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이 기여한 게 딱 하나 있다... '이 자본' 구축한 것"
[이주연 기자]
60여 일이 흘렀다.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이 선포되고,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는 윤석열 대통령이 구속됐지만 많은 것들이 현재진행형이다. 지난 1월 19일에는 윤 대통령 구속영장이 발부된 후 그의 지지자들이 서울서부지법을 습격해 폭동을 일으킨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3일 경찰은 "서부지법 불법행위와 관련해 63명을 구속했다"고 밝혔다. 같은 날, 국민의힘 의원들은 윤 대통령이 수감 돼 있는 구치소를 방문해 '면회 정치'를 펼쳤다. 윤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 역시 남아있다.
매일같이 쏟아지는 기함할 뉴스 속에서도 상징적인 사건이 있었다. 농민의 트랙터와 아이돌 응원봉이 한데 만난 남태령 대첩이다. 농민과 여성의 연대에서 '진짜 돌봄의 의미'를 찾은 이가 있다. 윤자영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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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태령의 기적, 세상이 바뀌어서 일어난 잔혹동화를 새로운 세대의 낭만적 희망으로 극복할지도 모른다. |
ⓒ 이정헌 작가 |
"진짜 돌봄은, 사회를 변혁하기 위해 자기 시간을 투여해서 광장에 나가는 거, 이런 거다. 나 자신만 생각한다면 따뜻한 방안에서 시험 공부해서 학점을 잘 받아야지 않겠나. 그런데 '나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에 광장에 나갔고 이는 결국 공동체를 돌본 거다. 2030 여성들이 돌봄을 행한 거다. 광의의 돌봄이다."
그렇기에 윤 교수는 "윤석열이 기여한 게 단 하나라도 있다면, 윤석열 탄핵집회로 인해 서로가 서로를 돌보는 모습을 모두가 확인했다는 것"이라며 "(이런 경험으로 향후) '돌봄 사회'를 만들 수 있는 사회적 자본이 구축됐다"라고 강조했다.
"집회 때 커피, 샌드위치, 김밥 등을 선결제한 것도 돌봄이다. 돌봄 사회라는 건, 경쟁과 수월성 이런 게 사회 기본 원칙이 아니라 연대와 공존 그리고 상생이 사회 기본 원리가 돼야 함을 뜻한다. '돌봄 수요가 급증하니 누군가는 돌봄을 제공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의 돌봄 공공성을 재고해야 한다'도 필요하지만 '추울까 봐 핫팩을 건네주고 먹을 걸 보내주는 마음'을 이제는 되돌아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앞으로 우리 사회의 과제 역시 '돌봄'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 윤 교수의 생각이다. 윤 교수는 "결국, 남을 돌볼 여력을 만들어 줄 책임은 국가에 있다"고 강조했다.
윤 교수와 지난 1월 23일, 2월 3일 두 차례 대면·전화 인터뷰를 진행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정리본이다.
"2030 여성들 아니었으면 이 시국을 어떻게 지나갔을까... 아찔하다"
- 계엄 전인 2024년 11월 7일, '충남대 교수 일동'의 일원으로 이미 윤석열 하야를 촉구했었다. 3개월이 흘렀다. 윤석열 탄핵 국면을 바라보는 심경, 어떤가.
"임기를 마칠 수 있을 거 같진 않았는데 이렇게 빨리, 이런 방식으로 물러날 거라고는 아무도 예상 못 했을 거다. '결국 이렇게 됐구나' 하는 마음과 '윤석열 정부 3년이 망쳐 놓은 분노와 상처·앙금들을 어떻게 씻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의 마음이 동시에 있다.
민주당이 차기 정권을 가져간다고 가정했을 때 '촛불로 이룬 정부가 아무것도 제대로 못했다'는 문재인 정부 2기로 평가 될까봐 우려되는 것도 사실이다. 양당 체제가 너무 굳건하게 자리 잡혀있으니 몇 %라도 더 표를 얻으려 민주당은 자꾸 우클릭을 한다. (이런 구도를 깨려면) 국민의힘이 해산되고 민주당이 진정한 보수가 되는 날이 와야 한다고 본다. 국민의힘이 위헌 정당인 이유는 '내란 옹호'만 봐도 알 수 있지 않나. 서부지법에 쳐들어간 이들을 옹호하는 정당이다. 경제정책에 있어서 우리 사회가 좀 더 앞으로 갈 수 있는 길은 국민의힘이 해산된 후 민주당이 진정한 보수로 거듭나고 대안적 세력이 왼쪽을 차지하는 모습으로 재편되는 것밖에 없다고 본다."
- 이번 계엄 사태에서 '여성들의 목소리'가 고스란히 표출됐다.
"2030여성들이 광장에 나가는 걸 볼 때만 해도 희망의 빛이 있었다. 공공의 선에 관심을 두지 않는 MZ 세대라 여겼는데 '아니구나, 훨씬 혁신적인 이들이구나' 싶었다. 아들이 고3인데, 탄핵 집회에 나간다고 하기에 함께 갔었다. (2024년) 12월 13일 국회 앞에서 열린 집회였는데, 오랜만에 집회 노래 불러 볼까 했더니 '둥둥둥' 처음 들어보는 노래가 나오더라. 에스파 노래라더라. 정말 깜짝 놀랐다. 아이돌을 좋아하던 집단의 문화와, 여성으로서 없는 사람으로 취급받던 불평등의 경험, 말도 안 되는 탄핵 국면이 맞아 떨어졌다. 광장에 나가 즐기는 모습이었다.
집단으로 연대하는 효능감을 그대로 표출했다. 춥고 관절이 굳는 거 같아서 앉아있기가 너무 힘들던데, 그 자리를 빼곡히 지킨 2030을 보면서 너무 뭉클했다(눈물), 감사했다. 그들이 아니었으면 이 시국을 어떻게 지나갔을까... 아찔하다."
"연령과 지역·성별을 초월한 '남태령 대첩' 연대... 돌봄을 확인했다"
-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을 꼽자면.
"특히 남태령 대첩이 너무나 상징적이었다. 그동안 청년 여성과 지역 농민은 접점이 아예 없었다. 청년 여성들은 일자리가 없으니 지역을 떠나왔다. 제조업 위주의 일자리만 있어 여성들이 농촌을 떠나는 비율이 훨씬 높다. 지역에는 중장년 남성 농민들이 많이 남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 두 집단이 남태령에서 만났다. 연령과 지역과 성별을 초월한 연대다. 여성 운동사에서도 상징적 사건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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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석열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며 상경한 전국농민회총연맹 전봉준 투쟁단이 2024년 12월 21일 서울 서초구 남태령 고개 인근에서 경찰에 저지된 뒤, 응원하는 시민들의 손길이 이어지고 있다. |
ⓒ 이주연 |
"지금까지 돌봄은, '돌봄 과정에서 여성들이 경력 단절을 겪고, 이는 결국 불평등의 원인이 된다'로만 해석 되어왔다. (가정 내에서 주로) 여성들이 아이를 돌봐야 하니 일을 그만두게 되고, 이것이 남녀 소득 격차 등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이 역시 현실이고 이를 방지하기 위해 '공공의 돌봄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는 건 맞다. 그런데 돌봄을 이용하는 이들조차도 '연대하고 공존하는 마음'이 아니라 '내가 하기 싫은 일, 남이 싼값에 해줬으면 좋겠다', '늙었을 때 누군가 나를 돌봐줬으면 좋겠다'의 논리로만 돌봄을 바라봤다.
그런데 진짜 돌봄은, 사회를 변혁하기 위해 자기 시간을 투여해서 광장에 나가는 거, 이런 거다. '나 자신'만 생각한다면 따뜻한 방안에서 시험공부 해서 학점을 잘 받아야지 않겠나. 그런데 '나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에 광장에 나갔고 이는 결국 공동체를 돌본 거다. 2030 청년 여성들이 돌봄을 행한 거다. 광의의 돌봄이다.
집회 때 커피, 샌드위치, 김밥 등을 선결제한 것도 돌봄이다. 돌봄 사회라는 건, 경쟁과 수월성 이런 게 사회 기본 원칙이 아니라 연대와 공존 그리고 상생이 사회 기본 원리가 돼야 함을 뜻한다. '돌봄 수요가 급증하니 누군가는 돌봄을 제공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의 돌봄 공공성을 재고해야 한다'도 필요하지만 '추울까봐 핫팩을 건네주고 먹을 걸 보내주는 마음'을 되돌아봐야 한다는 것이다."
- 공동체를 돌보는 '광의의 돌봄'의 마음으로 되돌아가면, 사회는 어떤 모습이 될까.
"자본주의 사회는, 일자리 문제 혹은 소득 정책에서 출발한다. '어떻게 하면 개인이 소득을 창출하는 일에 종사시킬까'에 정책의 초점이 맞춰진다. 소득 창출에 국한된 노동은 돌봄과는 반대되는 경우가 많다. 돌봄은 통상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 무급의 영역에 해당돼 왔기 때문에 그렇다. 이런 사회에서는 개인의 행동 원리도 개인주의적으로 흘러가게 된다. 이웃이나 공동체 등 '우리'를 돌보기보다는 (경쟁에 내몰린) '내'가 살아 남아야 하기 때문에 그렇다.
여성이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비율이 높아지면서 돌봄 행위 주체에 공백이 생기자, '남들도 안 하는 일을 내가 왜 해' 하면서 돌봄 행위 자체를 기피하게 됐다. 돌봄 행위를 손해 보는 일로 여기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돌봄 행위가 손해가 되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지금의 사회는 모든 자신의 시간과 자원을 동원해 노동시장 내 경쟁에서 이겨야 되는 사회 아닌가. 그러니 서로를 돌보기는커녕 자기 자신을 돌보는 시간도 없을 만큼 모든 자원이 경쟁에 동원된다. 그렇다고 노동에 대한 보상이 제대로 돌아오길 하나. 일자리는 한정적이다. 성과도 없고 경쟁에 내몰리기만 하니 분노만 쌓이고 남 탓을 하게 된다. 여성 고용을 지원해 주는 제도로 탓을 돌리게 되고 이는 젠더 갈등으로 귀결된다. 서부지법 폭동 사태도 거기서 기인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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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자영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 |
ⓒ 이주연 |
"물론 돌봄 노동은, 눈에 보이는 단기적 성과를 내지 않는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축적 된다. 돌봄을 '여성이 해야 되는 일, 무급으로 해도 되는 일'로 볼 것이 아니라 사회의 공공재로 보고 투자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여성에게만 전가됐던 돌봄은 방치될 것이고, 이런 상황에서 아이를 낳고 키울 리 없다. 아이를 낳지 않으면 잠재 성장률은 급속도로 악화될 수밖에 없다.
저출생은 결국 미래 노동력이 생산되지 않는다는 거다. 돌봄에 투자하지 않는다면 그 나라 경제에 장기적인 활력을 이끌어 갈 바탕이 마련되지 않게 된다. 한국의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인간을 생산하는 영역'에 대한 전략적 투자가 필요하다. 국가가 다리를 건설하고 지역을 개발하고 미래를 위해 투자하는 것처럼 사회 경제적 시스템으로 '돌봄'에 투자해야 할 때다."
- 차기 정부에 '돌봄의 사회화'를 위해 제언하고 싶은 정책이 있다면 무엇인가.
"사회화된 공적 돌봄 영역에서 약한 고리는 종사자들의 노동 인권과 보상 체계다. 낮은 임금과 좋지 못한 처우로 인해 돌봄 노동을 점점 안 하려 하지 않나. 돌봄 노동도 결국 일자리 문제다. 돌봄 일자리를 매력적인 일자리로 만든다면 일자리를 원하는 국내 인력의 소득으로 이어지고 이는 내수 경제의 선순환으로 돌아온다.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면서 돌봄을 필요로 하는 사람은 많다. 이를 담당할 일자리를 괜찮은 일자리로, 적극적으로 만들어 낸다면 돌봄 수요-공급 모두를 충족할 수 있다. 이제까지는 '돌봄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국가가 어떤 서비스를 제공할까'에만 방점을 찍었다면 이제는 돌봄을 제공하는 사람을 위한 적극적 개입과 정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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