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사가 '낭쉐' 끈 이유?…1만8000 신(神)의 제주 봄맞이 가보니
최충일 2025. 2. 8.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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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전 탐라 농경의례”
지난 4일 오후 2시 제주시 삼도2동 보물 제322호 관덕정 앞 도로변. 도로 한 구간 자동차 통행이 통제된 가운데 ‘낭쉐(나무 소) 몰이’ 재연이 한창이었다. 이날 아침부터 세찬 바람과 함께 눈발이 날렸지만 낭쉐의 힘찬 행진을 막을 순 없었다. 큰 북을 3번을 치고, 행진의 시작을 알린 오영훈 제주특별자치도 지사가 남색 한복을 입고 이 소의 키(흰 줄)를 잡고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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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사년 새해, 원하는 바 이루세요”
‘낭쉐몰이 입춘덕담’이라 이름 붙여진 이 행진에는 제주도민·공직자 등도 힘을 보탰다. 이전에는 관덕정 옆 제주목 관아 내부를 도는 정도였으나 이번에는 행진 요소를 더해 관덕정 서쪽 공영주차장을 출발해 중앙사거리 구간(약 400m)을 왕복했다. 오 지사는 “탐라국 입춘굿은 2000년 전 탐라국 시대부터 이어져 온 제주 전통 농경의례”라며 “을사년 새해를 맞아 모든 이가 원하는 바를 이루길 기원한다”고 덕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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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은 추웠지만...‘봄, 터졌소이다!’
‘2025 을사년 탐라국 입춘굿’이 입춘한파 속에서도 지난 2일부터 4일까지 ‘봄, 터졌소이다!’를 주제로 진행됐다. 입춘굿은 제주의 1만8000 신(神)에게 풍년과 풍어, 공동체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는 봄맞이 행사다. 입춘굿의 백미인 ‘낭쉐몰이’는 탐라국의 왕이 직접 풍요를 기원하는 의식을 재연한 것이다.
제주 지역 입춘굿에 대한 기록은, 헌종 7년(1841년) 이원조가 쓴 『탐라록(耽羅錄)』의 입춘일념운(立春日拈韻)에서 찾을 수 있다. 책에는 입춘날 나무로 만든 소가 끄는 ‘소몰이’를 했다고 적혀있다. 이것은 탐라왕이 ‘적전(籍田)’에서 농사를 지은 풍속이 이어져 내려온 것을 재현한 것이다. 적전은 임금이 몸소 농사를 짓던 논밭으로, 그 곡식으로 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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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국 왕의 풍요 기원 담긴 ‘낭쉐’
올해 입춘굿의 낭쉐는 제주민예총 소속 강문석 작가와 시민이 힘을 모아 나무로 만들었다. 2일에는 이 낭쉐를 모시고 고사를 지내는 ‘낭쉐코사’를 진행했다. 도민 김모(43·제주시)씨는 “날이 춥지만, 행진의 열기가 뜨거워 추위도 잠시 잊었다”며 “매년 입춘굿을 한다는 것은 알았지만 크게 관심을 끌지 못했는데, 지켜보니 의미가 깊고 재미도 있어 내년에도 행진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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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거리, 장터, 체험 부스도 입춘 분위기
앞서 지난 3일에는 공연 마당을 통해 낭쉐 이야기, 태권무 등 다채로운 공연이 펼쳐졌다. 먹거리마당·입춘장터· 소원지쓰기·입춘춘첩쓰기 등 다양한 체험 부스도 도민과 관광객 눈길을 사로잡았다. 다만 ‘큰대 세우기’는 거센 바람으로 취소돼 내년을 기약했다. 큰대 세우기는 하늘과 땅을 잇는 기둥인 ’큰대‘를 세워 제주의 신에게 공동체의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는 의례로 준비됐다. 행사 첫날인 지난 2일에는 제주 읍면동 민속보존회의 새봄맞이 마을거리굿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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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관·무 손잡고 26회째 봄맞이
제주도 입춘은 예부터 ‘새철 드는 날’, ‘문전 맹질(명절)’ 등으로 불리며 새해를 시작하는 시점으로 여겼다. 농경사회였던 과거 풍작을 기원하는 굿을 이때 지낸 이유다. 하지만 일제시대 이후 명맥이 끊겼다가, 1999년 문무병 선생을 중심으로 제주민예총이 복원했다. 민(民)·관(官)·무(巫)가 손을 잡고 여는 봄맞이 행사는 올해로 26회째다. 지난해부턴 제주시가 개최하던 행사를 제주특별자치도 행사로 확대해 열고 있다.
제주=최충일 기자 choi.choongi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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