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 중인 ‘텍스트힙’ 트렌드

나건웅 매경이코노미 기자(wasabi@mk.co.kr), 조동현 매경이코노미 기자(cho.donghyun@mk.co.kr), 정혜승 매경이코노미 인턴기자(jhs_0102@naver.com), 정수민 매경이코노미 인턴기자(selly0910@naver.com) 2025. 2. 11.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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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ke에서 Love로···Z세대, 텍스트힙에 빠지다 [스페셜리포트]

진화 중인 ‘텍스트힙’ 트렌드

독서 모임·책방 투어…“더 많은 경험”

온라인을 주 무대로 했던 텍스트힙 열풍은, 최근에는 다시 다양한 오프라인 활동으로까지 번져가고 있다. 책을 매개로 소통하는 ‘독서 모임’, 소규모 독립 서점을 찾아다니는 ‘책방 투어’ 등 트렌드가 젊은 세대 중심으로 확산 중이다. 더 많은 경험과 더 깊은 소통에 대한 수요다.

독서 모임 플랫폼 ‘트레바리’는 텍스트힙 트렌드에 힘입어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트레바리는 국내 독서 모임 플랫폼 대표 주자다. 2015년 9월 설립 이후 벌써 11년 차를 맞았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대위기를 맞이했지만 최근엔 분위기가 달라졌다. 지난해부터 2030 신규 회원이 크게 늘며 누적 회원

11만명을 돌파, 매달 약 500개 모임에서 수천 명이 만남을 갖는 커뮤니티로 진화했다.

트레바리는 ‘유료 서비스’ 그리고 ‘독후감 의무’라는 정책으로 차별화했다. 회비는 4개월에 약 30만원. 적잖은 돈이지만 ‘책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이들만 모인다’는 일종의 자체 진입장벽으로 기능하는 모습이다. ‘400자 이상 독후감을 제출하지 않으면 모임에 참석이 불가하다’는 정책도 비슷하다.

회원들끼리 토론뿐 아니라 각 분야 전문가를 직접 만날 수 있다는 점도 호평 받는다. 예를 들어 문학비평가와 함께 읽는 문학 모임, 데이터 분석가와 함께하는 그로스 마케팅 실천법, 전 한국은행 국장과 함께 읽는 영국 이코노미스트 잡지 등이다. 독서 외에 같은 취미를 공유할 수 있다는 점도 인기 비결이다. 예를 들어 야구와 관련된 책을 읽는 독서 모임 ‘야구야구-임당’에선 멤버들이 함께 야구장 직관을 다니고, 책과 영화를 함께 즐긴 후 토론하는 ‘북씨’에서는 주기적으로 영화관을 찾는 식이다. 물론 이런 기타 모임은 모두 자율이다.

윤수영 트레바리 대표는 “독서 모임은 누구나 갖고 있는 배움 욕구나 외로움 극복에 대한 열망을 채워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정보 소비 방식이 변화하더라도 텍스트 기반 콘텐츠는 여전히 심도 있는 소통과 관계를 형성하는 굉장히 중요한 매개체다. 본인이 관심 있는 취미와 취향에 더 빠르고 깊게 파고들기를 원한다면, 연령 불문 텍스트를 더 잘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트레바리 외에도 다양한 독서 모임 플랫폼이 늘어나는 중이다. 예스24는 지난해 8월 독서 커뮤니티 서비스 ‘사락’을 새로 선보였다. 사락 모임은 독자가 자유롭게 참여하는 ‘일반 모임’, 그리고 작가와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작가 모임’으로 나뉜다. 출범 6개월 만에 1500개 이상 독서 모임을 운영하며 호응을 얻고 있다.

이 밖에 일반 독서 동호회에서 플랫폼 사업으로 확장한 ‘아그레아블’, 온라인 독서 모임으로 전 세계 각지에 거주 중인 작가가 참여하는 ‘세모람’, 저마다 독서 모임을 자유롭게 꾸릴 수 있는 툴을 제공해주는 플랫폼 ‘그믐’ 등이 있다. 최근에는 당근 같은 커뮤니티 앱에서도 독서 모임 개설이 활발히 늘어나는 중이다.

특색 있는 책방과 독립서점을 돌아다니는 ‘책방 투어’도 인기다. 타인과 소통보다는, 자신만의 독서 경험을 온전히 누릴 수 있는 공간을 찾고자 하는 수요다.

저마다 특색을 갖춘 독립서점이 ‘핫플’로 자리매김 중이다. 예를 들어 서울 강남에서 운영 중인 독립서점 ‘무수책방’은 ‘편안함’이 콘셉트다. 중앙에 위치한 소파와 테이블, 이를 둘러싸고 있는 목재 서가가 마치 집 안 거실을 연상케 한다. 단순 책 구매를 넘어 ‘함께 글쓰기’ ‘함께 희곡 읽기’ ‘명상’ 같은 여러 참여 이벤트도 진행한다.

책에 술을 더해 즐길 수 있는 공간도 인기다. 지하철 2·6호선 합정역 뒷골목 지하에 위치한 ‘문학살롱 초고’는 낮에는 카페, 밤에는 바(bar)로 운영된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 등장하는 ‘살롱’을 모티브로, 독서와 토론을 즐길 수 있는 아지트 같은 공간이다. 서울 연남동 ‘책크인’ 역시, 창가에 기대 여행 서적을 읽으며 와인을 즐기는 감성으로 입소문을 타며 명소로 떠올랐다.

일반 서점에서 구하기 힘든 추리소설을 모아놓은 ‘미스터리 유니온’, 약사 겸 책방 대표인 박휼륭 씨가 약국 안에서 운영 중인 ‘아직 독립 못 한 책방’, 에세이 작가와 영화감독이 함께 운영하는 영화 독립서점 ‘영화책방 35㎜’, 사진집만 취급하는 ‘아라선’도 독특한 개성으로 눈길을 끈다.

더 사적인 독서 공간을 원하는 이를 겨냥한 ‘예약제 서점’도 새 트렌드다. 서울 덕수궁 인근에 위치한 ‘마이시크릿덴’은 대화가 금지된 예약제 서재다. 돌담길과 나무로 둘러싸인 공간에서 독서와 사색을 온전히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유명하다.

‘예약제’와 ‘여행’을 접목한 서점도 젊은 세대 관심을 끈다. 강화도에서 운영 중인 ‘이루라책방’은 동화 작가 김영선 씨가 운영하는 북스테이 전문 책방이다. 전원주택처럼 설계된 책방으로 예약자 외에는 출입이 불가능하다. 숙박을 하며 자유롭게 북카페와 책방을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독서 모임 ‘아그레아블’은 일반 독서 동호회에서 플랫폼 사업으로 확장한 사례다. (아그레아블 제공)
텍스트힙, 어떤 식으로 진화할까

내가 쓴 글로 모임하는 ‘스토리클럽’

텍스트힙 열풍은 앞으로도 진화해나갈 것이란 의견이 많다.

먼저 ‘장르’ 관점이다. 시 같은 짧은 글이나 실용 서적에서 순수 과학이나 인문학 쪽으로 번져갈 것이라는 기대감이 크다. 숏폼이나 요약 콘텐츠에서 채워지지 않는 욕구를 해갈할 전문 서적, 이른바 ‘벽돌책’이 인기를 끌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현재 1020세대를 중심으로 형성된 문화에 중장년층이 자극을 받아 전국적인 ‘독서 붐’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

읽기 열풍이 ‘쓰기 열풍’으로 확산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개개인이 독자를 넘어 한 명의 작가를 표방하는 세상이 오지 않을까 한다”며 “남이 쓴 책이 아니라 자기가 쓴 편지나 시를 가지고 독서 모임을 하는 영국 ‘스토리클럽’ 문화가 한국에도 번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비관론도 있다. 유행은 일시적이며 텍스트힙 열풍이 언제든 꺼질 수 있다는 의견이다. 최근 텍스트힙 현상은 ‘텍스트’ 그 자체가 아니라, 텍스트를 매개로 한 ‘관계 맺기’에 더 무게가 쏠려 있다는 평가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젊은 세대는 유행을 나누며 어떻게든 관계를 맺으려 하는 성향이 있다. 달리기를 매개로 한 ‘러닝 크루’ 같은 문화가 대표적”이라며 “최근 텍스트힙 열풍은 책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개인화되고 있는 요즘 청년층에 대한 반작용 같은 개념으로 본다”고 말했다.

열풍이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불확실하다. 트렌드에 민감한 젊은 세대가, 텍스트가 아닌 다른 매개체로 금방 옮겨갈 가능성도 없잖다. 하지만 오랜만에 도래한 ‘독서 붐’을 발전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하재근 평론가는 “최근 텍스트힙 현상엔 분명 허세와 과시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문화예술 자체가 원래 허영 의식이 아니겠는가”라며 “독서를 하는 사람이 늘었다는 게 중요하다. ‘텍스트힙 열풍’에서 ‘독서 열풍’으로 발전시키려는 노력이 사회 전체에서 봤을 때 중요하겠다”고 말했다.

트레바리 독서 모임, 직접 가보니
‘나 홀로 독서’에선 배울 수 없는 각자의 삶
1월 22일 서울 강남에 있는 트레바리 아지트에서 ‘최소한의 금융경제’라는 이름의 독서 클럽이 열렸다. (조동현 기자)
1월 22일 오후 7시 40분. 서울 강남에 있는 트레바리 아지트에선 금융과 경제를 주제로 ‘대화의 장’이 열렸다. ‘최소한의 금융경제’라는 이름의 독서 클럽이다.

참석자는 15명. 면면은 다양했다. 금융권에서 잔뼈가 굵은 전문가도 있고, 경제 지식은 부족하지만 관심을 키우고자 온 사람도 있다. 모임을 이끄는 최찬영 클럽장은 JP모건 등 금융권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자본 시장과 투자에 대한 현실적 관점을 제공했다.

이날 참석자들은 ‘월가의 현자’로 유명한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의 저서 ‘행운에 속지 마라’를 읽고 난 뒤 대화를 나눴다. 책의 핵심 주제는 ‘운의 중요성’이다. 탈레브는 불확실성이 만연한 시대에서 투자와 삶의 성공이 종종 ‘운’에 의해 좌우된다는 불편한 진실을 강조한다.

참석자들은 저마다 자기 일상을 책에 투영해내는 모습이었다. 항공기 리스 기업에서 리스크 관리를 담당한다는 황현지 씨(가명)는 “세일즈팀과 리스크 관리팀 간의 긴장이 늘 존재한다”면서 “수익을 좇는 팀과 리스크를 제지하는 팀의 갈등 속에서 불확실성을 감내하며 균형을 잡는 것이야말로 품격 있는 투자인 것 같다”고 풀어냈다. 스타트업에 재직 중이라는 김영빈 씨(가명)는 “모든 정보를 통제하려는 완벽주의가 오히려 손실을 키우곤 한다”며 “스타트업 생태계에서도 불필요한 정보나 ‘판교어’와 같은 허세가 투자 결정을 복잡하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가장 인상 깊었던 대화는 ‘신호와 소음을 구분하는 법’을 둘러싼 토론이었다. 단기 투자 성과를 확인하며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받는 대신, 차분히 지켜보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데에 공감대가 모였다. 비슷한 투자 실패 경험을 했던 터라 더욱 심금을 울렸다.

책을 읽지 않은 상태였는데도 토론을 듣고 있자니 깨닫게 되는 바가 많았다. 책을 읽었더라면, 또 나만의 생각으로 독후감을 작성한 후였다면 더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에 아쉬움이 컸다. 저마다 다른 삶과 다양한 경험을 한 권의 책을 통해 공유한다는 점. ‘나 홀로 독서’에서는 찾을 수 없는 매력이 독서 모임에 있었다.

[나건웅·조동현 기자 정혜승·정수민 인턴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95호 (2025.02.05~2025.02.1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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