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과 함께한 40여년 '춘자씨가 달라졌어요'

최미향 2025. 2. 8.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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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명인의 발자취] 화예 부문 불교꽃꽂이(불전공화) 임춘자 명인

[최미향 기자]

기자말
한국예술문화명인진흥회는 우리 조상의 유·무형 전통예술문화를 유지·발전시키고 명인들이 쌓아온 가치를 사회 자산으로 공유하기 위해 설립됐다. 현재 전국에 약 400명의 명인이 회원으로 등록되어 있는데 그중 충청지회 명인은 21인이다. 이 연재는 충청 지역에 흩어져 있는 명인 21인의 인터뷰다.

그들의 지난했던 삶을 조명함으로써 미래를 잇는 문화유산의 가치를 조금이나마 이해하는 데 보탬이 되고자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소개한다. 불교꽃꽂이(불전공화) 화예 임춘자 명인을 지난 5일 만났다.
 불교꽃꽂이(불전공화) 화예 부문 임춘자 명인
ⓒ 임춘자
저는 서울 중구 신당동에서 사업을 하시는 부모님 밑에서 6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났습니다. 부모님 모두 어려서 일본으로 건너가 교육을 받으신 분들로 유난히 자식들의 공부에는 열정적이셨습니다.

열세 살 위의 하나뿐인 언니는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시집을 갔고, 저는 네 명의 남자 형제들 속에서 부대끼다 보니 남학생들이 주로 하는 놀이에 더 익숙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던 어느날, 아버지께서 갑자기 세상을 떠나시는 청천벽력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 제 머리를 땋아 주시던 아버지가 안 계시면서 저는 은둔형으로 바뀌어버렸습니다.

명랑하고 웃음이 넘치던 저는 오로지 집에서 키우던 강아지만 데리고 마당에 앉아 꽃밭에 심겨 있는 꽃들을 한없이 바라보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저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슬픔을 못 이기신 어머니는 신경쇠약에 우울증까지 보였습니다. 세상이 한순간에 무너져내린 시간들이었습니다.
 임춘자 명인이 올린 '계룡산동학사 법당 꽃장식'
ⓒ 임춘자
아버지와의 이별, 법당 다니며 안정 찾아

학창 시절, 반장과 오락을 도맡았던 말괄량이가 말수가 줄고 우울해하자, 걱정하던 친구의 권유로 학원강사의 길로 들어서게 됐습니다. 당시 친구 아버지가 운영하던 학원이었는데 대학까지 포기한 제게는 그야말로 파격적인 제안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친구의 격려에 힘입어 다시 제기할 힘을 얻게 됐습니다.

그 후로도 스물여덟에 군인이었던 남편을 만나기 전까지 오빠가 경영하는 회사에서 일을 하기도 했고, 철도청에서 별정직 비서직을 수행하며 사회를 경험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아버지의 빈자리를 남편이 채워주면서 마음에 조금씩 안정되어 갔고, 더불어 군 법당을 다니면서 제 인생의 서막이 열렸던 것 같습니다.

매주 토요일에는 어린이 법회를 열어 불법을 가르치며 열심히 종교 활동을 이어 갔습니다. 조계종에서 시행하는 포교사 자격증도 취득하게 됐습니다.
 임춘자 명인의 '한국꽃예술협회 전시 작품'
ⓒ 임춘자
그래도 여전히 마음 한구석이 허했던 저였습니다. 그러다 그 틈을 메우는 것을 만나게 됐는데 그것이 바로 꽃입니다. 법당에 올리는 꽃공양을 직접 올리면서 이상하게 마음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습니다.

꽃과의 인연을 먼저 말씀드려야겠습니다. 꽃을 무척 좋아하시는 어머니는 봄이 되면 시장 다녀오실 때마다 노란색 프리지아를 사다 책상 위에 꽂아주셨습니다.

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노랑 커튼과 프리지아가 만나면 저는 그만 은은한 향기와 분위기에 취해 심신이 맑아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부처님오신날 관욕불 주변을 장엄하게 장식한 임춘자 명인(오른쪽 첫번째)
ⓒ 임춘자
외길인생을 가다보니 불전공화 화예 명인 등극

1978년 처음 직장 모임에서 꽃꽂이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벌써 40년이 한참 지났습니다. 꽃꽂이 수업을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어느날 보니 사범이 되기 위해 전국을 누비고 있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또 어떤 날은 부처님 전에 꽃을 꽂아 공양을 올리고 있었습니다.

사월 초파일이면 아기 부처님 관욕을 위해 관욕불 주변을 화려하고 장엄하게 장식하는 제가 보였습니다.

한눈 팔지 않고 외길을 걷다 보니 감사하게도 2019년 불전공화(불교꽃꽂이)로 화예 명인이라는 타이틀을 얻게 됐습니다.
 임춘자 명인의 한국꽃예술협회 전시회 작품
ⓒ 임춘자
2021년까지 저는 '플레르(Fleur)'라는 이름으로 20년간 꽃집을 운영하며 법당 꽃꽂이 취미반 강습 및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아울러 지역아동센터와 노인 및 장애인시설에서 원예치료자원봉사를 했습니다.

특히 5년 가까이 장애인 거주 시설로 봉사를 다니다 보니 사회복지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지역아동센터 어린이들의 주의 집중력과 창의성 향상을 분석하는 논문을 쓰기도 했습니다.

박사학위는 꽃 관련입니다. 차(茶)에 대한 관심이 생겨 국내 유일 차(茶) 관련 학과인 원광대학교 동양학대학원 박사과정에 들어가 논문 '한국 전통화예의 사상적 배경 및 조형구성에 관한 연구'로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평소 꽃 수업을 하면서 전통꽃꽂이에서 구도에 쓰이는 도형은 어떻게 규정되어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시발점이 되어 주제를 정했습니다. 그러면서 ◯(원),□(방),△(각)은 천지인 사상에서 유래된 고유 사상의 표기임을 깨닫게 됐습니다.
 임춘자 명인의 '한국예총명인전시회' 작품
ⓒ 임춘자
부처님 전에 공양하고자 시작한 불전공화(불교꽃꽂이)가 성전꽃꽂이 명인 분야에 올랐고, 예다학(禮茶學)의 전공으로 차(茶) 공부를 하여 꽃과 함께하는 찻자리를 마련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이 모든 것이 부처님의 가피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생각에 저는 오늘도 더욱 열심히 자원봉사와 부처님 전 꽃 공양을 올립니다.
 임춘자 명인이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임춘자
부처님의 가피로 인생 장식

지난 2022년부터 꽃집을 접고 계룡시에서 '플레르 꽃예술학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어린이 키즈 플라워, 주민자치회 문화센터강좌, 국가기술자격증, 계룡시·충청남도 바우처 강좌, 명인아카데미, 다화(茶花)지도자과정, 성전꽃꽂이, 원데이 플라워 수업 등 다양한 커리큘럼으로 많은 분들과 소통하고 있습니다. 계룡시 평생학습 강사로도 선정되어 '꽃과 함께하는 찻자리' 강좌도 합니다.

또, 저의 지도교수님과 함께 사단법인 K-전통문화학술원을 설립하여 화훼분과를 이끌어 활동하고 있으며, 사단법인 한국꽃예술협회에서는 부이사장직을 맡아 활동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꿈이 있다면, 불교꽃꽂이(불전공화)분야의 성전꽃꽂이를 꾸준히 연구하여 많은 사람이 화예명인이 될 수 있도록 도움을 드리고 싶습니다.

지나온 날을 잠시 뒤돌아봅니다. 부처님의 가피로 꽃이라는 경지에 인생을 장식했고 또 앞으로도 이 길을 걸어갈 것입니다.

'꽃'이란 한 글자를 제 인생에 펼치게 해주신 것에 고마움과 가치로움을 느낍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천투데이와 충남도청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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