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와 '연대'가 충돌하던 금남로... 그 차이를 제 눈으로 똑똑히 봤습니다
[서부원 기자]
지난 토요일(15일) 오후, 광주 금남로는 인산인해였다. 옛 전남도청 앞 5.18 민주 광장으로부터 금남로 4가 너머까지 1km 가까운 대로가 인파로 가득 찼다. 각양각색 단체의 이름을 적은 깃발이 하늘을 가릴 듯 펄럭였고, 대형 스피커에서 쏟아져 나오는 구호들이 차가운 아스팔트를 덥혔다.
광장의 구호는 우레와 같았지만, 한 목소리는 아니었다. 100m 정도의 간격을 두고 서로 등을 진 채 윤석열 대통령 탄핵 찬반 집회가 동시에 열렸다. 옛 전남도청을 향해서 탄핵 찬성 집회 무대가 설치됐고, 탄핵 반대 집회는 반대쪽을 향했다. 찬반 집회 참가자들 사이의 불의의 충돌을 막기 위한 대비책이었다.
줄곧 상반된 두 집회 현장을 오갔다. 거리가 가깝기도 했지만, 서로 다른 목소리를 직접 듣고 싶었다. 같은 곳에서 한날한시에 찬반 토론의 장이 펼쳐지는 셈이니, '날 것 그대로' 비교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당일 광주 금남로에서의 탄핵 찬반 집회는 완벽한 '대조'를 보였다. 단적으로 표현하면, 두 집회는 '혐오'와 '연대'가 정면충돌하는 현장이었다.
|
|
| ▲ 이번 광주 금남로의 탄핵반대집회에서 '이재명' 다음으로 많이 등장한 이름이 '문형배'였다. 그는 집회 참가자들에게 '종북 좌파 반국가 세력'으로 낙인찍혀 있었다. |
| ⓒ 서부원 |
아예 헌법재판소도 해체하고, 국회도 해산해야 한다고 부르댔다. 기존의 '이재명 구속'과 '민주당 해체'에서 한 걸음 더 나간 것이다. '편파적인' 언론에 대한 공격도 전가의 보도였다. 가짜 뉴스의 진원지라며 특정 언론사를 지목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단상 아래 참가자들은 양손에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며 호응했다.
그들에게 사실을 검증하려는 의지조차 없어 보였다. 차마 읽기조차 민망한 황당한 주장이 팸플릿으로 제작되어 배부되고 있었지만, 문제 삼기는커녕 맞장구치는 목소리뿐이었다. 그들의 주장은 이미 그 어떤 논증으로도 반박할 수 없는 '믿음의 영역'이었다.
일례로, '윤 대통령 파면으로 가장 이득을 볼 사람이 이재명이므로, 파면을 막아야 한다'는 논리가 버젓이 적혀 있었다. 온 국민을 충격에 빠뜨린 '12.3 내란 사태'보다 이재명이 더 문제라는 거다. 이재명의 구속을 위해서라면 제2, 제3의 계엄령도 불가피하다는 식이다. 그들에게 이재명은 한 하늘 아래에서 함께 살 수 없는 '철천지원수'였다.
단상 위에선 한국사 '1타 강사' 전한길이 발언을 독점하다시피 했다. 여느 때처럼 그의 주장은 거침이 없었다. 지난 12월 3일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을 때 바로 잘못됐다고 말한 자신의 주장을 공식적으로 번복했다. 계엄령은 정당했다며 사과한 거다. 그의 주장은 윤 대통령과 일점일획 다르지 않았다.
|
|
| ▲ 문형배, 이미선, 정계선 등 헌법재판관 3인을 욕보이는 발언이 난무했고, 그들의 '좌편향'을 문제 삼는 팻말이 곳곳에 등장했다. |
| ⓒ 서부원 |
|
|
| ▲ 탄핵반대집회 현장 곳곳에 부정선거로 당선된 것으로 의심된다고 주장하는 민주당 국회의원의 명단이 내걸려 있다. |
| ⓒ 서부원 |
|
|
| ▲ 태극기와 성조기, 이스라엘 국기를 손에 들고 배낭에 꽂은 이들이 금남로 주변 곳곳을 활보했다. '민주주의의 성지'라는 광주에 이런 차림의 분들을 보리라고는 미처 몰랐다. |
| ⓒ 서부원 |
윤 대통령 파면을 촉구하는 집회는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상황인데, 이미 반대쪽 집회는 파장 분위기다. 이는 참가자의 다수가 동원된 외지인이라는 뜻이다. 하긴 집회 현장을 오가며 서울말과 경상도, 충청도 사투리를 곳곳에서 들을 수 있었다. 돌아갈 시간을 고려해서인지, 탄핵 반대 집회 시간도 오후 2시부터 4시까지로 안내되어 있었다.
|
|
| ▲ 윤 대통령 파면을 촉구하는 집회 현장에는 팔레스타인 국기도 등장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그곳 사람들에게 손을 내미는 게 윤 대통령을 파면하여 정의를 바로 세우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
| ⓒ 서부원 |
태극기와 성조기만 나부끼는 반대쪽 집회와는 달리, 정당과 시민단체, 농민 조직과 노동조합, 언론사와 성소수자 단체, 심지어 해병전우회와 개인의 주장을 담은 온갖 깃발들이 제 색깔을 드러냈다. 최근 남녀공학 변경 문제로 학내 갈등이 일어난 동덕여대 사태가 화두가 되고, 성소수자 차별 문제를 거론하기도 했다.
이른바 '남태령 대첩'에서의 뭉클했던 연대 경험을 나눈 발언자도 있었다. 앳된 그는 민주주의는 단판 승부가 아니라며, 질기게 싸우면 반드시 우리는 승리할 거라고 사자후를 토했다. '1타 강사' 전한길의 독무대였던 반대쪽과는 달리 세대와 직업을 초월하여 앞다퉈 연사로 나섰다. 유명 정치인이든 10대 학생이든 무대에 올라 제 목소리를 내는 '민주 광장'이었다.
참가자 수도 현격했지만, 집회의 '수준 차'도 극명했다. 집회의 경험과 공동체를 바라보는 태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는 게 맞다. 획일적 사고는 다양성을 능가할 수 없으며, 맹목적 혐오는 배려로 표현되는 연대 의식을 이길 수 없다.
광장에 펄럭이는 깃발 중엔 팔레스타인 국기도 있었다. 가자 지구에서 이스라엘에 의해 자행되고 있는 학살 행위를 멈추라는 요구다.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일지언정 전쟁을 반대하고 난민에게 손을 내미는 것이 윤 대통령을 파면하고 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과 다르지 않다는 점을 강조했다.
|
|
| ▲ 탄핵 찬성 집회 현장에 마련된 '복도'의 모습. 뒤로 집회 비용을 마련하기 위한 즉석 '모금 바구니'의 모습이 보인다. |
| ⓒ 서부원 |
집회에 소요되는 비용을 갹출하는 방식도 반대쪽 집회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수만 명이 모이는 대규모 집회엔 엄청난 비용이 든다. 이를 특정 개인과 단체가 감당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하여 집회 현장에서 즉석 모금 방식으로 충당한다. '모금 바구니'가 지나가면, 자발적으로 지갑을 여는 식이다.
|
|
| ▲ 5.18민주화운동을 상징하는 '시민군 버스'가 5.18 민주광장에 오브제로 서 있다. 뒤로 '내란 세력'의 집회를 허용할 수 없다는 현수막이 5.18 사적지인 전일빌딩 외벽에 걸려 있다. |
| ⓒ 서부원 |
▣ 제보를 받습니다
오마이뉴스가 12.3 윤석열 내란사태와 관련한 제보를 받습니다. 내란 계획과 실행을 목격한 분들의 증언을 기다립니다.(https://omn.kr/jebo) 제보자의 신원은 철저히 보호되며, 제보 내용은 내란사태의 진실을 밝히는 데만 사용됩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재용 무죄 판결, 우리 시장 신뢰도 10년 이상 후퇴시켜"
- 아프다며 보석 신청하더니... 일본으로 도망친 정치인의 정체
- "소설 썼다가 입학 취소" 이제야 말하는 '퇴마록' 성공 비화
- "윤 대통령이 그랬다. 장모님 때문에... 당신만 보면 미안해"
- '녹조 재난' 시대,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나?
- 대부분의 이주민들은 이런 취급을 당한다
- '친일했어도 그림만 잘 그리면 되나'라는 질문
- 아르헨티나 법원, 미얀마 민 아웅 흘라잉 사령관 체포영장 발부
- "가게 하나 문 닫는 데서 안 끝나" 공실이 위험한 이유
- 계엄 동기로 '황금폰' 지목한 민주당..."국힘, 기회 버리지 않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