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쌈꾼 백기완 "억만금 줘도 안 판다"던 이 그림
[김병기, 이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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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기완 마당집 2층 창문에 내걸린 '신학철, 백기완을 부르다' 전시 안내판 |
| ⓒ 김병기 |
| ▲ 유홍준 “그림 보고 눈물 흘린 적은...”, 명진 스님 “윤석열 뻔뻔한 거짓말에 구역질” ⓒ 김병기 |
서울 대학로 '백기완 마당집' 2층 창문에는 이런 글귀가 내걸렸다.
"혁명이 늪에 빠지면, 예술이 앞장서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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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년 2월에 열린 박근혜 퇴진 집회 때 백기완 선생을 부축한 신학철 화백의 모습 |
| ⓒ 채원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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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기완 선생 4주기(2월 15일)를 앞둔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백기완 마당집에서 열린 '<신학철, 백기완을 부르다> 특별전시 기자간담회'에서 신학철 화백이 작품과 전시회를 소개하고 있다. <신학철, 백기완을 부르다> 전은 한국 민중미술을 대표하는 그림꾼인 신학철 화백이 고 백기완 선생과 오랜 우정을 나누며 주고받은 이야기와 그림을 소개하는 전시회다. 고 백기완의 책 <부심이의 엄마생각> 연작 30점, 어린이 통일이야기 <하얀 종이배> 연작 40점, <백산 일어서다>, <어머니>, <백두산 호랑이>, <부활도 산자여 따르라> 등 80여 점의 회화와 육필원고, 기록사진 등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8월 15일까지 전시. |
| ⓒ 이정민 |
"양반들은 붉은 빛이 도는 화려한 복사꽃을 좋아했지만, 우리 민중들은 자연의 빛깔을 닮은 발그스레한 살구꽃을 좋아했어."
백 선생의 말을 들은 신학철 화백은 자기 집에 있던 살구나무 씨를 받아 키운 모종을 한 평도 안 되는 손바닥만한 마당에 옮겨 심었다. 2005년이었다. 백 선생은 살구나무가 얕은 화단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자, 막걸리를 몇 달 삭혀서 부어주면서 애지중지 키웠고, 살구꽃이 필 때면 벗들을 불러 모아 이야기꽃을 피웠다고 한다.
두 거장의 오래된 만남. 각별했던 인연을 그림으로 만날 수 있는 전시회가 지난 5일 문을 열었다. 오는 2월 15일, 백 선생 4주기를 앞두고 '백기완노나메기재단'이 마련한 '신학철, 백기완을 부르다' 전시회이다. 민중예술가는 혁명가의 말과 글을 그림으로 형상화했고, 혁명가는 그림에 서정과 서사를 불어넣어 또 다른 의미를 부여했다.
이날 기자간담회에는 신학철 화백, 명진 스님,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 백원담 성공회대 교수가 참석해 신 화백의 예술세계 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이어 신 화백은 기자들과 함께 그림을 둘러보면서 백 선생과의 인연을 들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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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학철 화백의 작품 '어머니' |
| ⓒ 신학철 |
"이 그림은 못 팔아, 억만금을 줘도 안 팔아."
신 화백은 "백 선생이 가장 아꼈던 그림"이라면서 "2005년 '노나메기 문화원'을 짓는 데 쓰라고 30점의 그림('부심이의 엄마생각' 책 연작그림)을 전해드렸는데, 백 선생이 이 그림은 절대로 못 판다며 남겨 두었던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도록에는 이 작품을 팔지 않았던 백 선생의 육성이 기록돼 있다.
"쌀밥은 왜놈들이 다 빼앗아가서 우리가 못 먹었고, 국수를 먹는 잔칫날인데도 방안이 아닌 부엌에서 쭈그리고 자시면서 우리들을 낳아서 길렀어. 이런 정서를 신학철 선생이 그림으로 그려줬다고."
이날 유홍준 교수도 "백 선생이 신 선생의 그림을 좋아하고 높이 평가했던 것은 민중적 삶의 정서를 리얼하게 형상화시켰기 때문인데, 내가 살면서 작품을 보고 울어본 것은 이 작품이 처음이고 마지막일 것"이라면서 "조선 어머니의 심성과 삶을 저렇게 형상화한 작품은 세계사적으로 봐도, 밀레나 반 고흐도 저런 그림은 못 그렸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작품이 걸린 공간에는 '부심이 엄마생각'이라는 백 선생의 소설 책 표지 등에 쓴 연작 그림이 전시됐다. 전시기획을 맡은 노순택 사진작가는 "백 선생님이 책의 원고가 마무리될 때 신 선생에게 표지 그림을 요청했는데, 원고를 다 본 신 선생님이 '이미 책은 나왔지만, 다시 나오게 된다면 그림들을 더 넣어야 되겠다'는 생각으로 30점을 그렸다"고 설명했다.
이 중 '어머니'는 유일하게 남은 작품인데, 신 화백은 이번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3점을 다시 그렸다. 이곳에 전시된 다른 작품은 당시 팔렸던 그림의 고해상도 파일을 찾아서 디지털로 재현한 그림이다. 일본 순사 앞에서 놋그릇을 안 주겠다고 버티는 어머니, 백 선생이 서울역 앞에서 만난 막노동꾼 '가대기 형님' 등 <부심이의 엄마생각> 연작은 30점이 전시됐다. 또 백 선생이 '어머니'만큼이나 좋아했다던 역동적인 그림 '얼쑤', '진달래와 나비' 등의 작품도 전시됐다.
[하얀 종이배] "서정적인 그림 좋아한 민주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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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학철 화백의 작품 '꿈에 본 아빠' |
| ⓒ 신학철 |
"눈오는 날, 낮에 아빠와 손잡고 걷고 있는 것을 형상화하려는데, 눈을 어떻게 그릴지 고민이 됐어요. 그 때 백 선생이 '그냥 점을 찍으면 되지'라고 말하더라고요. 맞았습니다. 그렇게 했더니 이 그림이 나왔습니다."
두 거장은 예술혼을 나눈 동지이기도 했다. 신 화백은 "민주투사였지만 문학과 음악, 영화 등에 통달한 예술가이기도 했던 백 선생은 속마음은 부드럽고 아름다움을 추구했기에 서정적인 그림을 좋아했다"면서 "특히 민중적인 삶의 리얼리티를 담은 작품에 애착이 있었다"고 회고했다.
백 선생의 딸인 백원담 교수는 "아버님은 항상 '역사적 긴장을 살아라' '시적 긴장을 살아야 한다'고 하셨고, 역사적 사태를 미학으로 승화시킬 수 없는 사람은 통찰력이 없는 것이고 '노나메기 세상'에 대한 전망도 세우지 못할 것이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면서 "무릎 앞에 앉아서, 밥을 먹으면서 들었던 얘기를 모두 형상화해주셔서 큰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옆의 전시공간에는 백 선생이 이승에서 마지막으로 본 신 화백의 작품이 전시됐다. 2020년, 백 선생이 투병 생활로 힘들어할 때 백기완 재단 채원희 사무처장의 휴대전화로 보내줬던 콜라주다. 눈 쌓인 백두산 천지에서 백 선생이 통일을 목놓아 부르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제목은 '백두산 호랑이'.
채 처장은 "당시 신 선생님께서 '이 그림을 보여드리고 얼른 기운 차리고 일어나시라고 전해줘'라고 말씀하셨다"면서 "신 선생님은 미완성 상태였던 이 그림을 2025년에 완성하면서 '백 선생님은 호랑이야'라고 말씀하기도 하셨다"고 전했다.
윤석열 탄핵 정국이 시작된 지난해 말, 신 화백이 기증한 '장산곶매'라는 작품도 걸려있다. 두 날개를 활짝 편 채 발톱을 세우고, 호령하듯이 입을 벌린 형상이다. 거리에서 백발의 사자머리를 휘날리며 포효했던 백 선생을 닮았다.
채 처장은 "이 그림을 건네준 신 선생님은 '백 선생님이 계셨다면 권력자를 향해 불호령을 내렸을 것이야, 선생님이 바로 장산곶매야'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재단은 이 그림으로 깃발을 만들어 탄핵 집회에 참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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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학철 화백의 작품 '진달래와 나비' |
| ⓒ 신학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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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학철, 백기완을 부르다" 특별전시 백기완 선생 4주기(2월 15일)를 앞둔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백기완 마당집에서 열린 '<신학철, 백기완을 부르다> 특별전시 기자간담회'에서 신학철 화백이 작품과 전시회를 소개하고 있다. <신학철, 백기완을 부르다> 전은 한국 민중미술을 대표하는 그림꾼인 신학철 화백이 고 백기완 선생과 오랜 우정을 나누며 주고받은 이야기와 그림을 소개하는 전시회다. 고 백기완의 책 <부심이의 엄마생각> 연작 30점, 어린이 통일이야기 <하얀 종이배> 연작 40점, <백산 일어서다>, <어머니>, <백두산 호랑이>, <부활도 산자여 따르라> 등 80여 점의 회화와 육필원고, 기록사진 등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8월 15일까지 전시. |
| ⓒ 이정민 |
신 화백은 1989년 '모내기' 작품으로 구속됐었다. 민중미술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히는 이 작품은 신 화백이 2년 전인 1987년 '제2회 통일미술전'에 출품했던 그림이다. '북한을 찬양했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받았는데, 1·2심에서 무죄를 받았다.
"솔직히 겁도 났어요. 모내기와 비슷한 그림을 그리면 또 얻어맞는 것이 아닌지. 그래서 이제부터는 진짜 객관적으로, 있는 사실대로 그려보자, 이념 같은 것을 싹 빼고 역사를 객관적으로 그리려고 시작한 작업이 '갑돌이와 갑순이'입니다. 그런데, 이념을 버렸는데, 이념이 따라왔더라고요. 안 도망갔어요. 반가웠죠."
1991년 당시에 신 화백이 그려서 백 선생에게 준 작품이 '한국현대사-갑돌이'이다. 빨간 모자를 쓴 채 입을 쫙 벌린 엿장수가 가위 소리에 맞춰 목청껏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다. 백 선생은 병상에 눕기 전까지 마당집 1층 '옛살라비'(옛방)에 걸린 이 그림을 배경으로 책상에 앉아 독서를 하거나 집필 작업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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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학철 화백의 작품 '한국현대사-갑돌이' |
| ⓒ 신학철 |
채원희 사무처장은 "백 선생님은 통일문제연구소를 찾아온 손님들에게 이 그림에 대한 설명을 즐겨했다"면서 도록에서 백 선생의 말을 이렇게 전했다.
"이 그림은 언제나 새로운 힘이 있다고. 요거 봐라, 웃는 건지 우는 건지 모르게 웃고 있는 갑돌이의 목젖이 유난히 노랗게 빛나고 있잖아. 뭐냐, 돈과 권력의 지배에 온몸이 망가졌어도 꿈으로 아우성치는 노랑 목젖이 이 그림의 생명력이야."
1층 전시공간 정면에 걸린 작품은 2020년에 그린 '부활도-산 자여 따르라'이다. 신 화백은 "백 선생님이 아프셨을 때 장례준비위원회를 만들었는데, 침상을 떨쳐내고 부활하라는 의미로 그린 그림"이라면서 "이제는 우리가 당신을 따르겠다는 의미로 장례식 노제 때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이밖에도 1층 전시 공간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된 뒤에 그려서 백 선생에게 준 '달이 떴구나' 등의 그림과 함께 질곡의 현대사를 온몸으로 헤쳐온 '불쌈꾼'의 한살매(한생애)를 보여주는 기록물들이 전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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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학철, 백기완을 부르다" 특별전시 백기완 선생 4주기(2월 15일)를 앞둔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백기완 마당집에서 열린 '<신학철, 백기완을 부르다> 특별전시 기자간담회'에서 명진 스님이 "현 시국에서 백 선생이 살아계셨다면 뭐라고 일갈하셨을까?"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신학철, 백기완을 부르다> 전은 한국 민중미술을 대표하는 그림꾼인 신학철 화백이 고 백기완 선생과 오랜 우정을 나누며 주고받은 이야기와 그림을 소개하는 전시회다. 왼쪽부터 신학철 화백, 명진 스님,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 백원담 성공회대 교수(백 선생의 장녀). |
| ⓒ 이정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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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학철, 백기완을 부르다" 특별전시 백기완 선생 4주기(2월 15일)를 앞둔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백기완 마당집에서 열린 '<신학철, 백기완을 부르다> 특별전시 기자간담회'에서 신학철 화백이 작품과 전시회를 소개하고 있다. <신학철, 백기완을 부르다> 전은 한국 민중미술을 대표하는 그림꾼인 신학철 화백이 고 백기완 선생과 오랜 우정을 나누며 주고받은 이야기와 그림을 소개하는 전시회다. 고 백기완의 책 <부심이의 엄마생각> 연작 30점, 어린이 통일이야기 <하얀 종이배> 연작 40점, <백산 일어서다>, <어머니>, <백두산 호랑이>, <부활도 산자여 따르라> 등 80여 점의 회화와 육필원고, 기록사진 등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8월 15일까지 전시. |
| ⓒ 이정민 |
"여기 부드럽게 날 선 말의 힘과 아름다움으로 사회변혁에 평생을 바친 운동가 백기완과 전위예술운동으로부터 민중미술로 진화하며 예술적 실천으로 헌신해 온 예술가 신학철의 아름다운 만남이 있습니다. 백기완과 신학철 두 분의 '말과 그림이 만나는 자리'입니다."
유홍준 교수는 지난 연말부터 광주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2024 민주인권평화전 : 신학철-시대의 몽타주'에 대한 소개를 곁들이면서 신 화백과의 개인적인 인연과 그의 작품 세계를 설명하면서 이같이 맺었다.
"종합적으로 얘기하면 민중적인 삶, 농민으로서의 삶, 농촌의 서정을 그림 속의 디테일을 통해, 그 서정과 서사를 드러낸 것이 신학철 작품 세계에 아주 중요한 요소입니다."
| ▲ “윤석열, 이실직고할 때까지 형틀에 묶어놓고 매우 쳐라!... 명진스님의 직설 #백기완 #명진스님 #신학철 #윤석열 ⓒ 김병기 |
백기완 선생과 돈독하게 지냈던 명진 스님은 "지금은 어른이 없는 시대이기에 백 선생님이 더욱 그립다"고 말문을 연 뒤 이렇게 일갈했다.
"뜬금없는 계엄을 시작해 지금 감옥을 들락거리는 윤석열이 헌법재판소에서 하는 말을 들으면 구역질이 나요. 자존감이 조금도 없는 아주 저질 쓰레기 같은 자란 말이죠. 그런데 자기가 저지른 계엄을 따랐던 별들은 전부 감옥을 들락거리는데, 핑계를 모두 그쪽에 대면서 계속 거짓말을 하고 있어요.
만약에 백기완 선생님이 살아계셨다면, 지금이 조선시대와 같은 왕조였다면 '형틀에 묶어놓고 이실직고할 때까지 매우 쳐라!' 그것밖에 답이 없습니다. 뻔히 들통날 거짓말을 반복하는 저 뻔뻔함을 해결하려면 형틀에 묶어놓고 매우 치는 것밖에 방법이 없습니다."
백원담 교수는 "최근에 한남동 대통령 관저로 달려가면서, 아버님이 살아계셨다면 세대와 성별을 아우르는 연대의 장이 펼쳐지는 것에 대해 엄청 감격을 하셨을 것"이라면서 "윤석열 같은 자가 거짓말하는 욕된 세상에 대해서는 하늘과 땅을 맷돌로 박박 갈아서 이 역사의 반역을 메쳐야 한다고 말씀하셨을 것 같다"고 말했다.
행사를 마친 뒤 신 화백에게도 물었다. 그는 오히려 "백 선생님은 비상계엄을 선포해서 자살골을 넣은 윤석열을 보고 엄청 기뻐했을 것 같다"고 말하면서 해맑게 웃었다. 그 모습을 보니, 2층 기획전시장에 걸린 '울고 넘는 박달재' 작품 속에서 환하게 웃는 백 선생의 얼굴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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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학철 화백의 '울고 넘는 박달재'(2009년) |
| ⓒ 신학철 |
덧붙이는 글 | 고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은 돌아가실 때까지 오마이뉴스를 후원한 최고령 10만인클럽 회원이었다. 백기완 선생 4주기 추도식은 오는 2월 15일 오전 10시 30분에 마석 모란공원묘지에서 열린다. 이날 오후 2시에는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추도식을 거행하며, 광화문까지 행진을 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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