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장산에 의문의 바위 배열이…“전문가가 현장 찾아 제대로 된 검증 해달라”

김화영 기자 2025. 3. 3.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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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옥숙표 씨(79)가 부산 해운대구 장산의 바위를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다. 옥 씨는 “누군가 의도적으로 세워놓은 듯한 바위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돼 있는 만큼 역사적 가치를 확인하는 전문가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화영 기자 run@donga.com

“프랑스 카르나크 열석이나 영국 스톤헨지에 버금가는 선사시대 흔적일 수 있어요.”

지난달 28일 오전 부산 해운대구 장산 해발 130m 지점. 등산로를 벗어나 각종 나무를 헤집고 20분 동안 걸은 뒤 마주한 수십 개의 바위를 가리키며 옥숙표 씨(79)는 이렇게 말했다. 성인 가슴 높이의 바위들은 누군가 인위적으로 세워놓은 것처럼 일정한 간격으로 놓여 있었다. 마치 묘지 앞 비석처럼 면이 평평했으나 표면에는 글자나 그림 같은 것이 새겨져 있지는 않았다.

부산 해운대구 장산 해발 130m 지점에서 발견된 바위와 돌들의 모습. 높이 20~30㎝의 돌들이 땅에 촘촘히 박혔고 그 양 끝에는 약 1.2m 높이의 사각기둥 형태가 바위가 서 있다. 김화영 기자 run@donga.com
조금 더 이동하자 높이가 20~30㎝ 되는 돌들이 촘촘히 땅에 박혀 있었다. 옆으로 늘어선 이 돌들의 배열은 약 7m 정도 이어졌다. 그 양 끝에는 약 1.2m 높이의 사각기둥 형태의 바위가 서 있었다. 옥 씨는 “긴 돌계단 끝에 바위를 세워놓은 형태의 이와 같은 배열이 위아래 4, 5m 간격을 두고 조성돼 있다. 이처럼 돌과 바위가 조합을 이룬 배열을 이 일대에서 120개 넘게 찾았다”고 말했다.

기자는 이날 옥 씨와 함께 3시간 동안 일대를 돌았는데, 이 외에도 다양한 형태의 바위를 확인할 수 있었다. 성인 키보다 큰 바위도 곳곳에 있었는데, 어김없이 한쪽 면은 누군가 칼로 자른 듯 반듯했다. 세월이 아주 많이 흘렀다는 것을 가늠하게 하는 짙은 녹색의 이끼가 바위에 잔뜩 끼어있었고, 바위를 손가락으로 세게 누르자 잘게 가루로 부서졌다.

부산 해운대구 장산 중턱에서 발견된 의문의 바위 배열. 면이 평평한 사각기둥 형태의 바위가 누군가 세워놓은 것처럼 배치됐다. 김화영 기자 run@donga.com
옥 씨는 “수년 동안 각종 문헌 자료를 찾아봤으나 혼자서는 장산에 왜 이런 바위들의 배열이 있는지 의문을 풀 수 없었다”며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저명한 고고학자와 석재 전문가가 현장 조사와 연구를 해주면 좋겠다. 부산시에 여러 차례 조사를 요청했으나 제대로 응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조심스레 선사시대 유적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옥 씨는 “상형문자조차 쓰지 않았던 고대인의 삶터였거나 고인돌과 같은 장례 공간이 아니었겠느냐”고 말했다. 옥 씨는 주변에 80층 넘는 초고층 건물이 들어서 있는 만큼 언젠가 이곳도 개발 광풍에 휩싸여 역사적 가치가 클지 모르는 이 일대가 훼손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었다.

53사단 군부대 근처에 있는 이곳은 등산로와도 떨어져 있어 일반인이 쉽게 찾을 수 없는 곳이다. 옥 씨는 36년 동안 다녔던 직장에서 퇴직하고 약 15년 전부터 취미로 집 근처인 장산 구석구석을 누비기 시작했다. 그러다 일대 환경을 보존하겠다는 뜻을 세워 ‘장산 반딧불이 보존동아리’에서 습지보존위원장을 맡아 부산시에 항공방제 중단을 촉구하는 활동을 펼쳐왔다. 실제 항공방제가 중단되자 더 많은 반딧불이가 찾아오고 청정지역에만 사는 희귀 조개류인 ‘산골조개’ 등이 장산 습지에서 발견됐다는 것이 옥 씨의 설명이다.

부산 해운대구 장산 중턱에서 발견된 의문의 바위 배열. 면이 평평한 사각기둥 형태의 바위가 누군가 세워놓은 것처럼 배치됐다. 김화영 기자 run@donga.com
이런 그가 장산에서 의문의 바위 배열을 처음 발견한 것은 2017년경이다. 처음엔 군사 훈련 편의를 위해 만든 계단 정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고 한다. 하지만 돌계단 끝마다 큰 바위가 세워진 점을 의문스럽게 여겨 2019년부터는 추운 겨울과 장마철을 제외하고는 거의 매일 장산에 올랐다. 새로운 배열이 발견되면 사진을 찍고 근처 나무에 빨간색 리본 등을 묶어 위치를 표시했다.

옥 씨는 장산의 ‘이산(李山)표석’을 전수 조사했던 인물로 지역에서 유명하다. 이산 표석은 장산 일대가 조선 이 씨 왕실의 소유임을 나타내려고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사각기둥 형태의 화강암에 ‘李山’이라는 한자가 음각돼 있다. 향토사학자가 이 일대에서 17개를 최초 발견했으며, 옥 씨는 최근까지 150여 개를 더 발견했다.

전문가들은 세밀한 현장 조사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현장 사진을 확인한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은 “사각기둥 형태의 바위는 과거 성벽을 축조할 때 성벽이 무너지지 않도록 흙과 돌 등을 지탱하던 ‘석정(돌못)’으로 추정된다. 정확한 연대는 조사가 필요하지만 삼국시대에서 조선 전기 사이에 쓰였을 가능성이 높다”며 “기회가 된다면 현장 확인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40년 넘게 석공으로 활동하며 국내 문화재 보수 등에 참여했던 김종승 씨(67)도 “자연석이 아니라 누군가 도구를 이용해 바위를 가공한 것으로 보이며 수천 년이 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김화영 기자 r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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