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역 후 돌아온 서강준, 더 단단해진 마음가짐으로.
Q : 2월호 화보 촬영을 위한 자리지만, 2024년을 딱 하루 남긴 날 만났네요.
A : 그러게요. 요즘은 일만 하고 있어서 그런가 연말이라는 게 실감이 잘 나지 않아요.
Q : 한 해의 끝에서 어떤 기분이 드는지 물어보면요?
A : 나이 먹기 싫다?(웃음) 그래도 오랜만에 드라마를 촬영하고 있어 마음이 좀 놓여요. 군대도 다녀왔고, 거의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일을 쉬다 보니까 알게 모르게 조급함이 들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 7월에 드라마 촬영에 들어갔는데, 너무 행복한 거예요. 촬영 첫날 회사 대표님께 카톡도 보냈어요. 날이 더워서 죽을 것 같은데, 너무 행복하다고.
Q : 3년의 공백과 실감 나지 않는 연말을 지나면 2025년에 당도해요. 나이도, 연차도 나란히 적립하게 되는 이 시기는 어떻게 느껴져요?
A : 현장에선 늘 제가 막내였거든요. 이제 저보다 어린 후배 배우들도 생기고, 스태프도 팀장님 밑으로는 저보다 어린 분들이 많더라고요. 그런 걸 보면 물론 지금도 젊지만, ‘내가 늙어가긴 하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죠.
Q : 일로선요? 어느새 연기를 한 지 13년이 됐죠.
A : 이제야 확신이 좀 생기는 것 같아요. 예전엔 제 생각을 정확하게 말하기가 좀 어려웠거든요. 아무리 연구하고 고민을 해도 ‘이게 아니지 않을까?’ 하는 의심과 스스로에 대한 불신이 있었고, 사람들은 제 의견을 인정해주지 않을 거라는 걱정도 있었는데, 지금은 제가 내리는 결정이 답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왜냐하면 여긴 정답이 없는 곳이거든요. 그게 되레 스스로에게 확신을 줄 수 있었던 계기가 된 게 아닐까 싶어요.
Q : 의심이 확신이 됐다는 행간에서 엄청난 변화가 느껴져요. 단순히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바뀌는 건 아닐 텐데.
A : 그쵸. 물론 그때도 지금도 열심히 하는 건 똑같지만, 예전의 제가 생각했던 게 지금보다는 정제돼 있지 않다고 해야 할까요? 그렇다 보니 사람들이 제시하는 의견에 대해 의연하지 못했던 모습이 있었죠. 적어도 지금은 제가 공부하고 연구한 것이 최선의 선택이자 정답이라고 정의 내릴 수 있어요. 대신 스스로 확신을 갖고 연기하기 위해선 모두를 설득할 수 있을 만큼의 준비가 돼 있어야 하죠. 그래서 촬영장 나가기 전까지 치열하게 맡은 인물에 파고드는 시간을 가져요. 아무리 노력해도 완벽할 수는 없겠지만 20년, 30년이 되면 지금보다 좀 더 완성도는 갖출 수 있지 않을까요? 그걸 믿고 지금의 전 늘 최선의 답을 내리고 있다 생각하는 거죠.
Q : 연말연시는 지나온 날들을 되돌아보고 앞으로를 재정비하기 좋은 명분을 주잖아요. 그 명분을 빌려 지금의 서강준을 만든 결정적 장면은 무엇인지 물어보고 싶어요.
A : 결과가 좋지 않았던 드라마?(웃음) 〈안투라지〉라는 드라마 기억하세요? 그 작품이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를 냈는데, 그때 방황을 좀 했어요. 제 생각이 가장 많이 바뀐 시기기도 하고요. 혼자만의 시간을 엄청 많이 가졌는데, 그런 생각들을 하게 된 거예요. ‘내가 왜 연기를 하는 거지? 내가 연기하는 목적이 뭐지?’ 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이 제가 연기하는 이유를 완전히 바꿔줬어요. 물론 대중에게 사랑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오직 사랑받기 위해서만 연기하지 말자’ 그렇게 마음을 고쳐먹었죠.
Q : 그렇게 리셋하고 만난 작품이….
A : 〈제3의 매력〉 ‘온준영’이었어요.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임은섭’도 너무 좋았고요. 엄밀히 말해 이 작품도 많은 분들한테 폭발적인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류는 아니었어요. 그보단 마니아층이 생기는 작품이었죠. 그럼에도 제 안의 방향성이 바뀌니 다르게 느껴질 수밖에요. 그 두 작품 모두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어요.
Q : 코스모와 만났던 과거 강준 씨의 흔적도 찾아봤어요. 8년 전엔 “제 모습과 비슷한 캐릭터는 없었던 것 같아요. 전부 실제 저와는 좀 거리가 있는 인물들이었죠”라고 말했더라고요.
A : 제가 연기한 인물과 저라는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은 요즘 생각하고 있는 것이기도 한데요, 지금 촬영 중인〈언더커버 하이스쿨〉의 ‘해성’을 통해 저를 돌아보게 되더라고요. ‘해성’은 장난기도 많고 파이팅이 넘치는 친구인 데 반해 저는 조용하고 캄한 사람에 가까워 오히려 ‘온준영’이 저랑 가장 비슷한 인물이라고 생각했는데, 저를 스쳐간 모든 인물은 다 제 일부분이었다는 걸 부쩍 느껴요. 서강준의 수많은 조각 중 밝은 모습을 떼어다가 ‘해성’을 빚었다는 걸요. 그래서 요즘은 저를 돌아보는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나는 어떤 사람이지? 어떤 성격이지?’ 물음을 던져보면서요.
Q : 그 물음의 답은요?
A : 그저 조용하고 진중한 사람인 줄만 알았는데 그동안 연기한 모든 인물의 면면이 제 안에 있었더라고요. 그러고 나니 또 그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이 모습들이 다 나에게 있는 거라면, 내 진짜 모습은 뭘까? 내 진짜 모습이라는 건 없는 걸까? 그저 나는 작은 조각들의 모음인 걸까?’
Q : 철학적인데요?
A : 하하. 그래서 사실은 제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겠어요. 물론 서강준의 베이스를 이루는 모습들은 있죠. 조용하고 캄한 모습. 하지만 그게 정확히 제 모습을 표현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여전히 저를 찾는 중이에요.
Q : 그렇다면 요즘 서강준을 지배하는 키워드는 뭐라고 생각해요?
A : 요즘은 ‘똘끼’예요.
Q : ‘해성’의 영향 때문일까요?
A : 네. ‘해성’은 제게서 따온 파편 같다고 했잖아요. 아무리 연기에 몰입해도 저는 저고, 캐릭터는 캐릭터라는 사실은 변함없는데 이상하게 캐릭터의 성격으로 동화돼요.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때 음향 감독님을 이번 작품으로 또 만나게 됐는데, 감독님이 그러셨대요. 지금의 제가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때랑 너무 다르다고. 그때는 현장에서 장난도 안 치고 조용했는데 이번 현장에선 정반대의 모습이라 제게 이런 모습이 있는 줄 몰랐다고요. 그만큼 제 성격이 캐릭터에 맞춰서 조금씩 변형되는 거겠죠.
Q : ‘해성’은 고등학교에 잠입한 국정원 요원이라고요. 서강준의 언어로 ‘해성’의 소개를 덧붙인다면요?
A : ‘해성’이는요, 저랑 굉장히 비슷한 점이 하나 있어요.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 왜 그런 거 있잖아요. 우리가 세상을 아름답다고 바라보는 순간이 많은데, 사실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어둡고 더러운 면도 있게 마련인 거. 아름다워 보이지만, 그 반대편에 존재하는 민낯이 전 늘 궁금하고 그걸 보고 싶어요. ‘해성’도 비슷해요. 국정원 요원으로서 치열하게 악과 맞서 싸워도 세상엔 여전히 부조리한 현실이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는 친구죠. 어떠한 작전으로 학교에 잠입해 아이들과 지내게 되는데, 그 안에서 사회의 부조리를 똑같이 느껴요. 하지만 학교에서 만나는 친구들에게 마음이 동해 그들을 도와주게 되면서 깨닫게 되죠. 내 힘으로 세상을 완전히 바꿀 순 없어도 지금 내 앞에 보이는 작은 것들은 바꿀 수 있다는 걸요.
Q : 앞서 강준 씨가 말한 드라마 〈제3의 매력〉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그리고 전작인 〈그리드〉와는 완전히 다른 결의 작품이에요. ‘코믹 활극’이라는 장르가 붙던데요.
A : 맞아요. 그래서 너무 재미있죠. 또 다른 새로운 절 보게 되실 거예요.
Q : 서강준의 필모그래피는 긴 공백 없이 작품들이 촘촘하게 자리하고 있잖아요. 그래서 전역 소식이 들렸던 지난봄엔 머지않아 연기하는 모습도 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언더커버 하이스쿨〉을 만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네요.
A : 원래는 전역하자마자 바로 작업하고 싶었어요. 사실 전역 전에 거의 할 뻔했던 작품이 여러 이유로 무산되기도 했고, 조심스러운 이야기지만 예전에 비해 제작되는 작품 수가 많이 줄었잖아요. 그만큼 제가 선택할 수 있는 폭이 줄었고, 폭이 줄어든 시장에서 확실한 승부를 보기 위해 소위 말하는 공식을 따르는 작품이 많이 생겨났죠. 거기서 오는 물음이 있었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전 연기할 때 늘 ‘왜’를 생각하거든요. 특히 극 중 인물이 느끼는 감정의 개연성이 제겐 중요해요. ‘이 사람이 왜 여기서 이 말을 하는지’, ‘이 사람은 왜, 언제부터 저 사람을 사랑하게 된 건지’와 같은 것들이요. 개연성보다 설레고 재미있다는 이유만으로 연기를 하고 싶진 않아요. 물론 하라면 할 수는 있겠지만, 제게 연기란 일 이상의 의미를 지닌 일이에요. 어쩌면 제가 사는 이유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다고도 말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런 일을 이유 없이 한다는 건 목적도 없이 삶을 살아가는 것과 같아요.
Q : 좀 전에 강준 씨가 했던 오직 사랑받기 위해서만 연기하고 싶지 않다는 말과 이어지는 대목이네요.
A : 맞아요. 제작 발표회에서 제게 “이 작품을 왜 선택하셨나요?”라고 물어보셨을 때 제가 이 인물과 작품을 통해 어떤 말을 하고 싶은지, 어떤 화두를 나누고 싶은지는 제 안에 분명하게 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적어도 “많은 사랑을 받고 싶어서요”라고는 말하고 싶지 않거든요.
Q : 줄곧 연기의 동력은 열등감이라고 말해왔죠. 서강준을 배우로 살게 하는 힘은 어디서 기인하는 것 같나요?
A : 연기가 재미있고 좋아서 아닐까요? 하지만 평생 연기만 하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아요. 정말 솔직하게요. 언제까지일지는 모르겠지만 그저 지금 내가 좋아하는 이 일을 할 수 있는 만큼, 다 쏟아낼 수 있을 때까지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
Q : 운명론자다운 답이네요.(웃음) “모든 게 다 운명이라고 생각해요. 나에게 혹은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운명이죠.” 지난 코스모와의 인터뷰에서 강준 씨가 남긴 말이에요.
A : 지금도 똑같아요. 제 삶에 일어나는 모든 일이 운명이라고 믿어요. ‘미래에 이럴 것 같아서 지금 무언가를 하겠다’가 아니라, 지금 눈앞에 놓인 것들을 조금이라도 더 즐겁고 행복하게, 집중해서 하자는 생각이에요. 지금 내가 하는 모든 일은 미래의 운명이 될 테니까요.
Q : 〈언더커버 하이스쿨〉을 목전에 두고 다시 집 밖으로 나서는 지금은 기분이 어때요?
A : 설렘이라고 말하면 너무 진부한가요? 촬영 현장이 너무 그리웠거든요. 감독님과 토의하며 치열하게 신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느끼는 행복감이 정말 큰데, 그 일을 다시 하게 돼서 너무 행복했어요. 물론 매 신이 쉽지 않지만, 동시에 제 삶이 꽉 차 있는 느낌이 들어요. 이제 한 70% 정도 찍었는데, 제가 원래 있었던 원 안으로 조금씩 들어가고 있는 기분이에요. 이건 좀 괜찮았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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