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입법기구=긴급재정명령? 김용현 거드는 윤석열의 '사상누각'
헌법재판소 탄핵심판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많은 말을 했다. 핵심 내용을 설명하면서 그 주변 상황을 상세하게 묘사한다는 게 윤 대통령 진술의 특징이다. 자기 진술의 신빙성을 높이려는 의도로 보이지만, 변론이 거듭될수록 '그럴듯한 거짓말'일 정황이 속속 확인되고 있다. <기자말>
[안홍기 기자]
지난 1월 23일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4차 변론에서 뜨거운 쟁점 중 하나는 바로 12.3 비상계엄 선포 직전 최상목 부총리 겸 기재부장관이 받은 쪽지 내용이 무엇을 의미하느냐였다.
이 쪽지에 나온 '국가비상입법기구'가 전두환 시절의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를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국보위는 전두환 신군부가 1980년 5.17 내란을 일으키면서 설치한 임시 행정 기구이다. 전두환이 대통령직을 차지한 뒤에는 국가보위입법회의로 개편되면서 입법권을 갖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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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속 중인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이 지난 1월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4차 변론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
| ⓒ 헌법재판소 화면 캡춰 |
긴급재정경제명령은 헌법 76조에 다음과 같이 규정돼 있다.
"대통령은 내우·외환·천재·지변 또는 중대한 재정·경제상의 위기에 있어서 국가의 안전보장 또는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긴급한 조치가 필요하고 국회의 집회를 기다릴 여유가 없을 때에 한하여 최소한으로 필요한 재정·경제상의 처분을 하거나 이에 관하여 법률의 효력을 가지는 명령을 발할 수 있다."
대통령이 긴급재정경제명령을 내린 예로는 1993년 8월 김영삼 당시 대통령이 낸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긴급재정명령' 즉 금융실명제 실시가 있다. 김 전 장관은 긴급재정경제명령을 통해 어떤 정책을 하려고 했느냐는 국회 측 대리인의 질문에 구체적인 답을 내놓지 못했다.
긴급재정경제명령 또한 국회가 열리지 않는 상황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국보위 같은 것은 아니라 해도 '국회 무력화를 염두에 둔 게 아니냐'는 반론이 가능하다. 국회 측 대리인과 재판부도 이같은 의문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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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용현 전 장관 직접심문하는 윤석열 대통령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구속된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월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탄핵심판 4차 변론에 출석해, 증인으로 출석한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을 상대로 직접 심문하고 있다. |
| ⓒ 헌법재판소 화면 캡춰 |
윤 대통령은 "선제적으로 긴급재정경제명령을 발했을 때 만약에 거대 야당이 반대를 해서 불승인을 하게 되면 또 이게 전부 사상누각이 되는데 이런 계엄 같은 거를 하는 상황에 국민들의 여론이라든가 이런 게 좀 바뀐다면 이런 걸 한번 검토해 볼 수 있지 않나, 저도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는 몰랐는데 오늘 얘기하는 거를 보니 그런 거는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사상누각이라는 말은 '모래 위에 지은 집'이란 뜻으로, 부실한 건축물뿐 아니라 사상이나 논리가 탄탄하지 않을 때에도 비유적으로 쓴다. 윤 대통령이 '사상누각'을 언급한 것은 긴급재정경제명령이 가진 한계 때문으로 보인다.
긴급재정경제명령은 국회 승인 없이 발령할 수 있지만, 국회의 사후 승인을 얻지 못하면 그 명령은 효력이 정지된다고 헌법에 규정돼 있다.
'국가비상 입법기구는 긴급재정경제명령 준비 조직이다'라는 김 전 장관의 증언을 사실로 인정한다고 해도, 국회의 승인이 없다면 물거품이 될 조치를 하기 위해 준비하라고 쪽지를 준 셈이다. 다시 쪽지로 돌아가, 쓰여 있는 문장을 보자.
"국가비상 입법기구 관련 예산을 편성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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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상목 당시 경제부총리가 비상계엄 당일 윤 대통령에게 받았다는 쪽지. |
| ⓒ MBC화면캡처 |
가장 큰 의문이 제기되는 부분은 이 쪽지 작성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윤 대통령이 김 전 장관을 거들고 나선 일이다. 김 전 장관이 직접 타이핑했고 윤 대통령은 검토도 하지 않았다는데, 그 내용이 국보위 유사 조직인지, 긴급재정경제명령권인지 어떻게 확신해 '지금 보니 그런 것 같다'는 식으로 장황한 설명을 하겠다고 나섰을까.
자기가 봐도 '비상입법기구=긴급재정명령' 주장은 '사상누각'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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