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334] 동쪽 창에서 꾸미는 모략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소치는 아이는 상기 아니 일었느냐…”로 시작하는 우리 시조가 있다. 조선 숙종(肅宗) 연간에 활동했던 남구만(南九萬)의 작품이다. 밝은 아침이 왔으니 어서 일에 나서라는 권농(勸農)의 노래다.
여기서 ‘동창(東窓)’이 건네는 이미지는 퍽 긍정적이다. 눈부시게 쏟아져 내리는 햇빛, 그리고 활기 넘치는 아침, 맑고 밝은 에너지 등이다. 우리 정서적 맥락에서 집의 동창은 대개 이 같은 의미를 크게 넘어서지 않는다.
그러나 중국인에게 동녘으로 난 이 창은 우리와 견줄 때 아주 별나다. 뭔가 꾸미다가 남에게 들켜버리는 경우를 일컫기 때문이다. ‘동창사발(東窓事發)’이라는 유명한 성어의 작용 때문이라고 해야 옳다. 남송(南宋) 시절 이야기다.
중국 역사에서 가장 욕을 많이 먹는 간신(奸臣) 진회(秦檜)가 주인공이다. 그는 명장 악비(岳飛)를 모함해 죽음에 몰아넣음으로써 북방 여진족의 금(金)나라에 왕조를 굴종케 한 혐의를 받는다. 나라 팔아먹은 희대의 간신 취급이다.
진회는 아내와 함께 동창 아래에서 그런 음모와 계략을 짰던 모양이다. 급기야 진회는 죽어 지옥에서 심판을 받을 때 “동창의 일이 탄로 났다”며 당황했다는 것이다. 그로부터 나온 성어가 ‘동창사발’이다. 문학 작품에 등장해 유명해진 말이다.
예나 지금이나 중국은 일을 꾸미는 획책(劃策)에 능하다. 좋게 말하면 깊이 생각하고 널리 따지는 심모원려(深謀遠慮), 나쁘게 표현하면 속임수에 가까운 권모술수(權謀術數)다. 중국인의 ‘동창’은 그 점에서 새겨볼 만한 단어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거센 압박에 중국은 ‘딥시크(DeepSeek)’ 등으로 대응한다. 나름대로의 혁신을 담고 있는 기술이라지만, 그 속에 어떤 ‘동창’의 요소가 있는지 알 수 없다. 중국은 세계인들이 품는 그런 의구심을 아직 풀지 못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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