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 '10대 부호 장승원 처단사건'의 전말
[충북인뉴스 김남균]
오는 3월 1일 열리는 '광복 80주년, 제106주년 3.1절 기념 국가귀속 상당산성 껴안기'대회에 독립운동가 후손이 500명 분의 '약밥'을 가지고 와 '먹거리 나눔' 행사를 펼친다.
나눔행사를 펼치는 이들은 다름아닌 애국지사 손기찬(孫基瓚, 1986~1979)의 후손 손한준·한두·한수 형제다.
애국지사 손기찬 선생은 1917년 대한광복회 소속으로 '친일부호' 장승원을 처단하는 일에 참여해 옥고를 치렀다. 또 신흥무관학교 등의 군자금을 지원하는 과정에 참여하며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가산을 소진했다. 전 재산을 소진한 손기찬 선생은 경북 상주시 화북면 속리산 깊은 산자락에 초라한 농막 한 채에 의지해 가난에 시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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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애국지사 손기찬 (孫基瓚. 1986~1979)선생. 1917년 대한광복회 회원으로 활동하며 '친일부호 장승원 처단'에 참여했다. |
| ⓒ 충북인뉴스 |

1919년 조선총독부가 애국지사 손기찬(孫基瓚, 1986~1979) 선생을 재판에 회부하면서 적용한 죄명이다.
손기찬 선생은 1917년 11월 10일 '대한광복단'이 친일 부호 장승원을 처단한 이른바 '장승원암살사건(張承遠暗殺事件)'에 참여한 인물이다.
이때 살해된 장승원은 이승만 정부의 초대 외무부장관과 제3대 국무총리를 지낸 장택상(1893~1969)의 아버지다.
손기찬 선생은 당시 대한광복회 총사령 박상진(朴尙鎭)이 채기중(蔡基中) ·강순필(姜順弼)·유창순(庾昌淳) 등을 시켜 장승원의 암살을 결행할 때 사용한 권총 2자루의 운반을 맡았다.
앞서 광복회는 무장독립투쟁의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포고문을 당시 조선의 자산가에 전달했다.
"우리 2천만 민족은 노예로 변하였다. 섬나라 오랑캐의 악정, 폭행이 날로 더하고 달로 늘어나 이를 생각하면 피눈문이 넘쳐나며 조국을 회복해야 한다는 생각믈 금할 수 없다. (중략) 각 자산가는 미리 저축하여 본회의 요구에 응해 출금해야 한다. (중략). 본회 회원은 각지에 산재하여 각인의 행동을 감시하므로 본회의 명령을 지켜 지정배당금을 준비해 두고 본회 불시의 청구를 기다려야 한다." - 출처 : 대한광복회 포고문
거사 후에는 장승원의 자택에 다음과 같은 경고문구를 붙여 놨다.
"외치는 바는 광복이다. 하늘과 사람이 도리에 일치된다. 너의 큰 죄를 꾸짓고 우리 동포에게 경고한다. 꾸짓고 경고하는 자." - 광복회원
손기찬 선생이 활동했던 '대한광복회'는 친일부호 처단, 무기구입, 독립군 양성을 주요목표로 삼았다. 친일부호로부터 마련한 돈으로 만주에 있던 신흥무관학교 등 독립군 간부를 양하기 위한 군자금으로 사용했다.
대한광복회가 암살한 친일부호 장승원은 대한광복회의 군자금 모금에 협조하지 않았다. 그는 당시 조선의 10대 부호로 꼽혔다. 여러 친일행각과 소작인에 대한 착취가 일본인보다도 심한 악질적인 지주로 꼽혔다.
1918년 1월 14일 대한광복단 소속 임봉주, 김경태 애국지사는 충남 아산군 도고면장 박용하에게 대한광복단이 작성한 '사형(처단) 선고문'을 읽게 한뒤 총살했다.
이후 이종국(1909년 이토히로부미 추도회 개최)의 밀고로 채기중 지사를 비롯해 손기찬 선생등은 결국 일제에 붙잡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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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애국지사 손기찬 선생의 손자 손한준(63)씨. 오는 3월 1일 상당산성에서 진행되는 기념행사장에서 시민들에게 '약밥' 500인분을 나누어 줄 예정이다. |
| ⓒ 충북인뉴스 |
손 씨는 "할아버지는 제가 고등학교 2학년때 돌아가셨다. 일제 치하에서 고문을 당해 무릎을 크게 다치셨다. 제 기억 속 할아버지는 거동을 하지 못한 채 병석에 누워 계신 모습이 많았다. 걸어 다니신걸 본 기억이 가물가물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저와 제 동생이 번갈아 가며 할아버지 대소변을 받아냈다"고 전했다.
손씨에 따르면, 손기찬 선생은 독립운동 군자금으로 사용하는 과정에서 선대로부터 상당한 재산을 물려받 전 재산을 소진했다. 그는 "증조부가 경북 칠곡군 왜관읍에 큰 부자셨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상당한 재산을 물려 받았지만, 독립운동을 하면서 전답을 팔아 자금을 조달했다"며 "만주까지 가서 권총과 같은 무기를 구입했다"고 전했다.
그는 "할아버지가 재판을 받고 감옥으로부터 풀려난 뒤, 거주지를 경북 칠곡군에서 경상북도 상주시 화북면 속리산 문장대 산골 아래로 옮겼다"며 "일제의 감시를 피해, 산중 오지로 오신 것 같다"고 밝혔다.
이어 "가산을 다 소진했기 때문에, 상주시 화북면 지역에서의 생활은 매우 궁핍했다. 집이라고는 초라한 농막 한 채 였다"며 "큰아버지와 아버지가 배고픔을 호소하니, 할아버지가 남의 밭 콩을 몰래 훑어다가 구워주셨다고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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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전 국립현충원 소재 애국지사 손기찬 선생의 묘소 |
| ⓒ 충북인뉴스 |
손 씨는 "친일 청산은 너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시작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거창한 말인지 모르겠지만 역사를 잃은 민족은 장래가 없다고 한다"며 "해방 이후에 반민족행위자처벌법이 만들어졌을 때 그때 물러서지 말았어야 한다. 그때 했으면 깔끔하게 청산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충북인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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