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형적인 가족극 아니었네, 이 영화에 담긴 놀라온 교훈
[김상목 기자]
'대혐오의 시대'가 닥친 요즘이다. 한국 사정만도 머리 아프지만, 바다 건너 미국에서 벌어지는 일을 접하면 뭔가 잘못 돌아가는 게 확연하다. 물론 세상만사가 선과 악처럼 한칼에 나뉠 수 없으니 면밀하게 분석해 교차방정식 풀듯이 시시비비 따져야 하지만, 예전에는 적절하게 조절되던 균형이 붕괴 위기에 처한 건 분명해 보인다.
괴이한 것은, 예전에는 내심은 어떻건 좀 더 힘 있는 자, 여유 있는 이들이 세상 이목 때문이건 법제도 관련이건 마지못해서라도 소수자와 약자에 대한 배려와 분배를 위해 양보하는 시늉이라도 보였던 데 반해, 이제는 분노를 터뜨리며 차별과 혐오를 정당화한다는 것이다. 물론 세상 살기는 누구나 더 팍팍해졌고, 자기 앞가림과 현상 유지만 하려 해도 부단한 노력과 피로가 요구되는 시절이긴 하다.
그러나 공동체를 지속하기 위해 사회 구성원의 화합과 연대 대신에 배제와 혐오가 해법이 될 리 만무하다. 즉자적인 분노가 대안 마련이 아닌, 감정적 화풀이 대상을 찾고 오도된 우월감을 만족하기 위해 만만한 대상을 공격하는 것으로 흘러감을 경계할 이유다.
<원더>는 근래 독립예술영화 재개봉 붐을 타고 10여 년 만에 돌아왔다. 검증된 인기작을 재탕 삼탕 우려내는 현상에 염려도 들지만, 상당한 화제작이었음에도 본 작품을 접하지 못한 이들이 훨씬 많으니 슬쩍 넘어가도 될 만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시 만난 <원더>는 개봉 당시에도 그렇지만, 모두가 분노를 배설하고픈 욕망에 몸부림치는 세태를 돌아보게 만드는 '아름다운 조화'와 '내면의 힘'을 일깨우는 영화로서, 오히려 지금 시절에 더 효용이 극대화하는 작품이었다.
모두의 입장을 전하되, 좌표 설정은 단호하게
# "어기"의 경우
'어거스트 풀먼(이하 '어기')'은 마른하늘 날벼락에 맞을 확률이라는 안면기형 복합 증후군을 안고 태어났다. 27번의 성형수술을 거쳐 간신히 얼굴 형상을 고정할 수 있었던 어기는 5학년까지 엄마의 홈스쿨링을 받으며 외톨이로 지냈다.
이제 어기의 부모님은 언제까지나 집 안에서만 고립된 삶을 살게 할 수 없다는 다짐으로 아들을 학교에 입학시키려 한다. 바깥에 출타할 때는 남들과 다른, '괴물'이라 놀림을 당하는 외모 탓에 항상 우주비행사를 떠올리게 하는, 머리 전체를 감싸는 헬멧을 착용하던 어기는 이제 헬멧을 벗고 민낯으로 생전 처음 또래 아이들로 가득 찬 학교 교정에 들어선다. 물론 그의 학교생활이 순탄할 리 없다.
# "비아"의 사연
어기는 5학년이 될 때까지, 엄마와 아빠, 노견 '데이지', 그리고 누나 '비아'와 적어도 집 안에선 평화롭게 지낼 수 있었다. 엄마는 헌신적으로 어기를 양육해 왔다. 미술에 재능이 있고 학구열이 높아 대학원 과정을 다니다 아들 때문에 석사 학위를 포기했을 정도다. 물론 아빠와 비아도 아들-동생을 위해 노력한 건 매한가지다. 하지만 동생의 상황이 그러한 터라 항상 부모님의 관심은 어기를 향해서만 쏠린다.
비아는 늘 착하고 얌전한 모범생 취급이다. 물론 동생이 아니라 자신에게도 일어날 수 있었던 장애라는 걸 알기에 자신이 못된 생각을 품으면 안 되는 걸 인정하지만, 가끔은 엄마가 자신에게도 시선을 건네고 함께 시간을 보내주길 갈망한다. 게다가 어릴 적부터 자매처럼 지내온 친구 '미란다'가 언젠가부터 자신을 멀리한다. 한창 감수성 예민한 나이, 남들에게 말 못할 소외감이 비아를 괴롭힌다.
# "잭"의 입장
잭은 어기가 입학하기 전, 상담차 학교에 들렀을 때 교장 선생님이 학교 안내를 부탁한 셋 중 하나다. 나머지 둘 중 한 명은 그저 시킨 일만 할 뿐, 마이페이스로 일관하고 ('샬롯') 다른 한 명은 겉으론 따르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선 혐오와 차별을 일삼는다. 잭만이 어기에게 마음을 열고 친절을 베푼다. 어기에게 잭은 첫 번째 친구가 된 것이다.
잭에겐 어기에게 감춘 속내가 있다. 학교에서 장학금을 받는 잭에게 어기를 챙겨달라는 권유가 있었고, 잭은 '임무'를 충실하게 수행할 뿐이다. 하지만 할로윈 축제를 앞두고 모두가 가면과 코스프레를 한 터라 어기가 보고 있다는 걸 알아채지 못한 채 본심을 무심코 내뱉고 만다. 상처를 입은 어기는 잭과의 대화를 거부하고, 잭은 후회하지만 한 번 멀어진 관계는 회복하기 힘들다.
# "미란다"의 고민
어기에게 미란다는 또다른 남매였다. 비아와는 의자매라 해도 어색하지 않은 사이, 어릴 적 내내 미란다는 비아의 부모님과 함께 크리스마스를 보낼 정도로 스스럼없는 가족 같은 관계였다. 하지만 지난여름부터 모든 게 변했다. 미란다가 비아를 외면하고 멀리한 게 발단이다. 비아가 남들에게 말하지 못할 고민, 동생에게 집중되는 부모님의 애정을 시샘하게 된 것처럼, 미란다 역시 비아의 단란한 가족 곁에서 느끼는 묘한 질투와 선망을 주체하지 못한 것이다.
실은 미란다의 가족은 비아와 달리 부침을 겪으며 해체 위기에 몰린 상황이고, 미란다는 여름 캠프에서 (자신에겐 이상적인 모델인) 비아의 가족을 자신의 가족인 양, 자기가 관심을 얻기 위해 가장한 것이다. 기형으로 태어난 동생을 사랑으로 감싸는 착한 누나 행세까지 말이다. 막상 저지르고 나니 도저히 친구를 바라볼 수 없어져 버렸다.
절대로 뻔하지 않은 차별대응 접근법
<원더>는 가족 드라마의 한 변형이자, 사회적 소재를 적절히 활용해 감동과 성찰을 동시에 꿰차는 정석적인 기획의 승리로만 받아들이기 쉬운 작업이다. 현실의 차별을 가져오지만, 적당히 순화하고 긍정적인 결론으로 일직선 형태로 나아가는 '안전빵' 선택의 예시처럼 비출 구석도 충분하다. 실제로 원작 소설에선 거의 얼굴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묘사로 설명하던 주인공의 외모 역시 27번 수술을 치른 결과라지만, 일정하게 순화된 맛이라는 걸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현실에서 우리 주변 곳곳에 포진한, 하지만 우리가 그저 '타인의 고통'으로 스치고 지나는 숱한 '어기'들의 상처를 체험한 이들이라면 그렇게 '순한 맛'으로 각색된 영화 속 주인공의 수난조차 편하게 바라보기 힘들 테다. '줄리안'을 필두로 한 무리가 어기에게 가하는 천진한 혐오가 다가올 때마다 못내 화면에서 눈을 돌리거나, 잠시나마 멈추고 싶어질 지경이다.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극영화이기에 이런 표현 수위 조절이 가능한 셈이다. 독립예술영화를 꾸준히 봐온 관객이라면 해당 소재를 다룬 다양한 선례를 이미 적지 않게 관람한 경험이 있다. 현실에서 겪게 되는 가공할 배제의 폭력성이 순화된 것에 관해 아쉬움을 표할 수 있지만, <원더>가 지향하는 건 전통적인 드라마 구조를 통해 평소에 자신이 무의식중 갖던 편견을 각성하고 교정하는 연착륙에 있다는 점을 숙지할 필요가 있다. 타깃과 초점이 명확한 작업인 것이다.
현실의 명암을 극명하게 충돌하는 대신, 제작진은 원작이 가진 장점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시종일관 향한다. 그리고 전개 과정에서 관객이 목격할 수 있듯, 주인공뿐 아니라 주변 인물들, 반동적 캐릭터의 시선까지 골고루 소개하는 미덕을 발휘한다. 관객은 방관적 관찰자가 돼 자신의 실제 현실과는 동떨어진 채, 화면 속 주인공 vs. '빌런' 중 누구 편을 들 것인가 물건 고르듯 속이 편한 선택 대신에 각각의 입장과 처지를 다양한 각도로 응시하며 자신의 속마음과 견줘볼 기회를 얻는 것이다.
관객은 어기가 당하는 억울한 차별과 혐오에 혹자는 함께 슬퍼하고 분노하지만, 다양한 체험 탓에 누군가는 눈을 감거나 피하고 싶을 테다. 상당수가 어기에게 곧 닥칠 상황에 대해 예감할 수 있다. 부모님의 심경도 뭉클하지만 사실 대부분 예상이 가능하다. 그래서 긍정적이고 좋은 이야기지만, 지루해질 구석도 존재하는 셈이다.
장애인 가족 때문에 역차별당하는 모순에 빠진 비장애인 누나의 속내, 개구리에게 아무 악의 없이 돌을 던지는 인간처럼 그저 어릴 적 치기 탓으로 관심을 빼앗기기 싫어 일탈을 저지르는 동급생의 배경, 그냥 외면하고 넘어갈 수 있지만 개입하게 되는 관찰자의 변화 등이 세심하게 조합되며 시선을 끈다. 관객에겐 오히려 그런 주변인들의 배경이 더 흥미로울 수밖에 없다.
물론 그런 중용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목표한 건 우리가 부지불식간에 갖는 편견을 돌아보고, 더불어 사는 삶으로 나아가자는 교훈에 있다. 세상이 강요하는 성공과 미의 일방적 척도가 아니라, 조금씩 다를 뿐인 낯선 타자와 (다소간 혼란은 필연적이지만) 소통하며 융화하는 다양성 안에서 형성되는 조화를 권하는 시도는 명확하다.
2025년, 이 영화의 귀환이 반가운 이유
물론 <원더>는 전형적인 가족 드라마 설정에 충실한 작품이다. 즉 온 가족이 함께 관람한 다음, 소감을 나눌 것을 전제하고 이를 겨냥해 수위를 설정한 작업인 것이다. 애초 영화의 노림수가 거기에 있다면, 관객 개별의 관점을 떠나 제작진이 스스로 목표한 완성 형태에 얼마나 부합되는지가 작품 평가의 1순위가 되어야 할 테다.
영화 속 주인공이 겪는 일련의 시련은 그가 온갖 고난을 감수하며 세상에 합류하기 위한 통과의례다. 어기가 학교에 보내져 고통을 당하며 예전과는 달리 화를 내고 성질을 부리며 제멋대로 굴 때, 가족들이 그에게 '너의 행동이 너한테만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라고 조언하는 것처럼, 이성적 판단과 별개로 낯선 타자를 처음 접하면 누구나 겁먹고 피하고 싶은 건 인지상정이다. 영화 속에서 (자신이 선택할 수 없는) 장애를 소재로 삼지만, 난민이나 성적 소수자, 비인간 동물에 이르기까지 모두 적용 가능한 설정이 된다.
<원더>는 각색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원작이 가진 더 광범위한 시점, 보다 현실에 근접한 설정을 일정하게 포기해야 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조금 더 '매운맛'을 경험하고 싶다면, 국내에 출간된 원작 소설집으로 마치 부가 영상과 해설을 접하듯 아쉬움을 달래면 될 테다. 돌아와야 할 최적기에 주인공이 좋아하는 <스타워즈>처럼, '제다이의 귀환'이 이뤄진 셈이다.
[작품정보]
원더
Wonder
2017|미국|드라마, 가족, 성장
2025.02.11. (재)개봉|113분|전체관람가
감독 스티븐 크보스키
출연 줄리아 로버츠, 오웬 윌슨, 제이콥 트렘블레이 외
원작 R.J. 팔라시오 - 소설 <아름다운 아이>
수입/배급 그린나래미디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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