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옥의 말과 글] [393] ‘열심히’의 배신

백영옥 소설가 2025. 2. 15.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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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하루를 30분 단위로 나눠 썼다. 연재, 강연, 방송 등 많은 일을 한꺼번에 해내야 했다. 30분 안에 메일 쓰고, 밥 먹고 하는 식이었다. 오래 앉아 쓰는 직업상 생긴 좌골 신경통 탓에 원고도 서서 쓰고, 미팅도 공원을 걸으며 했다. 작가는 예술가의 범주에 들지만 증권가의 김 과장이나 병원 전공의처럼 일하던 그때 ‘열심히’가 내 주기도문이었고, 자존감은 성취에 맞춰졌다. 하지만 그날이 왔다.

그날은 어떤 날일까. ‘나=일’이었던 사람에게 ‘열심’이 작동하지 않는 날이다. 그날은 예외 없이 찾아온다. 직업에는 반감기가 있기 때문이다. 운동선수, 과학자, 작가, 의사 등 고숙련 직종의 반감기는 3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 사이에 시작된다고 한다. 그것이 50세에 ‘종의 기원’을 쓴 다윈이 죽기 전 20년 넘게 우울했던 이유다. 명성에 비해 이후 성과가 평범했기 때문이다.

정체성을 성취에만 맞추면 그날은 더 파괴적으로 찾아온다. 내 선배의 그날은 뇌혈관이 막히던 날이었다. 문제는 성공한 삶이 러닝머신 위를 달리는 것과 비슷해진다는 것이다. 성취의 속도에 중독되면 삶에 멈춤 버튼이 있다는 사실을 잊은 채 쓰러질 때까지 달린다. 그렇게 자기 착취를 내면화하면 자기 파멸은 자동 모드로 진행된다. 속도가 강조되면 풍경을 잃고 밀도는 낮아진다. 마라톤 레이스에서도 완주하는 사람은 자기 속도로 뛰는 사람이다. 삶에도 과속과 감속 사이의 균형이 필요하다.

‘열심히’에 대한 새 기준이 필요하다. 오래 일하는 것과 일 잘하는 것, 일중독을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쉬고 자는 것을 낭비가 아닌 돌봄과 회복 관점으로 봐야 한다. 채우는 대신 비우고, 배우기보다 가르치는 것으로 방향을 전환한 말년의 바흐처럼 말이다. 이때 필요한 건 ‘이렇게 해야 한다’는 당위적 노력이 아니라 ‘이래도 괜찮아’라는 자기 수용이다. 받아들임은 약해졌을 때라야 보이는 겸손의 지혜다. 훌륭한 노년을 보낸 사람들의 삶이 유독 종교적으로 보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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