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국내 좌파단체가 이용하는 팔레스타인 시위
이만 리 떨어진 가자지구의 아우성은 들려도 국내 팔레스타인 주민의 목소리는 듣기 어려웠다. “가자지구를 사서 휴양지로 만들겠다”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구상에 대한 당사자 입장을 취재하며 겪은 일이다. 평소 알고 지내는 아랍인이 더러 있어 한 다리만 건너고도 팔 주민과 닿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쉽게 입을 열지 않았다.
이들 곁에는 국내 팔레스타인 시위를 주도하는 두 좌파 단체가 있다. 함께 출발했지만 하마스의 민간인 살해에 대한 의견 차이에 내부 갈등까지 겹치며 노동자연대와 민주노총이 갈라섰다. 가자 출신 한 명은 인터뷰 요청에 “연대 측에 연락하라”며 직접 답변할 수 없다고 했다. 또 다른 지인은 “주최 측에서 인터뷰를 허락하지 않을 것”이라며 우려했다. 이 단체에서 활동했던 관계자는 “조선일보가 팔레스타인은 비난하고 이스라엘을 편든다고 생각한다”며 거절했다.
노동자연대는 스스로 마르크스주의와 반미를 표방하는 극좌 단체다. ‘마르크스주의와 팔레스타인’이라는 강연을 열었고, 한미 동맹을 부정하며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한다. 작년 12월에는 북한군 우크라이나 파병설이 ‘윤석열 정부의 사기’라고 주장했다. 북한의 지령을 받고 주한 미군 철수를 선동했던 한 민주노총 간부는 대한민국 체제를 전복하려 한 혐의로 최근 15년형을 받았다.
아랍인 열에 아홉은 ‘팔레스타인 해방’을 외치고 다수가 반미 정서를 공유한다. 영국이 밸푸어 선언으로 팔레스타인 땅을 이스라엘에 건네줬고, 미국이 이를 이어받았다는 역사적 공감대가 있기 때문이다. 미래를 위해 일본과 교류해야 한다면서도 일제를 떠올리면 많은 한국인이 피가 끓는 것과 비슷하다. 좌파 단체는 이러한 정서를 파고들었다. “한국 체제를 흔들고 미국과 그 도구인 이스라엘에 맞서라”는 지침 아래 팔 문제는 유용한 수단이 됐다.
실제로 시위 현장은 국내 반미·반정부 투쟁에 팔 문제를 이용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더욱 키운다. 집회 안내문에는 윤석열 대통령 퇴진 집회에 합류한다는 내용이 담겼고, ‘볼셰비키’ ‘사회주의자 연대’ 등 깃발이 휘날린다. 채증하는 경찰에게 휴대폰을 내놓으라고 한 뒤 현장 사진을 모조리 지워버린 일도 있다. 주한 미군 철수를 외치는 민중민주당도 힘을 보탠다. ‘팔레스타인 연대’라는 간판을 걸어두고 이를 반미·반정부 투쟁의 지렛대로 삼는 양두구육(羊頭狗肉) 아닌가.
본지가 어느 한쪽을 편든다는 거짓을 믿지 않는 이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집회에 매주 참가하는 한 50대 아랍인은 “팔레스타인에 관심을 가져 줘서 진심으로 고맙다”고 기자에게 말했다. 가자 출신 30대 대학원생은 인터뷰 요청에 “거절한 적도 없고, 거절할 일도 없다”고 했다. 팔레스타인 깃발이 요란하게 펄럭이는 동안 정작 팔 주민의 목소리가 희미해져서야 되겠는가.
△매일 조선일보에 실린 칼럼 5개가 담긴 뉴스레터를 받아보세요. 세상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습니다. 구독하기 ☞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91170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시아나항공, 中노선 운항 20% 확대...“中 단체관광 확대 고려”
- 공수처, 수사관 지원 자격 다양화…수사 인력 확보 차원
- 삼성전자, 국내서 갤럭시S 리퍼폰 판매 시작
- Exclusive: KASA officials detail US interactions in rare foreign agent filings
- 이중생활하는 5060, 집만 아는 동년배보다 남은 인생 더 잘 산다
- 국민의힘 36.1%·민주 47.3%…정권 교체 57.1%·연장 37.8%[리얼미터]
- [속보] 오늘 의대생 복귀 마감... 4월 말쯤 증원 ‘0명’ 결정될 듯
- 중대본 “초고속 산불…몇시간 만에 동해안 어선 도달”
- 법무부, ‘산불 특별재난지역’ 피해 외국인 지원... 체류 관련 범칙금 한시 면제
- 김효주, 1년 5개월 만에 LPGA 우승...통산 7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