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요토미 히데요시 무덤 앞에서 이순신 사진을 띄웠습니다
제106주년 삼일절을 앞두고 지난 2월 20일부터 23일까지 3박 4일 일정으로 일본 교토를 찾았다. 교토에는 한국 독립운동과 관련된 유적이 많지는 않은 편이다. 그러나 일본의 침략전쟁과 그로 인해 고통 받아야만 했던 한국인들의 기억을 상기시키는 장소들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삼일절을 맞아 우리의 아픈 역사를 다시 한번 환기하는 차원에서 해당 장소들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기자말>
[김경준 기자]
교토에서의 이튿날 아침이 밝았다. 오늘 가야할 곳은 숙소에서 도보로 30분 거리에 위치한 '도요쿠니묘(豊國廟)'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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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요쿠니묘 입구 (2025.2.21) |
| ⓒ 김경준 |
도요쿠니묘는 임진왜란을 일으킨 전범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묘소이다.
1598년 끝내 천하 통일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사망한 히데요시의 유해는 교토 히가시야마(東山) 36개 봉우리 중 하나인 아미타봉(阿弥陀ヶ峰)에 조성되었는데, 이는 히데요시 생전의 유언에 따른 것이라 한다. 도요쿠니묘로 가는 산중턱에는 그를 신(神)으로 모시는 도요쿠니사(豊國社)가 조성됐다.
그러나 새로운 권력자 도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에 의해 히데요시 가문이 멸문당하면서 신사는 폐사되고 히데요시의 무덤 역시 방치됐다.
오랜 시간 외면당했던 도요쿠니묘가 다시 부활한 것은 메이지 유신 이후였다. 메이지 덴노의 명령에 의해 신사가 재건되고, 1898년(메이지 31) 히데요시 사망 300주년을 맞아 현재의 모습으로 재정비하기에 이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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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사카성에 세워져 있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상' (2018.7.24) |
| ⓒ 유지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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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무덤, 도요쿠니묘 (2025.2.21) |
| ⓒ 김경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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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년 여름 도요쿠니 신사에서 이순신 장군의 수결(싸인)이 새겨진 손수건을 들고 (2018.7.23) |
| ⓒ 김경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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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요쿠니묘 입장권(등배권) |
| ⓒ 김경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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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요쿠니묘로 올라가는 계단 |
| ⓒ 김경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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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요쿠니묘 (2025.2.21) |
| ⓒ 김경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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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요쿠니묘에서 내려다 본 교토 시내 전경. 오른쪽에 기요미즈데라 등 주요 관광지들이 보인다. (2025.2.21) |
| ⓒ 김경준 |
露と落ち 이슬로 와서
露と消えにし 이슬로 사라지니
我が身かな 나의 몸인가
浪速のことは 나니와(오사카)의 영화는
夢のまた夢 꿈속의 꿈이로다
'천하인'을 꿈꾸며 무모한 침략 전쟁을 벌였던 도요토미 히데요시. 그러나 그는 끝내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이슬로 사라졌다. 그 자신도 죽을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천하통일의 꿈이 헛된 욕망이란 걸 깨달았던 걸까. 아무도 찾지 않는 쓸쓸한 무덤이, 침략자의 말로를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문득 재밌는 생각이 떠올랐다. 히데요시가 가장 무서워했던 인물이 누구일까. 바로 충무공 이순신 장군 아닌가. 그분을 잠시 소환해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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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요쿠니묘 앞에서 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 사진을 띄우다. |
| ⓒ 김경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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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요쿠니묘에서 '대한독립 태극기'를 들다 (2025.2.21) |
| ⓒ 김경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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