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증외상센터 백강혁이 '사람을 살릴 수' 있으려면

류옥하다 2025. 2. 21. 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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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만난세계_2025] 한계 봉착한 한국 의료...강제 보다 동기 부여로 개혁해야

12·3 내란 사태 이후, 시민들은 무너진 세계를 구하기 위해 여의도, 광화문, 남태령으로 달려갔습니다. 어두웠던 광장을 빛으로 채운 건 형형색색의 응원봉뿐이 아니었습니다. '2024년 12월 3일 이후의 대한민국은 달라야 한다'는 외침은 광장을 넘어 우리 사회에 큰 울림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가 창간 25주년을 맞아 시민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전합니다. <편집자말>

[류옥하다 기자]

 <중증외상센터>의 주인공 백강혁(주지훈 분)
ⓒ 넷플릭스
이국종 교수를 연상하게 하는 드라마 <중증외상센터>가 넷플릭스 비영어권 TV쇼 1위에 올라 화제다. 백강혁(주지훈 분)과 중증외상센터 구성원들이 무협지 주인공처럼 활약하며 생명을 살려내는 쾌감이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호응을 얻어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드라마 속 '백강혁'이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어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이는 드물다. 기원전 5세기 고대 그리스 최초의 의사 윤리서인 히포크라테스 선서에 따르면 '칼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라며 외과 수술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고대에도 머리에 구멍을 뚫거나, 요로결석을 제거하거나, 어긋난 뼈를 맞추는 등의 외과수술이 있었지만, 이는 '기능공'의 영역인 경우가 많았고, 의사는 철학적으로 공기, 물, 불, 흙의 깨어진 균형을 맞추는 철학적 주체였다. 주로 18세기 계몽주의 시대가 시작되고 전문적인 충수염수술(1735)과 마취(1846)가 시작되기 전까지 수술 대부분은 '이발사'와 같은 이들의 몫이었다.

현대의 의사는 2500년 전의 낡은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하지 않는다. 의료의 영역은 시대나 사회·문화적 맥락에 따라 달랐으며 앞으로도 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한국 사회의 의료 시스템은 어디에 있으며, 앞으로 어디로 가야 할까? 의료는 '사람을 살리는 행위'인가 아니면 '서비스 산업'인가?

'서비스 산업'으로서 의료의 현실

한국의 의료시스템은 '공공·비영리화'되어있는 것처럼 보인다. 원칙적으로 영리병원을 허용하지 않으며, 거의 모든 치료와 약품에 정부가 가격을 정하고, 모든 병원이 단일 보험자인 국민건강보험공단과 계약해야만 한다. 그러나 현실의 한국 의료는 이미 민영·영리화되어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장면 #1]
한국의 의료 공공 비중은 2022년 기준 기관 수 5.2%, 병상 수 8.8%, 의사 인력 10.2%에 불과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공공 비중이 기관 수 57%, 병상 수 71.6%이고 의료 민영·영리화의 대명사인 미국이 기관 수 22.5%, 병상 수 21.1%인 것과 비교하면 그 차이가 갑절로 느껴진다.

이 문제는 수십 년간 해결되지 않았는데, 정부가 병상, 의사 인력에 대한 투자 없이 민간의 자본에 공공보건을 의존해 왔고, 민간은 투자 수익을 회수하기 위해 영리 추구에 몰두하는 악순환이 지속되어 왔다.

[장면 #2]
공공의료와 대비되는 극단의 '서비스 산업'인 쌍꺼풀, 레이저와 같은 미용·성형 시장은 어떨까? 2018년 기준 국민 1000명당 8.9명이 성형수술을 받았는데 이는 부동의 세계 1위에 해당한다. 매출은 107억 달러로 전 세계 시장의 4분의 1로 추정된다(국제미용성형외과학회).

시장 규모는 중국, 일본 등 외국인들의 미용·성형 관광을 포함한 수치인데, 2023년 기준으로 1년에 의료관광 입국자가 피부과 23만 9천 명, 성형외과 11만 4천 명에 달한다. 이는 1년 만에 2.4배 증가한 수치로 산업적으로 자동차, 반도체 못지않은 21세기의 새로운 '수출 일꾼'이자 '외화벌이 효자'인 셈이다.

'사람을 살리는 행위'로서 의료의 현실
▲ 정부, 응급실 인력부족 대책 발표 정부가 중증·응급환자의 진료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현장 의료진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고, 경증 환자를 지역 병의원으로 분산하는 대책을 발표한 2024년 8월 22일 오후 의료진이 서울 시내 한 대형병원 응급실 대기실 앞을 지나치고 있다.
ⓒ 연합뉴스
한편, 정작 드라마 <중증외상센터>속 백강혁과 같이 '사람을 살리는 행위'을 선택했던 의사들은 다양한 이유로 현장을 떠나고 있다. 매년 필수의료 지원율은 급감하는 추세이다.

[장면 #1]
2025년, 전공의 지원자 수는 정원의 2.2%인 199명에 그쳤다. 그마저도 필수의료로 불리는 산부인과는 1명, 흉부외과 2명, 외과 7명, 소아청소년과는 9명에 불과했다. 의정 갈등의 영향을 제외하고도, 이미 수년간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 외과 등은 미달을 겪어왔다.

단국대학교 권역외상센터 허윤정 교수는 <이데일리>와 한 인터뷰에서 "죽음 문턱서 사투 벌인 의사, 수억 원 소송 부담에 무너져"라며 '사법 위기'를 필수의료의 핵심 문제로 짚는다. 선배 교수가 수갑을 차거나(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건), 오진으로 17여억 원의 천문학적인 배상을 하거나(가톨릭성모병원 폐암 사건), 수련 중인 1년 차 전공의에게 4억여 원을 배상하는(데이트폭력 사망 가해자와의 공동배상 사건) 현실 속에 의사들은 '전생에 죄를 지으면 현생에 필수의료를 한다'며 자조하고는 한다.

[장면 #2] 고려대학교 구로병원에는 드라마 <중증외상센터> 속 중증외상전문의를 양성하는, 국내에 하나뿐인 '중증외상전문의 수련센터'가 있다. 그런데 정부 지원금 연 9억 원이 기획재정부에 의해 삭감되면서 병원은 지난 5일 수련센터 운영을 종료한다고 밝혔다.

6일 대한외상학회에 따르면 외과학 세부 전문의 갱신 대상자 58명 중 12명만이 자격을 갱신했고, 46명이 자격을 갱신하지 않았다. 갱신율은 20.7%에 불과해 지난해 47.6%와 비교해 절반 아래로 떨어졌다.

[장면 #3] 이국종 경기남부권역 외상센터장은 2020년 병원을 떠났다. 그는 사임 기자회견에서 "아주대병원으로부터 돈을 벌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그게 너무 힘들었고 이젠 지쳤다"라고 밝혔다. 병원으로서는 환자를 받을수록, 운영할수록 적자가 나는 외상센터를 유지할 이유가 없었다고 밝혔다.

강연에서 이국종 교수는 "닥터 헬기를 띄우면 산에서는 김밥에 흙이 튄다고, 병원에서는 아파트에 소음이 발생한다고 민원이 들어온다"라고 고충을 토로했다. 앞에서는 사람을 살린다며, 감사하다며 칭송하지만, "의대생을 늘린다고 소아과를 하지 않는다"는 그의 외침은 외면당했다.

'강제'로는 유지 불가능

이렇듯, 2025년 한국 사회에서 '사람을 살리는 행위'로서 의료는 붕괴하고 있으며, '서비스 산업' 으로서 의료는 성황하고 있다. 이미 한국의 실제 시스템은 민영·영리화되었지만, 당국은 그런 현실을 부정한 채 기형적인 지금의 시스템을 유지하는 데 과도한 사회적 비용을 투여하고 있다.

이는 '지역의사제' 등 최근 등장한 입법안처럼 '강제로' 필수의료에 의사를 근무시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이미 산업화 하였고,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지여야 할 미용이나 성형 등의 의료 산업을 소비자나 공급자에게 '강제로' 제한할 수도 없다.

지금까지는 경제 성장, 인구 구조를 바탕으로 앞 세대가 쌓아온 건강보험이라는 '공유 자원'을 바탕으로 한국 의료의 기형적인 시스템이 유지됐다. 그러나 이제는 한국 사회가 '공유 자원의 한계'를 마주하고 있다. 평균 수명이 늘면서 고령화가 가속하고 있어 2015년 13.2%였던 고령화율은 2025년 20%를 넘었다. 출산율은 2023년 0.72명이었고, 생산가능인구는 이미 2020년 3738만 명으로 정점을 찍었다.

의료기술 발전에는 한계가 없고, 의료 소비자의 기대와 수준은 높아지고 있지만, 그 모든 것을 채워줄 재원은 부재하다. 이미 2022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의료비 지출은 9.7%로, OECD 평균을 웃돌아 더 이상 세계적으로 '의료비를 덜 지출하는 국가'가 아니게 되었다. 지금의 증가 속도라면 학자들은 2030~2033년에는 미국의 수준인 16%를 넘어설 것으로 추계하고 있다니, 얼마나 무서운 미래인가? 우리 사회가 실제로 그런 비용을 부담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현실에 맞는 처방 필요
 대구의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관계자가 이동하고 있다. 2024.6.4
ⓒ 연합뉴스
건강보험 재원에 공유 자원의 한계가 존재하므로, 이제는 모든 영역을 제도적으로 공공·비영리화 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즉, 이는 의료의 '민간·영리화'를 인정하는 것이며, 의료가 '사람을 살리는 행위'인 동시에 '서비스 산업'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국가가 할 일은 의료는 '공공·비영리'라는 허울뿐인 이상을 지키는 일이 아니다. 돈이 없다는 이유로, 지방에 산다는 이유로 부당하게 치료받지 못하는 일을 막는 것, 즉 '사람을 살리는 행위'를 지키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의료 소비자로서는 건강보험 하나로 모든 필수적 의료의 보장이 가능해져야만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필수·지역의료에 그동안 국가와 사회가 외면했던 과감한 투자와 보상을 시행하되, 동시에 미용·성형 등의 비급여는 의료 소비자에게 빠른 치료, 첨단 치료를 접할 선택권을 제공해야 한다. 대신 후자에서는 이익과 기술을 공동체에 책임 있게 공유해야 할 것이며, 국가 또한 그러한 제도 장치 마련에 힘써야 한다. 의료인력과 기관이 유출되는 현실에 대해서도 사회적으로 고민이 필요하다.

비단 의료의 공공성을 강조하는 진보 진영뿐만 아니라 시장주의자들도 의료의 민영·영리화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을 품는다. 그러나 진정 두려워해야 할 것은 영리 추구 그 자체가 아니라, 지금 한국이 가고 있는 길인 '사람을 살리는 행위'로서 의료가 무너지는 것이다. 현재의 의료시스템은 지속 불가능하다. 진정한 의미의 의료 개혁에 나설 때다.

덧붙이는 글 | 류옥하다 기자는 강원도 산골에서 일하는 일차 의료, 응급의료 의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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