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구용 일갈 "윤석열에 계몽됐다? 계시받았다는 뜻"
[소중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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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17일 서울대 학생회관 앞에서 열린 윤석열 탄핵 반대 집회에서 한 참가자가 '윤석열 계몽령'이라 적힌 깃발을 들고 있다. |
| ⓒ 권우성 |
박구용 전남대 철학과 교수는 2025년 난데없이 '계몽'이란 단어가 난무하는 상황을 두고 이같이 일갈했다. 계엄령을 "계몽령"으로 부르고 급기야 "나는 계몽됐다"는 윤석열 측 변호인의 고백에, 박 교수는 "지금 계몽을 말하는 이들의 가장 큰 문제는 개념을 오염시키고 있다는 것"이라며 "이는 현실을 오염시키는 것과 똑같다"고 지적했다.
계몽은 신의 계시보다 인간 이성을 세우기 위해 17~18세기 서양에서 태동·발전한 개념이다. 나아가 전체주의, 전쟁 등 20세기 인류 비극의 원인으로 꼽히는 반성의 단어이기도 하다.
12.3 내란 사태를 일으킨 윤석열과 이를 추종하는 세력은 계몽보단 계시와 어울리면서도, 한편으론 폭력으로 나아간 계몽과 어울리기도 하다. 박 교수는 윤석열을 두고 "20세기 제국주의자들이 오염시킨 계몽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계몽의 역사와 2025년 대한민국에서의 계몽을 주제로 26일 오전 박 교수와 전화로 인터뷰했다. 아래 일문일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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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석열 대통령 대리인단의 김계리 변호사가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최종 변론에서 종합 변론을 하고 있다. 김 변호사는 이 자리에서 "나는 계몽됐습니다"라고 말했다. |
| ⓒ 헌법재판소 제공 |
"지금 계몽을 말하는 이들의 가장 큰 문제는 개념을 오염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현실을 오염시키는 것과 똑같다."
- 계몽은 역사적·철학적으로 어떻게 태동한 개념인가.
"서양의 기독교는 계시 종교다. 계시는 가려진 것을 벗긴다는 뜻이고 이는 타인에 의해 내가 진실을 알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타인은 신이다. 신이 나를 불러서 그것에 응답하는 게 기독교의 기본 개념이다. 이는 유대교, 이슬람교도 마찬가지다. 신에 의한 부름, 그 명령에 따라 사는 것이 그들에겐 올바른 삶이다. 그러니 중요한 행사, 예를 들어 태어날 때, 결혼할 때, 죽을 때, 중요한 서약을 할 때 종교가 함께한다.
그런데 17~18세기 주로 프랑스·독일에서 '타자에 의한 깨우침'이 아닌 '스스로 깨달음'이란 생각이 공유됐다. 내 이성으로 내가 깨닫는다는 것, 바로 계몽이다. 공부를 많이 하는 것은 계몽과 상관이 없다. 스스로 사고하고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독일에서 '계몽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1783년 독일 베를린에서 '성직자가 결혼식을 주재해야 하는지'로 시작한 논쟁이다. 계몽주의적 입장을 취한 이들은 '결혼은 세속적인 것이니 세속적인 사람들의 힘으로 치러야 한다. 성직자가 관여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반대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계몽이 무엇이기에 세상을 엉망으로 만드느냐'라고 주장했다.
1784년 칸트(I. Kant)가 이 논쟁에 대해 중요한 글을 썼다. <계몽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변>이 그것인데, 칸트는 계몽을 '미성년 상태(Unmündigkeit)'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밝혔다. 여기서 말하는 미성년은 '멍청한', '부족한' 이런 의미가 아니다. '다른 이의 도움 없이는 스스로 자신의 지성을 사용할 수 없는 사람'을 말한다. 핵심은 '지성'이 아니고 '다른 이의 도움 없이'라는 부분이다. 즉 '자신의 힘으로 지성을 사용하는 것'이 계몽이다. 어제(25일) 김계리 변호사가 헌법재판소에서 '나는 계몽됐다'고 말했는데 이는 정확히 말하면 '나는 계시 받았습니다'의 잘못된 표현이다."
- 17~19세기 계몽주의가 태동·발전한 시기의 시대적 배경은 어땠나.
"계몽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자신의 힘으로 지성을 사용하는 것이다. 탈주술, 탈신화, 탈미신이 그것이다. 종교적으로는 계시 종교에서 합리적 이성 종교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계시 자체를 무시하지 않지만, 이성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종교는 과학과의 대립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생각이었다. 종교도 과학과 하나가 돼야 한다고 본 것인데, 이들은 종교개혁을 더 급진적으로 추진한 세력이기도 하다.
계몽주의의 가장 큰 힘은 과학의 힘으로 인간이 이 세상의 주인이 된다는 것이다. 과학에 기초해 인간이 주체가 된다는 말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인간중심주의, 과학주의와도 연결된다. 그런데 그것이 오히려 20세기 불행의 원인이었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프랑크푸르트학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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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는 지난 1일 부산 부산역 앞 '세이브코리아' 주최의 집회에 나서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 계엄 사태를 두고 '계엄령'이 아닌 "계몽령"이라고 주장했다. |
| ⓒ 유튜브 '꽃보다전한길' |
"20세기 대부분 지성들은 2차 세계대전의 불행이 계몽주의와 연관돼 있다고 봤다. 이에 계몽주의를 해체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고, 계몽을 끝없이 계몽해야 한다(계몽의 폐기가 아닌 끝없는 비판)는 주장이 있었다. 전자는 포스트구조주의, 후자는 프랑크푸르트학파다. 다만 (다른 의견의) 둘 모두 공유하는 것이 있다. 계몽은 그 자체로 신화라는 점이다.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스스로 설 수 있는 인간은 없기 때문이다. 프랑크푸르트학파는 우리는 하나의 고정된 주체가 아니고 상호 주관적 주체라고 설명했다."
- 프랑크푸르트학파의 <계몽의 변증법> <도구적 이성 비판> 등은 계몽이 전체주의를 낳았다고 비판한다.
"그렇다. 계몽이 20세기 폭력의 주요 근거가 됐다는 것이다. (서구는) 칸트식으로 '내가 스스로 내 지성을 사용한다'고 하면서, '그렇지 못하다고 생각한 사람들'을 공격하는 무기로서 계몽을 썼다. 계몽이 제3세계에서 서구화, 과학 등의 이름으로 폭력적 제국주의 이데올로기가 돼버렸다. 기독교, 자유무역, 계몽주의가 묶여 인류를 고통으로 몰아갔다."
- "나는 계몽됐다"는 말은 21세기적 사고가 아니라고 봐야겠다.
"역주행이다. 계몽도 아니고 계시다. 계시를 계몽으로 바꿔 쓰고 있는 모습이다. 계몽은 환상이고 위험하다는 것이 21세기의 대체적인 사조다. 물론 이것은 학문·문화 담론에서의 사조고 현실에서 계몽이 꼭 부정돼야 하는 것은 아니다. 어쨌든 계몽이 몰고 온 위험성과 한계를 논의해 온 것이 20세기 이후의 담론이다."
- 역설적으로 윤석열은 계몽과 어울리는 사람일 수도 있겠다.
"그야말로 20세기 제국주의자들이 오염시킨 계몽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계시에 가까운 계몽을 가지고 강한 폭력을 사용하고 있다."
- 대통령까지 한 사람의 변호인단이나 공당의 주요 정치인들마저 내란 사태를 두고 "계몽"을 말하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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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구용 전남대 철학과 교수. (자료사진) |
| ⓒ 강미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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