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남침' 겪고도…'러 침략' 지운 우크라 결의안 손 들어준 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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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주도 결의안 결국 채택
이날 안보리는 미국이 제안한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결의안에 표결을 실시해 찬성 10표, 반대 0표, 기권 5표로 가결 처리했다. 안보리가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결의를 채택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하자 미국이 주도하는 결의안에 중·러가 손을 들어주는 이례적 상황이 연출됐다.
이는 미국이 결의안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에 대해 책임을 묻는 대목을 뺐기 때문에 가능했다. 러시아와 직접 협상을 통해 조기 종전을 추진하는 트럼프 행정부가 사실상 러시아의 입장을 십분 고려해준 결과다.
유럽 국가들은 반발했다. 영국과 프랑스 등 유럽 이사국들은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독립, 영토보전을 지지한다'는 내용이 추가된 수정안을 제출했다. 한국도 이에 찬성했지만, 상임이사국인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로 부결됐다.
결국 러시아의 침략을 묵인하는 내용의 미국이 제출한 결의안이 최종 채택되자 영국 대표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동일 선상에서 취급해서는 안 된다"고 반발했다. 프랑스 대표도 "침략당한 국가(우크라이나)가 항복을 하는 것과 평화가 동일시돼선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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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남침' 공인했던 유엔 안보리
하지만 정부가 영국이나 프랑스처럼 기권한 게 아니라 찬성한 걸 두고 향후 한국의 외교적 행동반경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한국은 북한의 남침이라는 비슷한 아픔을 겪은 적이 있다는 점에서 더 그렇다.
실제 1950년 6·25전쟁 발발 직후 유엔 안보리는 결의 82호, 83호, 84호 등을 통해 북한의 무력 공격을 "평화에 대한 파괴 행위"로 규정했다. 동시에 북한을 향한 즉각적인 적대 행위 중단과 북한군의 38선 이북 철수를 촉구했다. 당시 유엔 안보리를 비롯한 국제사회가 6·25 전쟁이 북한의 불법적 '남침'으로 발발했다는 걸 공인하지 않았다면 유엔군 조직, 다국적 군사 개입 등 국제적 지원이 이어지기는 어려웠을 수 있다.
지난해 한국이 11년 만에 재진입한 안보리에서 보다 책임 있는 목소리를 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안보리 결의안이 가결되려면 9표가 필요한데, 이번 결의안이 10표 찬성으로 통과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한국을 비롯한 각 이사국은 캐스팅보트 역할을 할 수도 있었다.
또한 한국은 북한의 대러 무기 지원과 파병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의 준 당사국이 됐다. 러시아의 침략 전쟁이 한국에 대한 직접적인 안보 위협으로 돌아오는 격인데도 이에 대한 책임 추궁을 도외시한 거란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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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문제 공조 위해서라지만…
이와 관련, 외교부는 이날 "미국 측 결의안이 국제사회의 주요 현안인 우크라이나 전쟁의 조기 종식을 촉구(implore)하고 있는 등 우리 입장과 상충되지 않는다"며 찬성 이유를 설명했다. 이어 "전쟁 종식을 위한 국제사회의 지지와 의지를 모아야 할 시점이라는 점을 고려해 지지했다"고 밝혔다. 외교부는 또 "한·미 관계와 북한 문제 관련 한·미 간 긴밀한 공조의 중요성 등도 종합 고려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북한 문제를 고려할 경우 한국이 이번 기회에 더욱 외교적 일관성을 기했어야 한다는 반론도 나온다.
취임 직후부터 북한에 관심을 보여온 트럼프는 향후 북·미 관계의 추이에 따라 유엔 무대에서 북한의 불법 도발에 대해서도 유화적인 태도를 보일 가능성이 있다. 원칙보다는 실리에 따라 '불량 국가'에 면죄부를 주는 트럼프식 외교에 보조를 맞추는 데 방점을 둔다면 한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북한의 불법 행위를 미국이 눈감을 때도 스스로 방어할 논리가 빈약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비록 권한대행 체제이긴 하지만 한국이 현 정부가 앞세운 가치 외교 기조에 어긋나는 '갈지자 행보'를 보이는 데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이날 유엔 총회에선 러시아의 침략 책임을 묻는 결의안 두 건이 채택됐는데 한국은 여기에는 모두 찬성표를 던졌다. 한국이 총회에서 견지했던 입장을 안보리에서는 피력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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