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한국선교 140주년, 근현대 시간 잇는 신앙길을 걷다

김동규 2025. 2. 9. 11:0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인천 중구 문화순례길
기독교 역사 숨결 남은 ‘바다 이음길’
직접 걸어보며 그날의 기억을 돌아보다
인천 중구에 위치한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탑. 가운데 아펜젤러 부부와 언더우드 선교사 동상이 서 있다. 그 아래에는 1885년 4월 5일 도착했을 당시 기도했던 기도문이 적혀 있다.

1885년 부활주일이었던 4월 5일. 낯선 외국인들이 인천 제물포항에 발길을 내디뎠다. 그들의 이름은 헨리 G 아펜젤러(1858~1902) 호러스 G 언더우드(1859~1916) 선교사. 이들이 조선에 파종한 복음의 씨앗은 140년이 흐른 지금, 선교사 파송 2위 국가라는 열매로 이어졌다.

인천 중구청은 이 같은 한국 기독교 역사와 근현대사들을 기념하기 위해 ‘시간 이음길’과 ‘바다 이음길’이라는 문화 순례길을 조성했다. 시간 이음길은 제물포항이 개항된 1883년부터 1945년 광복이전까지 근대 역사 문화를 시간적 개념으로 잇는다는 의미를 담은 길이다. 바다 이음길은 1885년 바다를 통해 선교사들이 처음으로 들어온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신앙의 흔적을 둘러보도록 돕는다.

140년 전 기독교의 첫 숨결이 닿은 이곳 순례길을 통해 국내 역사를 돌아보며 묵상으로 신앙과 삶의 진정한 의미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기자가 직접 바다 이음길(아래 사진 참조)을 돌아봤다. 이 길은 개신교와 천주교 기준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탑, 첫 선교 수녀 도착지, 대불호텔, 대한성공회 내동교회, 내리감리교회, 답동성당 등 6개 주요 거점을 중심으로 제물진두 순교성지, 해안성당, 관동교회, 옛 국제복음방송국 등 10개 연계 거점으로 구성됐다. 개신교와 천주교 코스를 각각 선택할 수 있다.

인천 중구청 제공
개신교의 그때 그 시절

인천 중구에 있는 수도권 전철 1호선 인천역에서 10여 분을 걷다 보면 한 탑이 눈길을 끈다. 처음으로 들릴 곳인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탑이다. 높이 17m의 이 기념탑을 자세히 살펴보면 저고리와 한복을 입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부활절을 기념하며 환희하는 모습이 새겨져 있다. 탑 한가운데에는 한국 최초의 선교사인 언더우드 선교사와 아펜젤러 선교사 부부의 상이 나란히 서 있다.

기념탑 모양은 한국교회의 전통적인 종의 형태로 만들어졌으며 성부·성자·성령 삼위일체를 상징하는 세 탑이 한 점에서 만나 하늘을 향하고 있도록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는 한국 교회가 하나로 뭉쳐 하나님께 향한다는 뜻이다.

눈길을 돌리니 동상 아래에는 두 선교사가 상륙 직후 드린 기도문이 적혀 있었다. “오늘 사방의 빗장을 부수시고 부활하신 주님께 간구하오니 어두움 속에서 억압을 받고 있는 이 한국 백성에게 밝은 빛과 자유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오늘날 탄핵 정국으로 두 쪽 난 우리나라에도 상통하는 듯했다.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탑 아래 적힌 기도문이다. 오늘날 여전히 어려운 시국에도 읊조려도 될 듯하다.
대불 전시관 입구다. 기자가 방문했던 월요일은 휴관이었다. 안에는 20세기 호텔 내부 전경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안내지에 따라 5분 정도 가다 보면 대불호텔이 관광객을 맞이한다. 대불호텔은 언더우드, 아펜젤러 선교사가 잠깐 거주했던 사실은 이들의 서신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아펜젤러 선교사는 1885년 4월 5일자 비망록에서 “끝없이 지껄이고 고함치는 일본인과 중국인, 그리고 한국인들 한복판에 짐들이 옮겨져 있었다. 다이부츠(대불) 호텔로 향했다”고 적었다. 선교사들은 사역을 펼치기 이전 호텔에서 예배를 드리기도 했다.

관동교회 앞 전경. 반대편에는 목조 건물로 이뤄진 카페도 하나 있다. 과거로 온 듯한 느낌을 준다.

주요 거점을 벗어나 샛길로 가면 개신교의 근현대사가 묻어나는 곳들이 등장한다. 대표적인 예가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소속 관동교회(이병곤 목사)다. 이 교회 정면과 입구는 1950년대 건축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다. 목재로 된 옛 건물이 즐비한 거리에 붉은색 벽돌 위에 우뚝 솟은 십자가는 고풍스러운 느낌을 선사한다.

인천중화기독교회가 있던 건물이다. 현재는 식당과 카페도 들어서서 제일 윗층에서 예배를 드린다고 알려졌다.

길을 따라 그 위로 가면 상가로 보이는 건물이 등장하는데, 이는 ‘인천중화기독교회 터’다. 교회는 1917년 인천차이나타운 근처 작은 집의 방에서 미감리교회 소속 데밍(1876~1938) 선교사와 화교 몇 명이 예배를 한 것이 시초다. 화교들과 함께 동고동락한 장소로 오늘의 역사를 잇고 있다. 기존 교회 건물은 2002년 헐리고 현재의 건물로 들어섰지만, 건물 곳곳에 남겨진 ‘내 집에 들어오는 모든 이에게 평화를’이란 문구와 십자가 등이 눈길을 끌었다.

인천 내리교회 한편에 제1~3대 담임목회자였던 아펜젤러, 존스, 김기범 목사 흉상이 서 있다.

인천제일교회와 인천내동교회 등을 지나 내리감리교회(김흥규 목사)로 이동한다. 1891년 세워진 내리교회는 개신교 선교 초창기에 세워진 교회 중 하나로 ‘한국의 어머니 교회’라고도 불린다. 이 교회 2대 담임목회자인 조지 존스(1867~1919) 선교사가 1901년 십자가형 벽돌 예배당을 세운 게 현재 예배당 자리라고 한다. 교회 한편에는 제1~3대 담임목회자였던 아펜젤러, 존스, 김기범 목사 흉상이 서 있다.

강경신 목사가 로제타홀기념관에서 홀 선교사의 업적을 설명하고 있다.

이번 순례길의 대미를 장식할 방문지는 인천기독병원 로제타홀기념관(관장 강경신 목사)이다. 기념관은 2021년 로제타 셔우드 홀(1865~1951) 선교사의 업적을 기리며 다음세대를 교육하기 위한 목적으로 세워졌다. 기념관에는 그 당시 의사들이 실제 사용하던 가방부터 한 목회자가 그린 홀 선교사의 인물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물품들이 전시됐다.

이곳에서 만난 강경신 목사는 “인천기독병원은 1921년 홀 선교사가 직접 세운 유일한 병원”이라며 “이곳에서 130년 전에 암흑의 땅 조선에서 의료를 통해 가난한 사람, 여성, 아이들을 치료하고 민족정신을 일깨워 준 홀 선교사의 사랑을 엿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 선교사가 국민일보에 게재된 로제타 홀 선교사 사진을 보고 직접 그려 기념관에 기증했다고 한다.

인천=글·사진 김동규 기자 kkyu@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