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재 버티는 韓美 증시…지금 ‘진주’는 싸다

명순영 매경이코노미 기자(msy@mk.co.kr) 2025. 2. 11.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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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 전쟁·딥시크 쇼크

중국 스타트업 딥시크가 저렴한 AI 모델을 내놓자 엔비디아 주가가 하루 사이 20% 가까이 추락했다. 그러자 월가에서는 빅테크가 이끌었던 미국 강세장이 막을 내리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잇따랐다.

미국 증시를 이끄는 7개 대형 기술주를 가리키는 ‘M7(Magnificent7)’이라는 용어를 만들었던 월가 전문가가 “앞으로 M7은 시장 흐름을 후행하는 L7(부진한 7종목)으로 전락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월가에선 L7을 뒤처진다는 뜻의 ‘Lagnificent 7’이라는 신조어로 해석한다.

마이클 하트넷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최고투자전략가는 최근 투자자 메모에서 “M7이 더는 미 증시를 선도하지 못하고 시장 수익률 대비 ‘뒤떨어지는(lag)’ L7이 될 것”이라며 “투자자들은 비싼 미국 주식을 좇지 말고 저렴한 해외 주식을 매수하라”고 권고했다. 하트넷은 2023년 S&P500의 상승세를 이끈 엔비디아, 애플, 메타 등 7개 빅테크 기업을 묶어 M7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다.

1940~2024년 S&P 탄탄

평균 57개월간 157% 상승

그러나 미국 강세장이 끝났다고 판단하기에 이른 시점일 수 있다. 쿼터백자산운용은 1940년부터 2024년까지 85년간의 미국 증시 강세장과 약세장을 분석했다. 미국 S&P500지수를 따져보니, 강세장은 평균 57개월 동안 이어졌고 154% 올랐다. 반면 약세장은 평균 12개월간 31% 하락에 그쳤다. 가장 긴 강세장은 1987년 블랙먼데이 이후 시작했다. 1988년부터 150개월, 12년 이상 이어졌고 주가는 578% 뛰었다.

그렇다면 최근 몇 년 동안의 미국 강세장에서 주가가 충분히 올랐을까. 최근 강세장은 코로나19 팬데믹이 잦아들 무렵인 2022년 말부터 시작해 27개월간 63% 상승으로 이어졌다. AI 대장주 엔비디아 등 빅테크가 최근 강세장을 주도했다. 최근 2년여간 주가가 꽤 오른 것 같지만 미국 증시 85년 역사 속에서 보면 아직 평균치에도 한참 못 미치는 상승세라고 볼 여지가 있다.

장두영 쿼터백 대표는 “미국 증시 고점론 주장이 있지만 역사적인 데이터를 감안하면 강세장이 더 이어질 수 있다”면서 “강세장이 약세장보다 길고 수익이 좋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미국 시장에서 포트폴리오 조정으로 장기적인 수익을 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약세장에서는 투자자들이 공포감에 휩싸여 빠르게 가격 조정이 일어나지만 결국 본래 가치로 되돌아온다”며 “금융당국과 중앙은행이 적극 개입한다는 점도 약세장이 짧게 끝나는 이유”라고 덧붙였다.

약세장 이겨왔던 美 강세장

적립식 투자로 장기 성과

미국 강세장이 살아 있다고 가정해도 적극적으로 투자하기에 조심해야 할 시점인 것도 사실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촉발한 관세 전쟁, 딥시크로 상징되는 중국 AI의 등장이 금융가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가늠하기 힘들다. 여기에 여전히 높은 금리는 주식 시장에는 부정적으로 작용한다.

전문가들이 추천하는 서학개미 투자법은 적립식이다. 앞서 언급했듯 장기적으로는 강세장이 더 길었다는 통계를 바탕으로 꾸준히 투자하는 방식이 적당하다는 조언이다. 적립식의 장점은 ‘코스트 에버리징(cost averaging)’이다. 주가가 오를 때는 상대적으로 적게 매수를, 주가가 내릴 때는 상대적으로 많이 사들이며 결과적으로 매입 단가를 낮추는 효과를 누린다.

미국 주식에 장기 투자한다면 1순위는 역시 기술주다. 김성환 신한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지난 100년간 미국은 세계 최대 제조국 지위를 상실했지만 기술 헤게모니는 놓치지 않았다”며 “성장주는 미국 주식 그 자체”라고 강조했다. 그는 “기술 중심 상승 사이클이 3~4년, 중소형 성장주의 투기적 강세가 이후 1년 정도 이어졌다”며 “최근 상승세를 감안하면 3년 정도의 기술주 상승 사이클이 남았다고 판단할 수 있다”고 밝혔다. 신한투자증권이 꼽은 5대 테마는 ▲반도체 ▲AI 소프트웨어 ▲로봇 ▲우주 ▲천연가스다.

미국 성장주=기술주

브로드컴·MS·오라클 등 추천

우선 반도체 부문 톱픽(Top Pick)은 브로드컴이다. 김형태 신한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브로드컴이 구글, 메타, 애플, 오픈AI 등 빅테크의 주문형반도체(ASIC·application-specific integrated circuit) 시장에서 매출이 크게 늘었다”며 “네트워크 고도화 수요가 본업(유선 인프라 관련 칩) 실적 개선까지 이어지는 선순환을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저전력·고효율 트렌드 속에서 ASIC 설계 수요가 증가하고 브로드컴이 ASIC 대장주 지위를 누릴 수 있으리라는 판단이다.

마이크로소프트(MS)와 오라클도 적립식 투자에 적합한 종목으로 꼽힌다. 두 기업은 트럼프 대통령의 ‘스타게이트’ 프로젝트 주요 플레이어다. 스타게이트를 통해 미국은 슈퍼컴퓨터와 데이터센터 등 대규모 AI 인프라를 구축한다. 장기간 진행될 이 프로젝트에서 두 기업이 수혜를 볼 가능성이 높다.

MS는 AI 소프트웨어에서 여전히 맹주다. 오픈AI 지분 49%를 확보한 MS는 오픈AI와의 사업 수익에서 우선 회수권을 가지고 있다. 오라클은 과거 사내 데이터센터(On-Premise)부터 이어진 압도적인 데이터가 강점이다. 이를 통해 클라우드로의 전환에도 경쟁력을 갖췄다. 복잡한 데이터를 가진 기업일수록 오라클을 선호하는 이유다. 오라클 주가는 최근 스타게이트 참여 뉴스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김재임 하나증권 애널리스트는 “미국의 황금기 도래를 외치는 트럼프 2기 정책의 핵심 골자는 미국이 가진 것을 보호하고 앞서는 분야에서 지배력을 더욱 높이자는 것”이라며 “AI 등 미국 첨단 테크 산업의 선전이 트럼프 비전의 근간이 될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삼성증권은 세일즈포스, TSMC ADR, 캐터필러, 셰니어에너지, 테슬라, 아마존닷컴, 브로드컴, 팔란티어테크놀로지스, 엔비디아, 알파벳 Class A 등을 추천 종목으로 제시했다.

연초 힘 받은 韓 증시

탄탄한 저평가주 골라야

지난해는 서학개미만 웃는 장이었다. 하지만 올해는 국내 증시에 희망을 걸어봐도 좋을 듯하다. 연초부터 주가가 상승세를 탔고, 저평가 종목 반등에 대한 기대감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증권가에서는 “개별 기업 실적이 좋은데도 외부 환경을 이유로 주가가 지나치게 떨어진 종목을 적극 매수하라”고 조언이 잇따른다.

매경이코노미가 주요 증권사 리서치센터와 함께 ‘올 초 바닥권에서 담아둘 만한 종목’을 꼽아보니, 기술주에 대한

사랑이 여전히 깊었다. 하나투자증권과 메리츠증권은 저평가됐지만 AI 소프트웨어 성장에 올라탈 수 있는 네이버를 꼽았다.

네이버는 AI 경쟁력에 의문이 제기되며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음에도 4년 전 46만원대였던 주가는 20만원 초반대로 떨어졌다. 그러나 딥시크 쇼크로 저비용·저전력·고성능 AI의 활용도가 높아지며 AI 소프트웨어 강자로 꼽히는 NAVER가 다시 주목받는 것이다.

네이버는 지난해 사우디 데이터인공지능청(SDAIA)과 손잡고 아랍어 기반의 소버린 AI 개발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를 계기로 하이퍼클로바X 성능 강화와 더불어 엔비디아와 인텔 등 빅테크들과 협력해 ‘소버린 AI 생태계 확장’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하이퍼클로바X를 검색과 쇼핑 등 서비스 영역에 접목하는 ‘온 서비스 AI’ 전략에도 속도가 날 것으로 기대된다. 올해 1분기 출시되는 AI 쇼핑 앱 ‘네이버플러스 스토어’와 검색에 AI를 녹인 ‘AI 브리핑’ 같이 네이버만의 새로운 서비스가 등장하는 것이다. 이 밖에 네이버는 인텔과 함께 개발한 AI 반도체 ‘가우디2’와 같은 차세대 기술 확보에도 나선다. 이진우 메리츠증권 리서치본부장은 “국가 차원에서의 전략적 지원을 통한 ‘소버린 AI’ 개발 수혜를 받을 수 있다”고 NAVER 추천 배경을 밝혔다. 특히 이해진 창업자가 7년 만에 이사회 의장으로 복귀하며 네이버 AI에 힘을 싣는다는 점도 관심사다.

SK하이닉스도 추천 명단에 올랐다. 엔비디아 상승세와 함께했던 SK하이닉스 주가는 딥시크 쇼크에 주가가 크게 빠졌다. 지난해 7월 24만원대까지 올라섰던 주가는 20만원 밑으로 추락했다. 하지만 NH투자증권은 “SK하이닉스가 고대역폭메모리(HBM) 경쟁력을 앞세워 실적을 끌어올렸고, 올해 HBM의 DRAM 매출 내 비중이 48%까지 늘어난다”며 “하락폭이 클 때 담으라”고 조언했다.

움츠렸던 엔터주 기지개

팬덤 플랫폼 경쟁에 하이브·디어유 추천

기술주가 아니라면 엔터테인먼트 기업을 투자 포트폴리오에 넣어도 좋을 것 같다.

K팝 인기에도 불구하고 엔터주는 그간 기를 펴지 못했다. 음반 판매량이 줄어들고 각종 구설에 휩싸이면서다. 그러나 올해는 다르다. 트럼프의 ‘관세폭풍’에서 비켜 서 있는 데다, 실적도 살아나는 중이다.

하나투자증권과 NH투자증권은 하이브에, 신한투자증권은 디어유에 힘을 실었다. 하이브는 뉴진스 사태로 내홍에 시달렸지만 올해 호재가 적지 않다. BTS가 복귀하고, 신인 보이그룹이 3팀 이상 데뷔한다. NH투자증권은 팬 커뮤니케이션 플랫폼인 ‘위버스’ 실적도 높아질 것으로 기대한다.

‘팬덤 플랫폼’의 선두 주자인 디어유도 당장 담아도 좋은 종목으로 꼽혔다. 디어유는 3월 텐센트뮤직과 협업을 시작한다. 중국 진출만으로도 디어유에는 상당한 호재다. 게다가 SM엔터의 인기보이그룹 ‘라이즈’를 비롯해 JYP의 신인그룹이 순차적으로 입점을 시작할 예정이다. 한때 2만원대까지 밀렸던 주가는 최근 4만원 가까이 올라섰지만 여전히 상승 여력이 크다는 게 엔터 애널리스트들의 공통된 얘기다.

게임주 가운데에선 크래프톤이 돋보인다. 엔비디아와의 협력 발표, 딥시크발 AI 훈풍과 오픈AI 샘 올트먼 최고경영자(CEO)와의 만남 등 호재가 맞물리면서다. 크래프톤은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IT·전자 전시회 ‘CES 2025’에서 엔비디아와 공동 개발한 CPC(Co-Playable Character) 기술을 발표했다. CPC는 기존 NPC(논플레이어블캐릭터)와 달리 이용자와 자유롭게 상호작용할 수 있는 캐릭터다. 지난 1월 4일에는 샘 올트먼 CEO와 크래프톤 김창한 대표가 회동을 가져 이목을 끌었다. 두 수장은 이날 오픈AI의 플래그십 모델을 비롯한 고품질 대형언어모델을 기반으로 CPC 개발과 게임 특화 AI(인공지능) 모델 최적화 등 다양한 협력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진다.

제약주 중에선 한미약품이 꼽혔다. NH투자증권은 “경영권 분쟁 등 디스카운트 요인을 털고 올해 성장 궤도에 재진입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평가했다. 비만 치료제 2종과 선천성 고인슐린증 약재 1종의 개발이 순조롭게 진행 중이고, 지난해 4분기 실적(매출 3516억원, 영업이익 305억원)도 추정치에 부합하는 수준이라는 분석이다. NH투자증권은 올해 매출과 영업이익을 각각 1조6216억원과 2296억원으로 예측했다.

금융주 중에서는 삼성생명이 대표적인 저평가주다. 최근 이사의 주주충실 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회사와 주주’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이 추진 중이다. 이 경우 금융사들은 대주주 지분 확보와 자사주 매입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또한 삼성화재가 발표한 ‘밸류업’ 계획대로 자사주를 소각하면 삼성생명은 삼성화재 지분을 15% 넘게 보유하게 된다. 삼성생명이 삼성화재를 자회사로 편입할 경우 삼성생명 주주환원 여력은 커진다.

[명순영 기자 myoung.soonyoung@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96호 (2025.02.12~2025.02.1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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