2월 21일. 정부가 개정한 ‘첨단재생의료 및 첨단바이오의약품 안전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첨생법)’이 본격 시행된 날이다. 그동안 해외 원정을 통해서만 치료 기회를 모색했던 중증·희귀·난치 질환 환자들이 이제 국내에서 최첨단 줄기세포·면역세포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이번 법령 개정은 단순히 치료 방법의 변화뿐 아니라 재생의료 산업 전반에 걸친 혁신과 성장을 견인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로 평가받는다.
첨생법이 뭐길래
해외서 쓸 돈 국내로
670억달러(약 96조3300억원).
2030년 기준 글로벌 세포·유전자치료제(CGT) 시장 예상 규모(이밸류에이트파마 자료)다. 2021년 120억달러(약 17조2500억원) 대비 5배가량 많다. 그만큼 성장 기대감이 높다는 의미다.
법령 개정 전까지만 해도 중증·희귀·난치 질환 환자들은 치료 기회를 찾기 위해 해외로 눈을 돌려야 했다. 이때 생소한 해외 의료 시스템, 치료 비용 부담, 언어·문화 차이, 사후 관리 미흡 등 여러 문제점이 발생했다. 그러다 보니 우리 의료 환경이 뒤처지는 것도 아닌데 ‘꼭 이렇게 해야 하나?’라는 현장 불만이 많았다.
그러다 이번 개정안으로 국내 의료기관이 자생적으로 첨단재생의료 치료를 제공할 수 있게 됐다. 이는 단순한 제도 개선을 넘어 국민 건강에 대한 정부의 강한 의지와 미래 의료 패러다임 전환을 의미한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기존에는 임상연구 대상으로만 제한됐던 첨단재생의료 범위를 중증, 희귀·난치 질환 환자에 한해 실제 임상 시술로 확대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로써 연구 단계에 머물렀던 신기술이 실질적인 치료로 연결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임상시험 단계 치료제 사용도 허용됐다. 이렇게 되면 치료제 개발 초기 단계에서 국내 환자를 대상으로 신약, 치료법의 임상 적용이 한층 가속화될 수 있다. 이를 통해 신속한 데이터 축적과 치료 효능 평가가 가능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이돈행 넥스트바이오메디컬 대표(인하대 의대 교수)는 “이제까지 해외에서 실험적으로 진행되던 다양한 기술을 국내 임상 현장에서 자유롭게 검증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됐다”고 총평했다.
재생의료기관 지정, 운영 요건이 완화된 점도 특기할 만하다. 이제 기존 의료기관이 첨단재생의료를 보다 쉽게 도입할 수 있게 됐다. 소정의 시설, 장비, 인력 요건에 대한 기준이 합리화되고 의료기관이 자체적으로 첨단바이오 의약품 원료를 공급받아 치료를 실시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해외 원정 치료 때 논란이 됐던 이상반응 관리 등 불미스러운 상황을 방지할 수 있는 제도도 더불어 마련됐다. 국가 차원 재생의료 안전성 모니터링, 이상반응 조사 시스템 구축을 명문화하면서다.
각 의료기관과 관련 회사들은 이번 법령 개정에 발맞춰 첨단재생의료 시술을 위한 내부 시스템 강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치료 후 환자 모니터링 시스템의 정교화, 이상반응 발생 시 신속 대응을 위한 내부 프로세스 마련, 임상 데이터 관리 체계 구축 등이다. 박상준 메디컬아이피 대표는 “국내 의료계가 글로벌 기준을 충실히 반영해 안전하면서도 혁신적인 치료법을 제공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불확실성 풀고 임상시험 부담↓
국내 세포유전자치료제(CGT) 기업은 첨생법 개정안의 본격적인 시행을 환영하는 눈치다. 한승연 NH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과거보다 임상 연구 대상자 범위가 확대된 만큼 임상 연구에서 환자 모집이 좀 더 수월하고 빨라질 예정”이라면서 “임상 과정에서 치료 계획 승인을 받으면 치료용으로도 제공할 수 있게 돼 기업 입장에서는 매출이 늘어날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가장 눈에 띄는 업체는 국내 세포치료제 시장 선두 주자 ‘지씨셀’이다. 지씨셀의 주요 수익원은 간암 면역세포치료제 이뮨셀엘씨주다. 지씨셀은 최근 이뮨셀엘씨주의 적응증을 넓히는 데 집중하고 있는데, 첨생법 개정안이 ‘가뭄에 단비’가 될 전망이다. 임상 환자 모집이나 절차 단축 등으로 임상 부담을 덜었기 때문이다.
세포치료제 기반의 또 다른 파이프라인(신약 후보물질)도 수혜가 예상된다. 지씨셀은 ①NK(Natural Killer·자연 살해) 세포치료제와 ②CAR-NK 세포치료제 두 종류 파이프라인 연구개발을 이어오고 있다. NK 세포치료제는 인체 내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자발적 세포독성 활성 기능을 가진 NK 세포를 기반으로 한 치료제다. 골수나 제대혈, 배아 줄기세포 등에서 만들어지는 면역 세포의 일종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이미 우리 몸에 존재하는 만큼 안전성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고형암 치료에 용이하다.
CAR-NK 세포치료제는 NK 세포가 암세포에 잘 결합할 수 있도록 유전자를 조작한 치료제다. 기존 NK 세포치료제에 종양을 표적할 수 있는 CAR(Chimeric Antigen Receptor)을 장착했다고 보면 이해가 쉽다. 지씨셀은 2023년 12월 국내와 호주에서 임상 1상 임상시험계획서(IND) 승인을 받은 CAR-NK 세포치료제 GCC2003의 임상을 준비하고 있다.
NK 세포치료제 개발에 집중하고 있는 차바이오텍도 대표적인 수혜 예상 기업이다. 차바이오텍은 NK 세포치료제 파이프라인 ‘CHANK-101’에 기대를 걸고 있다.
CHANK-101은 간암과 재발성 교모세포종(rGBM)에 대해 기존 임상 1상을 마친 CBT-101의 제조 공정을 개선한 파이프라인이다. 차바이오텍은 CHANK-101의 간암 치료 허가를 준비 중이다. 상반기 내 간암 치료 계획을 신청할 예정이다.
줄기세포 치료제 다시 빛 볼까
파미셀·강스템·메디포스트
줄기세포 치료제 부문도 재차 주목받는다.
현재 국내에서 허가받은 줄기세포 치료제는 4개다. 2011년 파미셀의 ‘하티셀그램’을 시작으로 2012년 메디포스트의 ‘카티스템’, 안트로젠의 ‘큐피스템’, 2014년 코아스템켐온의 ‘뉴로나타-알’이다.
다만 10년 넘게 이렇다 할 후속 성과가 없는 상태다. 지난해 10월 메디포스트가 미숙아 기관지폐이형성증(BPD) 치료제 ‘뉴모스템’ 임상 2상에서 1차 유효성 지표의 통계적 유의성을 확보하지 못했고, 11월엔 코아스템켐온이 임상 3상 1차 지표 충족에 실패하면서 유효성 입증에 실패했다. 이들 기업은 첨생법 개정으로 재도약의 기회를 잡았다는 반응이다. 임상 제한이 풀리고 지원이 확대되면 연구가 활성화될 것이란 기대감이다.
최근 눈에 띄는 기업으로는 강스템바이오텍이 꼽힌다. 첨생법상 고위험 임상 연구에 속하는 제대혈 줄기세포 아토피치료제 ‘퓨어스템-에이디주’와 골관절염치료제 ‘오스카’를 난치 환자에게 치료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다.
독립리서치 밸류파인더의 이충헌 대표는 “기존 식약처 주관 임상 절차가 보통 5~7년가량 소요됐다면, 이번 첨생법 개정안 시행으로 2년 안에 임상 연구를 상용화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며 “강스템바이오텍은 난치 질환 치료제인 중증아토피(퓨어스템-에이디주)와 골관절염(OSCA)에 대한 수혜가 가능할 전망”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관련 업계는 골관염제치료제 오스카의 성과를 기대하는 눈치다. 일반적으로 골관염제치료제는 근본적 치료보다 질병을 늦추는 방식을 적용해왔다. 하지만 오스카는 통증의 원인 제거를 목표로 삼고 있다. 이와 관련, 임상 1상에서 유의미한 지표들도 내놨다.
강스템바이오텍은 오스카가 임상 1상에서 투약 후 6개월 이상 통증 개선, 연골 재생 효과를 봤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자기공명영상(MRI) 의학 평가에서 모든 용량군의 24주째 평균 MOCART(Magnetic resonance Observation of Cartilage Repair Tissue) 점수가 상승한 것으로 알려졌다. MOCART 점수는 골관절염치료제 효과 평가에 사용되는 지표다. MRI를 통해 연골 조직의 복원을 관찰하는 형태로 측정된다.
CGT 시장 확대로 배지 수요↑
첨생법 개정으로 CGT 시장이 커지면서 세포배양배지의 중요성도 조명된다. 세포배양배지는 CGT 등 바이오의약품 제조와 생산에 필요한 ‘세포’를 만들고 키우는 데 필요한 주요 소재다. 식물과 토양(흙) 관계를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토양은 식물이 잘 자랄 수 있도록 영양분을 공급한다. 이처럼 세포배양배지는 세포 증식을 돕기 위해 영양물질을 제공한다. 다만 세포배양배지 시장은 지금껏 해외 기업 전유물이었다. 국내 CGT 기업도 해외 세포배양배지를 쓸 정도다. 한국바이오협회에 따르면 글로벌 기업 5개사(머크, 싸이티바, 론자, 싸토리우스, 써모피셔사이언티픽)가 글로벌 배양배지 시장의 8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국내에선 엑셀세라퓨틱스가 세포배양 시장을 겨냥한 대표 기업이다. 세포배양배지는 크게 1세대 우태아혈청배지와 2세대 무혈청배지로 나뉜다. 소 태아 혈액을 이용하는 1세대는 활용도가 떨어진다. 각국 윤리 규제 강화로 동물 혈액 채취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이에 동물 유래 성분을 최소화한 2세대가 주로 쓰인다. 엑셀세라퓨틱스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 3세대 화학조성배지 시장에 주목한다. 화학조성배지는 재조합 단백질과 합성물 등으로 구성된다. 동물 유래 성분은 완전히 배제했다. 생산 체계만 갖추면 대량 수급도 가능해 상업성이 높다.
엑셀세라퓨틱스 3세대 화학조성배지 제품명은 ‘셀커(CellCor)’다. 엑셀세라퓨틱스는 올해를 셀커 매출 확대의 원년으로 삼았다. 지난해 상장 과정에서 밝힌 전망치는 2026년 100억원대 매출이다. 고객사 수요를 문의·반영해 측정한 수치다.
관련 업계 일각에선 첨생법 개정안 시행으로 배지 사업망 확대를 기대하고 있다. 첨생법 개정으로 CGT 임상과 상업화 절차가 활발해지면 이를 지원하는 세포배양배지의 수요도 자연스럽게 증가할 거라는 분석이다.
다만 장밋빛 전망을 두고 의구심도 나온다. 세포배양배지 시장은 바이오 분야 중 가장 보수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세포배양배지에 따라 제품 품질 규격이 달라져 임상 의약품 생산에 중대한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 이에 고객사는 ‘신뢰성’ ‘안정성’이 증명된 글로벌 기업과 손잡으려는 경향이 강하다. 또 공급사를 결정하면 잘 바꾸지 않는다는 점도 특징이다.
엑셀세라퓨틱스 입장에선 새로운 고객을 얼마나 확보하느냐가 관건인데, 영업 자체가 쉽지는 않다. 지난해 엑셀세라퓨틱스 매출은 19억원에 그쳤다.
비용↓ 접근성↑ 데이터 최대한 쌓아야
첨생법 개정안이 본격 시행되면서 국내 바이오·제약 업계의 기대감이 커지고 있지만 개정안이 성공적으로 안착하려면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치료비 부담 완화, 품질 관리 체계 강화, 전문 인력 양성, 규제와 진흥 간 균형 등이 주요 과제로 꼽힌다.
우선 환자 입장에서는 부담이 큰 고액 치료비가 가장 큰 걸림돌이다. 첨단재생의료는 비급여 항목으로 분류돼 있어 환자가 치료비 전액을 부담해야 한다. 의료계에 따르면 ‘줄기세포 원정
치료’를 떠나는 한국인은 한 해 약 3만명으로 추산된다. 1회 비용은 600만~800만원 선. 단순 계산으로도 연간 2000억원 가까운 돈이 일본에서 지출되는 셈이다. 그렇다고 치료비 산정 방식을 지나치게 규제하면 기업 입장에서는 연구개발(R&D)에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첨단재생치료 대중화를 위해 정부의 ‘조건부 건강보험 적용’ 검토, 기업의 생산 단가 절감 노력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양은영 차바이오그룹 글로벌BD본부장은 “예를 들어 임상 2상 또는 3상 단계에서 유효성과 안정성이 입증된 치료제에 대해 건강보험을 적용하면 환자의 치료 접근성을 높이는 동시에, 신약·기술개발 기업도 안정적인 수요와 시장을 확보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바이오 업계의 고질적인 인력난도 첨단재생의료 기술 개발과 상용화가 속도를 내지 못하게 하는 요인이다. 첨단재생의료는 치료제 개발부터 안정적인 시술까지 고도의 기술이 집약된 분야인 만큼 숙련된 전문 인력이 필수다. 하지만 한국은 그간 규제에 가로막힌 탓에 해외나 대기업으로 이탈하는 연구 인력이 적잖았다. 첨생법 개정안이 시행돼도 기술 개발 자체가 더딜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한 바이오 업계 관계자는 “치료제 개발 전문 인력을 채용하는 데만 수개월에서 1년 넘게 걸리는 기업이 적잖다”며 “바이오 전문 인력을 양성할 체계적인 프로그램을 정부가 주도해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구체적으로는 산학 협력 프로그램을 비롯한 해외 전문가 초빙, 글로벌 기업과 협력을 통한 기술 역량 강화 등이 언급됐다.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한편, 기초연구가 중개연구(기초연구 성과가 제품으로 이어지는 단계)로, 중개연구가 임상시험으로, 최종적으로는 첨단바이오 의약품 개발까지 순조롭게 이어지도록 제도적 체계를 마련해달라는 목소리도 나왔다.
첨단재생의료 산업이 커지려면 세포와 유전자전달체 등 제조와 관련된 혁신 기술을 확보하고 생산 비용을 낮추는 게 급선무인데 제약·바이오 업계에서는 임상을 거쳐 제품화시키는 과정이 ‘데스밸리(Death Valley·죽음의 계곡)’라고 불릴 정도로 넘기 힘들다는 것.
특히 중소 바이오 기업으로서는 품질 인증 절차를 위한 비용이 100억원가량 소요되는 만큼 재정 압박이 큰 게 현실이다. 정부가 중소기업 지원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품질 인증 절차를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지원해달라는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박소라 재생의료진흥재단 원장은 “첨단재생의료 분야에서 원천 기술을 확보하지 못하면 세포·유전자치료제 생산 비용 대부분을 외국에 지불하게 될 것”이라며 “세포치료제 제조에 필요한 배지, 배양기, 자동화기기, 운송기기, 바이러스 전달체 등 여러 기술이 신속히 국산화되도록 R&D 투자 확대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앞으로 임상·치료 대상 기준을 보다 완화해야 한다는 주문도 존재한다. 첨생법 개정으로 나아지긴 했지만 세포·유전자 치료제는 항체의약품 등과 비교하면 임상·치료 기준이 여전히 까다롭고 치료 대상도 중대·희귀·난치 질환자에 한정돼 있다는 것.
한승연 애널리스트는 “첨단재생의료는 국내에서도 이미 20여년 전부터 연구돼온 분야고 상당히 높은 기술력을 보유한 기업이 있다”며 “안전성을 철저히 검증하되 임상·치료 기준을 조금씩 더 풀면서 기술력을 보유한 국내 기업이 경험을 쌓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당장 어떤 질병·약품·임상이 첨생법상에서 인정이 될지 보건복지부에서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달라는 제언도 새겨들을 만하다.
투자와 관련해서도 너무 ‘장밋빛 전망’에 기대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첨생법 수혜에도 불구하고 연구개발 불확실성이 있어서다. 당장 연구개발 비용 확보가 쉽지 않다. 차바이오텍은 최근 2500억원 규모 유상증자 계획을 밝히며 근본적인 자금 조달 목적은 신약 개발이라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2027년까지 1000억원을 연구개발에 쓴다는 방침이다. 신주 상장 예정일은 당초 4월 29일에서 5월 14일로 지연됐다.
법제화해놓고 ‘자유 진료’ 허용
또 현재 일본에서는 약 1700개 이상의 병·의원에서 재생의료 치료가 진행되고 있다. 반면 한국은 2019년 ‘첨생법’ 제정 이후 엄격한 규제 속 기업이나 대형 병원 중심의 연구 인프라 구축이 이뤄져왔다.
2010년만 해도 일본에는 첨단재생의료 관련 규제가 없었다. 후생노동성이 승인하지 않은 치료나 의약품이라도 환자와 의료기관 간 동의를 거치면 의료기관이 자유롭게 진료 내용과 비용을 결정하는 ‘자유 진료’가 가능했다.
그러다 원정 치료차 일본을 방문했던 환자가 줄기세포 투여 후 폐동맥 색전증으로 사망하는 일이 발생하자 무분별한 자유 시술의 실태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이에 일본 후생노동성은 2013년 임상 연구와 자유 진료를 관리하는 목적의 ‘재생의료안전법’을 제정해 2015년 11월부터 시행에 나섰다. 줄기세포를 제조·배양하는 곳은 관련 ‘제조허가’를, 시술 병원은 ‘치료허가’를 받을 경우 줄기세포 시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식이다. 자유 진료를 여전히 허용하면서도 이를 법의 테두리 안으로 들여와 연구·치료 신고 체계 등을 마련해 관리하는 것이다.
또 국내에서는 줄기세포를 의약품으로 허가를 받고 사용하려면 수년의 임상 과정을 거쳐야 하지만 일본의 재생의료법은 시급한 질환 치료를 위해 안전장치가 마련된 상황에서 보다 빨리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 특징이다. 치료제가 출시되기까지 임상 1·2·3상의 단계를 거치던 것을 임상 2상 시험 후에 최대 7년간 시판을 허용하면서 임상 3상을 진행하는 조건부 승인 제도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대신 5~7년 후에도 유효성이 검증되지 않으면 시장에서 퇴출하는 식이다.
2022년부터는 재생의료 연구개발과 제조 기반 등에 2000억원을 투자하는 ‘재생·세포의료·유전자치료 프로젝트’를 추진하며 국가 차원의 지원이 활성화됐다. 지난해 6월에는 재생의료안전법 내 범주 외의 ‘생체 내(In vivo) 단계’의 유전자 치료도 정부당국이 심의 사항에 대해 현장점검할 수 있도록 개정, 심의 공정성과 안전성을 보완 중이다.
“세포 치료, 개원의에도 기회 줘야”
Q. 첨생법 개정으로 줄기세포 치료 시장에 큰 변화가 예상된다.
A. 국내 세포유전자치료제(CGT) 시장이 활성화될 가능성이 커졌다. 특히 연구·판매 과정이 유연해지면서 국내 CGT 기업들 신약 개발 속도가 빨라지고, 해외 의존도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항노화나 미용 목적 환자군이 배제된 점, 연구 목적과 설계에 따라 허가된 질환이라도 특정 정의에 의해 제외되는 사례가 발생할 가능성은 여전히 한계로 지적된다. 대형 병원이나 제약사가 아닌 개원의들이 세포 치료에 참여하기 위한 진입 장벽이 지나치게 높다는 점도 개선할 점이다.
Q. 재생의료가 국민 건강에 직결되는 만큼, 규제를 엄격하게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A. 첨단재생의료 분야는 환자 생명과 직결되는 고위험 치료법을 포함해 적절한 규제와 안전 관리는 필수다. 하지만 지나치게 엄격한 규제는 산업 발전을 저해하고 환자의 치료 기회를 제한할 우려가 있다. 특히 자가세포 치료 중 혈소판풍부혈장(PRP)이나 지방유래줄기세포(SVF)와 같은 중·저위험 치료법은 개원의들이 충분한 전문성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제도를 보다 유연하게 적용할 필요가 있다. 안전성과 혁신성 간의 균형을 맞추면서 규제를 점진적으로 완화하는 방향으로 접근해야 한다.
Q. 줄기세포 치료의 비용 부담 완화와 대중화를 위한 정책적 지원 방향은.
A. 우선 고위험 세포치료제는 대기업 위주로만 진행되는 것보다 좀 더 간소화된 적정 배양 시설을 완비한 개원 의원에서 만들어 임상에 곧장 사용하는 것이 더 안전하고 효율적일 것이다. 개원의들이 합리적인 기준을 갖춘 세포 추출·배양 시설을 운영하고 관련 교육을 이수하면 대기업보다 낮은 비용으로 양질의 세포 치료제를 공급할 수 있다. 정부 차원에서 이 부분에 대한 정책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한국도 일본처럼, 개원의가 환자 상태에 따라 자율적으로 세포 치료를 시행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면 한국 재생의료 시장의 경쟁력이 더욱 강화될 것이다.
[박수호·정다운·최창원·조동현 기자 김연수 인턴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99호 (2025.03.05~2025.03.1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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