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 비혼들의 대화에서 자주 나오는 단골 소재
[김은경 기자]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유튜브 샛길로 빠졌다가 한 프로그램에 박근형, 손숙 배우가 출연한 것을 보았다. 여든이 넘은 두 배우가 여전히 연극무대에서 투혼을 발휘하고 있다는 근황과 함께 과거 사진을 다 태워서 정리했다며 '웰다잉'이나 인생의 마무리 같은 관심사에 관해서도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잘 늙고 마무리를 잘해야 되지 않을까" 하는 소망이나 "그렇게 살다가 깨끗하게 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그렇게 살다가 깨끗하게" 가는 일의 어려움에 관해 생각했다.
나이가 중년에 이르니 요즘은 어딜 가나 "은퇴하면 뭐 하지?", "퇴직하면 뭐 먹고 살지?" 하는 자신의 안위와 "치매가 살짝 오셨어", "요양병원과 요양원의 차이를 아냐?" 하는 부모의 안위와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넋두리와 푸념 끝에 대책 없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면서도 "아이고 모르겠다" 하고 다행히 아직은 웃고 말 수 있는 정도인데, 다들 더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불안할 것이 자명하니 씁쓸하고 쓸쓸한, 이런 것이 인생의 막바지를 향해 가는 여정인가 싶다.
인생의 마지막을 '스멀스멀' 생각하게 되는 나이, 중년
그런 대화 중에는 언젠가부터 '안식사'니 '존엄사'니 하는 소재도 심심찮게 등장하기 시작했다. 특히 비혼의 1인 가구 선후배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등장하는 소재다. "혼자니까 거동이 힘들어지면 끝이야", "치매는 절대 싫어. 보살펴 줄 사람이 있냐 없느냐를 떠나 내가 어떤 상태인지도 모르는 상태가 되는 건 끔찍해", "주위에 피해를 주지 않고 깔끔하게 죽으면 좋겠어" 하는 이야기들이 되풀이된다. 하지만 정신도 말짱, 몸도 말짱한 채로 맞이하는 깔끔한 죽음이라는 건 너무나 비현실적인 일이라는 걸 우리는 말하면서 이미 알기에 자연히 대화는 스위스로 향한다.
스위스는 1942년부터 외국인에게도 조력자살을 허용한, 세계에서 유일한 국가다. 조력자살이란 의료진이 처방한 약물을 신청자가 스스로 투여해 생을 마감하는 방식이다. 신아연 작가의 <스위스 안락사 현장에 다녀왔습니다>(2022, 책과나무)라는 책이 출간되었을 때 온라인 서점 사이트에서 책을 발견하자마자 주문했었다. 스위스라니. 그 현장에 다녀왔다니, 사연도 궁금하고 과정도 궁금했다.
말기 폐암 환자인 한 사람이 우여곡절 끝에 스위스에서 조력사로 생을 마칠 계획을 세웠고, 그는 이 책의 지은이에게 자신의 가족, 지인들과 함께 그 여행(?)에 동행해 자신의 생의 마지막 순간을 기록해 달라는 부탁을 한다.
그렇게 그의 죽음을 배웅하고 돌아와 쓴 이 책에는 동행 제안을 받게 된 시작부터 그가 생을 마감하기까지의 기록과 삶과 죽음에 대한 저자의 성찰이 담겨있다. 이 책의 저자는 돌아와 기독교인이 되었고 책의 말미에 조력사는 또 다른 조력사를 부를 것이라는 우려를 담아놓았지만 솔직히 그 우려가 크게 와닿지는 않았다. 아직은 내가 웰빙과 웰다잉 차원에서의 소극적인 관심사에만 머물러 있어 그런 것 같다.
1인 가구로 살거나, 늙으신 부모를 보며 나의 노년과 죽음을 함께 생각하게 되는 나이로 살다 보면 '어떻게 죽을지' 겁이 난다. 질병에 걸리는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주로 치매와 거동이 불가능해지는 상황에 대한 공포가 가장 큰 것 같다. 그러니 죽음도 내게 선택권이 있어서 존엄하게 죽고 싶다는 바람을 갖게 되고, 그러자면 스위스에서 안락사하려면 2천만 원이 필요하대, 조건이 엄청 까다로워 불가능해, 하는 식의 대화로 이어진다. 그러다 "어렵네, 어려워"하고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것은, 아직은 죽음이 멀리 있다고 생각해 버리니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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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식존엄사(글항아리, 2024) 어머니를 모시고 행한 자주적 단식 존엄사 경험을 담았다 |
ⓒ 김은경 |
곡기를 끊는 것은 우리 조상들이 가장 자연의 법칙에 맞는 자연스러운 죽음의 방식으로 선택했던 것이라고 한다. 작년 여름에 나온 타이완 작가 비류잉의 <단식 존엄사>(2024, 글항아리)는 '단식'과 '존엄사'라는 두 관심 키워드가 하나의 제목으로 들어 있어 단번에 호기심을 자극했다.
이 책의 저자는 재활학과 의사이다. '소뇌실소증'이라는 가족 유전병으로 20년을 투병한 어머니가 자주적 단식을 통한 존엄사를 결정하기까지의 사연과 과정, 삶과 죽음에 관한 성찰, 의사로서 생각하는 존엄사와 안락사법의 필요성과 논란, 사회의 차원에서 고민해야 할 점과 보완해야 할 점 등을 다루었다.
단식의 절차가 생생히 나와 있고 존엄사와 의료체계에 관한 문제점들이 타이완의 것이라고 해도 우리 현실과도 충분히 엮어 생각해 볼 만한 지점이 많았다. 다른 한편으로 '단식으로 존엄한 죽음을 맞이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구나' 하는 것도 있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여러 지점을 확인하며 그조차 혼자서는 힘든 일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기 때문이다.
더욱이 내과 질환이 없었고 끝까지 의지가 굳건했을 만큼 정신력이 강했던 어머니와 그런 어머니를 의사인 딸이 옆에서 보살폈다는 것 자체가 절대 평범하지 않은 특별한 사례로 여겨졌다. 점점 음식을 줄여가며 기력이 쇠해지는 노인의 배변이나 상황별 조치, 그 과정에서 어떤 형태이든 조력자가 꼭 필요한 일이구나 싶어 1인 가구인 나에게는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 같은 방식으로 다가온 게 사실이다.
그러니 웰다잉을 향한 1인 가구 구성원의 고민과 탐구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다. 이런 가운데 '잘 죽기' 위해 '잘 살기'의 고민도 더 깊어진다. 어떤 죽음을 원하는가, 하는 생각은 어떻게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으로 자연스레 이어지는데 그 또한 결론을 구하기란 요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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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통 없이, 존엄하게 ‘잘 죽기’ 위해 ‘잘 살기’의 고민도 더 깊어진다. |
ⓒ 김은경 |
아이러니한 것은 적어도 내 주위에서는 이런 '장수' 이슈에 기대나 소망 같은 호의적인 반응보다 부정하거나 회피하는 반응이 대부분이라는 거다. "헐, 말도 안 돼. 난 아니야!", "으악, 진짜 싫어!", "와, 정말 그렇게 되는 거 아니야? 무섭다, 무서워", "말만 들어도 끔찍해!"
영생이나 장수가 인간의 염원처럼 취급되던 때도 있었던 것 같은데 '그 정도까지인' 장수를 누리기엔 따라와야 할 조건도 많고, 삶도 녹록지 않다는 걸 우리는 이미 아는 나이라서일까. 저마다 손을 내저으며 눈살을 찌푸린다.
<가디언> 기자이자 작가인 올리버 버크먼은 <뉴필로소퍼> 9호에서 '인생은 너무 짧다'라는 에세이를 통해 인간의 평균 수명이 약 4,000주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자각한 후 "이전과 같은 삶을 살 수 없게 되었다"라고 한 바 있다.
1년은 52주! 통계청의 평균 기대수명인 약 84세를 기준으로 계산해 보면 약 4,368주다. 기대수명까지 생존한다고 가정하고 계산해 보니 나의 경우는 이미 써 버린 시간을 제외하면 약 1,600주 정도 남은 셈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나도 "이전과 같은 삶"을 살면 안 되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몽테뉴는 "철학한다는 것은 어떻게 죽을지를 배우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살다가 깨끗하게" 가는 것에 관한 저마다의 바람에 관해 이야기하다 보면 자연스레 이야기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로 이어지는 것이 신기하다.
죽음이라는 미래를 생각하면 자연히 삶이라는 현재에 눈이 가고, 그렇게 나의 '지금'을 살피다 보면 현타와 성찰이 뒤따르기 마련인가 보다. 막 살고 잘 죽기를 바라는 것도 욕심이고 터무니없는 일이긴 하다.
누구나 난생처음 겪는 일이니 공부할 수밖에 없고, 공부하지 않으면 나중에 아주 큰코다칠 것 같다는 직감이 든다. 이런 공부를 시작해야 할 때라고 겨울, 스산한 산책길에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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